etc/신앙생활2015. 7. 17. 11:20

15.7.17(금2부)

사무엘상21:3-9
3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나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하니
4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보통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여자를 가까이만 하지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하는지라
5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참으로 삼일 동안이나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 그들의 그릇이 성결하지 아니하겠나이까 하매
6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호와 앞에서 물려낸 떡밖에 없었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 낸 것이더라
7 그 날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잇었는데 그는 도엑이라 이름 하는 에돔 사람이요 사울의 목자장이었더라
8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무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9 제사장이 이르되 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 네가 그것을 가지려거든 가지라 여기는 그것밖에 다른 것이 없느니라 하는지라 다윗이 이르되 그 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 하더라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큰 은혜와 복 주시길 원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복 받길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크고 작음이 다르고 분야와 상황이 달라서 그렇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원하는 바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누구나 연약함과 부족함이 있기에 기도의 제목들을 가지고 삽니다
그런데 신기한건 늘 부족함과 연약함 고난과 어려움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그 어려움과 고난때문에 넘어지지않고 좌절하지 않고 다시 한번 일어나는 능력이 우리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회복 탄력성'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모든 물체에는 탄성이 있습니다 원래의 자리로 회복하려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와같이 사람의 마음에도 탄성이 있습니다
어려움을 겪고 밑바닥까지 떨어져도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하고 돌아가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더 높은곳까지 올라가려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회복 탄력성입니다
성경 인물들을 보면 회복탄력성이 좋았던 인물이 많은데 다윗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그의 삶을 보면 목동일때부터 왕이 되어서까지 끊임없이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어려움들로 인해 넘어지고 좌절하고 포기하고 하나님을 원망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께 소망을 둔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에게서 도망하여 처음 도착한 땅에서 일어난 일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일 앞에 십칠장에 보면 다윗이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이기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이 다윗을 환영하며 칭송합니다
뭐라고 칭송합니까?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이 소식을 사울이 듣자 불쾌해 하며 그때부터 다윗을 주목합니다
그리고 죽이려 합니다
어느날 사울에게 좋은 기회가 생깁니다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좋아했는데 다윗도 미갈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기에 다윗에게 제안을 합니다
"니가 블레셋 사람 백명을 죽이고 그 포피 백개를 가져오면 너를 사위로 삼겠다"
이 제안은 사실 말처럼 좋은 뜻이 아니었습니다
"니가 아무리 골리앗을 죽인 천하의 다윗이라도 블레셋 사람 백명을 죽이고 포피 백개를 가져올 수 있겠느냐" 이런 뜻으로 제안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다윗이 블레셋으로 가 전쟁중에 죽게 되면 자신은 아무 노력 없이 정권을 이어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생각입니까
그런데 어떻게 됩니까 다윗은 백명의 두배인 이백명을 죽이고 포피 이백개를 가져옵니다
사울은 딸을 주게 됩니다 이제는 다윗이 더 크게만 보입니다
이제 다윗이 사위가 되었으니 잘 지내면 좋을텐데 다윗을 보니 딸 미갈도 사랑하고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도 보이고 백성의 칭송도 높으니 그날로부터 다윗을 죽이기 위해 더욱 치밀한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이러한 두려움이 커지고 마음이 커지자 사울은 다윗을 죽이지 않고는 버틸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죽이려 할때마다 십구장을 보면 딸 미갈이 다윗을 살려주고 이십장에서는 요나단의 도움으로 다윗이 도망하여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이제는 안되겠다 이 예루살렘 안에 있으면 안되겠다"싶어서 도망한 곳이 바로 본문의 놉 땅입니다
놉은 예루살렘 국방으로부터 약 사키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제사장들이 거주했던 성읍이었습니다
다윗은 삼일에 걸쳐 놉에 도착했는데 모든 일행이 굶고 먹을것이 없었기에 먹을 것을 요청합니다
이때 제사장은 거룩한 진설병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윗이 대답하길 "우리는 거룩하니 그 떡을 달라" 해서 먹습니다
그러다보니 수중에 무기가 없는 것을 보고 제사장에게 요청합니다"무기를 달라"
제사장이 이르길 "니가 죽인 골리앗 칼 그것이 나에게 있다" 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다윗은 "다른 것이 여기 없으니 그것이라도 달라" 대답하고 받습니다
다윗이 그 칼을 받고 어떠한 장면이 떠올랐겠습니까?
여러분이 다윗이라면 골리앗의 칼을 받았을 때 어떠한 생각이 떠올랐을까요?
엘라 골짜기에서 골리앗을 만나러 갔을 때 그때가 다시 생각났을 것입니다
엘라 골짜기에 가보니 골리앗이 칼과 창과 단창을 들고 서 있을때 자신의 처량하고 안타까웠던 모습이 생각 났을 것입니다
키는 삼미터에 머리에 쓴 투구는 오천세겔이니까 계산해보면 오십칠키로 정도 되는 투구를 쓰고도 끄떡 없는 그러한 골리앗 앞에 서 있는 처량한 자신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골리앗의 칼이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으니 얼마나 감격하고 감사하고 눈물이 났겠습니까
죽음의 고비에서 자신을 가만히 두지 않고 건져주신 하나님의 도움심과 그 손길을 다시 한번 기억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그때 내가 정말 죽을뻔 했는데 그때도 내가 어렵고 힘들었는데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지켜주셧구나"
"내가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갔더니 날 여기까지 인도해주셨구나"
그 하나님을 다시 기억했을 것입니다
동시에 "지금도 사울이 날 죽이려 쫓아오지만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면 언젠가 다시 한번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날을 추억하는 날이 오겠지"
그러한 위로와 힘을 얻으며 나아갔을 것입니다
어쩌면 골리앗의 칼을 손에 잡기 전엔 인간의 생각이 더 앞섰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사윈데 사흘간 먹지도 못하게 하고 마시지도 못하게 하고 도망 다니게 하다니"
"내가 무기만 생겨봐라 바로 사울을 죽여야지"
그런 인간적인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골리앗의 칼을 받고 이 고난 가운데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도와주신 하나님을 다시 기억하며 모든 인간적인 생각을 다 내려놓고 다시 한번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기로 다짐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에 다윗이 사울에게 어떻게 합니까?
동굴로 찾아온 사울을 그 옷자락만 잘라 가만히 돌려보냅니다
자고 있는 사울의 창과 물병만을 가지고 가서
"내가 당신을 죽일 수 있었지만 인간적인 힘으로 당신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셨던 그 믿음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보다 더 높은 뜻과 길을 가지고 계신 그 하나님께서 날 인도해주신다는 그 믿음의 기억과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나아가는 것이 참 신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을 통해 고백한 것이 "여호와는 내 편이니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고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우리도 어려움을 만날 때가 많습니다
죽을것같이 어렵고 힘들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만나는 어려움과 비슷한 어려움들이 이전에도 있었고 이후에도 만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때마다 생각할 것은 우리의 생각과 뜻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가 아니라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때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셨는데 이번에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보자 이러한 결단과 신뢰와 소망이 우리가운데 필요할 줄 믿습니다
다윗은 늘 이렇게 믿음의 신앙과 기억 믿음의 추억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셨던 그 경험을 가지고 살아갔던 것이 분명합니다
다윗의 시편 중 사십이편을 보면 아들 압살롬에게 쫓기다가 지은 시가 있습니다
지금의 상황과 달리 다윗은 왕이 되어 예루살렘 성 안에서 평안히 지내고 있었는데 사울이 아닌 자신의 아들 압살롬에게 쫓깁니다
이제는 그때와 또 다른 상황인 것입니다
자신이 살려면 자신의 아들인 압살롬을 죽여야 하고 아들을 살리려면 자신이 죽어야 하니 얼마나 답답하고 처참한 상황입니까
다른 사람도 아닌 아들에게 쫓겨다니니 심적으로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겠습니까
그때 시편을 통한 고백을 보면 놀랍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여전히 찬송하리라"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안에서 낙심되므로 내가 주를 기억하나이다"
아들에게 쫓길 때 너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생각해보니 과거에도 사울에게서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도 살려주셨지 내가 내뜻대로 하지 않아도 갚아주셨지 하며 그 때 도우셨던 경험을 기억하고 아들로부터의 쫓김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다윗과같은 경험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갈 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지난날을 되돌아볼때 "그 때 힘들었는데 도와주셨어 지금도 의지하고 나아갈 소망이 생기는구나"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찬송이라는 것은 내가 마음이 평안할 때 하는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아직 나타나시지 않았지만 나타날 것을 기대하며 찬송하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목동일때도 왕이 되어서도 늘 함께 하셨던 그리고 함께 하고 계시고 또 앞으로 함께 하실 하나님을 기대 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왕이 되어서도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늘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의지하며 살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가지고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살지만 그 어려움이 해결되면 그 기도의 제목이 응답받고 나면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그런 모습을 우리에게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우리의 삶이 끝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기도응답 받고 잘 살게 되는게 우리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얼마전 재밌는 통계를 봤습니다
아이비리그 대학 자퇴율에 관한 통계였습니다
우리나라 안에서의 교육과 진학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미국 동부에 있는 여덟개의 대학에 진출한 한국 학생들의 자퇴율이 무려 44퍼센트였습니다
거의 반절의 학생이 자퇴를 한 것입니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 자퇴한 학생중 일부는 진학 자체가 목적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진학을 하고 보니 이뤄야 할 꿈과 비전 없이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더이상 할게 없어서 자퇴하고 또 새로운 길들을 찾아나간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도의 제목들이 이와같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평안하기 위한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만약 다윗의 목적이 왕이 되는게 목적이었다면 사울을 죽였을 것입니다 아들도 죽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목적은 자신이 왕이 되는것도 잘되는 것도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도 그 무엇도 아닌 오직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것이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그것이 다윗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어려움이 와도 낙심 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편인데 사람이 내게 어찌할 수 있겠어" 담대히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삶을 살길 원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계시니 사도바울의 고백과 같이 우리가 무명한 자 같으나 생명책에 기록된 유명한 자요 가난한 자 같으나 부유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믿음의 사람 다 될 줄 믿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에게 어려움이 와도 낙심하지 않고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줄 믿습니다
잘 되어도 교만할 것 없이 이루어진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십칠장을 보면 열명의 문등병자들이 나음을 받은 장면이 나옵니다
열명이 다 나았지만 한명만 와서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왜 너만 왔냐 열명 다 나았잖느냐"
그러면서 이 한사람에게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이 사람은 사마리아인이었는데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다른 아홉명은 문등병을 고치고 깨끗한 모습으로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 살았을지는 몰라도 이 사마리아인 한사람과 같은 구원은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감사할것들이 많은 분들은 교만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감사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더욱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다윗이 요단과 헤르몬에서 하나님을 기억했던 것처럼 오늘 이 새벽기도의 장소가 여러분에게 그러한 장소가 되길 소망합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회복탄력성은 긍정적이고 감사할때 더욱더 성장한다고 합니다
회복탄력성은 이전의 상태로만 회귀하는 것이 아닌 그 상태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이 골리앗의 칼을 받고 이제까지 함께 하신 주님께서 앞으로도 함께해주신다는 기대와 믿음으로 나아갈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 것처럼 이 새벽기도의 장소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어려울때 하나님게 소망을 두는 저와 여러분의 삶 다 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승리하여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될 줄 믿습니다

새벽이...깨우는 것이 힘들어서 그렇지 깨우면...힘이 납니다~!! 화이팅-^.^*
- 황대석 전도사님 -

Posted by GaeP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