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신앙생활2014. 9. 30. 11:35

2014.9.30 화요일 새벽예배 2부
조성기목사님 말씀 (마가복음 1:9-11 당신은 사랑받은 자로 살고 있습니까?)

♪ 찬송 300장. 내 맘이 낙심되며
♪남선교회 연합회 찬양

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10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은 총회 전 사무총장이신 조성기목사님께서 "당신은 사랑받은 자로 살고 있습니까?" 라는 제목으로 말씀 증거해 주실 때, 큰 은혜의 시간되실 줄로 믿습니다.

세계 어느 교회를 가보아도 아마 우리교회처럼 이른 새벽에 새벽제단을 쌓는 분들이 구름같이 모이는 교회는 없을 것입니다.
이것을 보며 우리들을 길러오신. 무릎 꿇게 하신. 우리교회를 축복하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열방에, 만백성들에게, 이 땅을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의 근원되게 하시는 부름의 소명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우리 주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신학적인 언어로는 메시야 대관식이라고 하는데.
이 때 세례를 받으시는 주님께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말씀입니다.
세례를 받고 올라오실 때 성령충만하신 주님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다"라고 하는 선업입니다.
이 아침 무릎꿇어 기도하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워져서, 나는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라는 이 음성을 다 듣고 아멘으로 화답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헨리 나우웬 신부가 예일대 제직시에 연구실에서 연구하고 있는 중에 유대인 계통의 한 젊은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이 청년은 소설을 쓰는 작가가 꿈이었습니다.
뉴욕타임즈 기사를 써내려가는 신문기자였습니다.
이 젊은이는 일상의 판에 박힌 삶이 늘 지루하고,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나우웬교수님의 연구실로 찾아가 상담을 하게 되는데, 상담하는 30분 정도의 과정에서 수많은 깨달음과 감동과 새로움을 얻게 됩니다.
고마워서 나우웬교수에게 "선생님 저를 이렇게 깨우쳐주셨던 이 고귀한 말씀들을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특히 젊은이들에게 글로 남겨주셔서, 나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보고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기를 원합니다." 라고 하는 부탁에 따라서 쓴 책이 바로 <사랑받는 자>라는 책입니다.
이 책의 부제는 '세속 사회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적인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
그 결론은, "사랑받는 자로서의 부름에 충실한 삶이라"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주님께서 세례받으실 때 받으신 축복의 선언이라면, 우리도 이미 주님을 영접할 때부터 받고 있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시때때로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환경 여건에서 내가 얼마만큼 주님의 사랑을 받고 살고 있는가 라는데 대한 하는 확신과 응답이.. 얼마나 부족한 일상에 매료된 삶인가 하는 성찰을 하게 되죠.
한 번 다시 한 번 가슴에 손을 얹고 마음으로 응답해 보십시오.
이 아침 주님 앞에 기도할 때, 나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크게 받은 자다. 하나님이 나를 참으로 기뻐하는 자로 인침을 받았다 라는 확신이 분명히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의 삶이 어떤 삶이어야 합니까?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실 때에, 그리고 겟세마네 십자가에 죽으러 가시기 전 마지막 최후의 기도 앞에 제자들과 함께 발을 씻겨주시고 성만찬을 하실 때.
그 말씀이 같은 내용입니다.
그 말씀에 따르면 우리의 삶이, 사랑받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떤 삶이어야 되느냐?

그 첫 번째가 "예수께서 빵을 잡으시고" taken.
우리 모두가 다 선택을 받은 무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시시때때로. "하나님께서 그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었던 허물 많은 이런 부족하고 연약한 죄짓는 내 인생을 긍휼히 여기셔서 십자가 보혈의 사랑으로, 나를 강권적인 사랑으로 당신의 손에 붙잡으셔서 나를 선택하셨다.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함을 받았다." 라는 선택받은 자로서의 자기 의식을 늘 가지고 살 때에-
사랑받는 자로서 매일 매일의 내 삶이 인정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에서 하나님이 택한 그 백성이 좌절과 실망 속에 있을 때에 위로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예리미야를 통해서는 "너를 내 눈 속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사랑아" 라고 표현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존재가 얼마나 존귀한가 하면, 그것은 바로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이신 그 보혈의 피로, 당신의 아들을 내어놓으시기까지.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선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매일 매일 우리의 삶 속에서 내가 하나님의 선택함을 받았다는 깨달음을 갖고 사는 것은, 내가 존재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
"하나님이 필요하셔서 나를 당신의 것으로 만드시고, 그 뿐아니라 때를 따라 은혜를 베푸셨다" 라는, 선택받은 자라는 의식을 늘 마음 속에 품고 사는 것이 하나님께 사랑받은 자의 삶의 첫 번째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아멘.

주님께서 떡을 떼시고, 그 다음에는 그 떡을 손을 들어 축사하셨다. blessed.
여기에 하나님께 사랑받은 자의 두 번째 모습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자다" 라는 것입니다.
선택받은 자일 뿐만 아니라, 구구절절이 성경 전체를 통해서 얼마나 맣은 부분이 그 택한 백성들을 그토록 축복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불러세우셔서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습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수많은 선조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놀라운 축복들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계속되어 내려지는 축복이다 라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크리스찬들에게는 미래를 염려와 불안으로 맞이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어제의 삶에 상관없이, 그 삶이 고난이든 영광이든. 그 속엔 이미 축복이 내제된 삶이라고 할 것이며.
앞으로 사는 삶 역시도 "하나님께서 무한 축복 속에 나를 두실 것이다" 이 믿음을 갖게 된다면,
매일 매일의 환경이 어떠하든지, 나는 이미 축복을 놀랍게 받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병이어의 축복을 하시고, broken. 떼어주셨습니다.
사랑받은 자의 세 번째 모습이 바로 상처입은 자로서의 삶입니다.
헨리 나우웬의 또 하나의 책은 <상처입은 치유자> 라는 책입니다.

주님께서 세례받으시고 3년 동안의 공생애의 삶을 사실 때, 십자가에 돌아가시기까지. 그 삶에 하루라도 상처없는 날이 있었습니까?
고향에 가서는 죽을 뻔한 일도 있었고, 얼마나 많은 시련과 모진 고통을 당하셨습니까?
그 마지막이 바로 십자가의 죽으심 아니었습니까?
그렇게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사랑받고 기쁨받는, 그렇게도 축복받은 주님께서도 계속된 시련과 환난 고난의 삶이 그 분의 삶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사역하시는 동안에 당하신 모든 고난과 시련과 상처를, 상처 그대로 두지 아니하시고, 상처를 이미 축복 속에 내제시켰다 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상처 자체가 축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상처를 오히려 축복 속에 승화시키면서 상처를 끌어안으셨기에, 상처받은 사람을 위로하시고 치유할 수 있었던 것이죠.

오늘 찬송 부른 것처럼, 어떤 시련 속에서도 그것이 내게 베푸신 주의 은혜가 족한 것이라는 것을.
주일 주신 말씀처럼 내 몸의 가시 자체가 축복이라는 것을.
가시로써 겸손케 무릎꿇게 하시고, 내가 얼마나 한계적인 존재인가를 깨달으면서 더 큰 사도 바울이 된 것처럼.
우리는 사랑받은 자로 부름받았기에..
이러한 고통과 시련과 상처가 있다는 것은 더 큰 축복과 은총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사랑받는 삶의 마지막 또 하나의 것은, 오병이어의 축복을 베푸실 때에. 성만찬하실 때에.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찢으시고..
그리고 마지막엔 모든 백성들에게 열 두 광주가 남도록 나누어준 것처럼. 열 두 제자에게 찢기신 자신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이 떡과 잔을 나누어주셨다는. given.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받은 자로서 우리가 선택과 축복을 받았다. 오히려 이 상처가 나를 성숙케 한다.
" 이 모든 것이 마지막에 나누어주는 삶이 되지 않으면, 사랑받는 삶의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로 죽으심으로 당신 전체를 나누어주심이 없으셨다면, 주님의 모든 삶은..
앞의 세 가지는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사랑받았다. 하나님의 기뻐하는 자다." 라는 음성을 듣는 그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우리의 선택받은 축복받은 이 삶을 얼마만큼 남에게 베풀수 있느냐 라는 것입니다.
베풀 때에 모든 것이 빛나고 완성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가진 은사가 무엇이 있습니까?
달란트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게 주신 축복을 나 혼자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이웃들에게 나누어줌 속에 베품 속에 사랑 속에. 하나님께로부터 부름받고 사랑받고 기쁨을 받는 자녀된 삶의 온전성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그런 글을 보았습니다.
소록도라는 섬. 작은 사슴이 사는 섬. 그곳에 빼어난 경관이 있죠.
소록도의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경관보다도. 젊은 간호사들의 아름다운 삶이 그토록 아름답다. 라는 글입니다.
두 손이 모두 없는, 손가락이 있지만 갈고리 된 손을 가진 분들, 코가 눈썹이 다 뭉드러지신 할머님, 눈 먼 할아버님.. 이들을 젊은 간호사들이 정성을 다하여서 돌봅니다.

소록도 안에는 한바람이라고 하는 회가 있답니다.
이 회원들은 머리를 감아준다거나, 이발을 해준다거나, 손발톱을 깎아준다거나, 마사지를 해준다거나, 몸의 굳은 살을 긁어준다거나, 빨래를 해준다거나, 놀아준다거나.. 맡은대로 지극정성으로 그분들을 돌본다고 합니다.
옛날에 한셈 나환자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었을 때에는 고무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하고 그랬지만은, 지금은 맨손으로 다 치료를 한다고 합니다.
의사들은 많이 오지 않지만, 간호사를 모집할 때는 상당히 많은 분들이 자원해서 온다고 합니다.

소록도 병원 피부과 병동 간호실 문 앞에 이런 글 하나가 적혀있다고 합니다.

너를 위하여 나는 무엇이 될까
너의 등불이 되어
 너의 별이 되어
 달이 되어
 너의 마스코트처럼
 네가 마주보는 거울처럼
 나는 네가 되고 싶다
 우린 서로 지켜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들이 있어서 소록도는 그렇게 아름답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고 있는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모든 진실 가운데 도무지 소망이 없어보이는 어둠의 세상입니다.
그러나 어둠 속에 빛이 있는 것입니다.
빛 속에 어둠, 어둠 속에 빛이 있습니다.
문제는 어둠이 빛이 될 수 있는 길이 어디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선택받은 자들이, 놀라운 축복을 받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상처를 축복의 자리에 둔 그들의 삶을 이 땅의 어둠의 세상 속에 사랑으로 나누어 비춰줄 때- 어두움은 더이상 어둠이 아닐 것입니다.
작은 등대가 되어서 세상을 비출 것이고, 그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세상의 빛과 소금된 모습일 것입니다.

오늘도 내가 얼마나 선택받은 자로서 그 축복을 누리며, 내가 어떤 시련과 아픔이 있더라도 그것을 축복의 자리 속에 두면서 내  삶을 나눔을 통하여.
이 땅에 내가 속한 모든 곳 속에서 주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는 다짐의 기도를 드렸을 때에,
오늘 하루는 축복받는 승리의 날이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요,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자라는 것을 감격하면서. 이 아침에도 감사의 찬송을 함께 드리면서. 기도하는 복된 날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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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받은 자답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답게♥

 



Posted by GaeP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