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2 주일5부예배
곧은 화살(히12:7-13)
김하나 목사님(새노래명성교회)
오늘 곧은 화살이란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잠깐 TV를 봤는데요 화살을 만드는 장인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길이의 대나무들이 꽂혀있었는데 가만히 보더니 그걸로 화살을 만듭니다. 바람을 맞고 자란 단단한 대나무 입니다. 그것을 가져다 작업실 같은 곳에서 불에 넣어서 단련시켜서 곧게 만듭니다. 그 분이 말씀하시길 60년 동안 화살을 만들었는데 단 한번도 곧은 대나무를 본 적이 없다는 겁니다. 아무리 곧아보여도 사실은 화살로 쓰긴 부족한 겁니다. 그래서 그 대나무를 가져다가 단련하고 곧게 펴서 화살로 만듭니다.
아무리 사람이 곧아보여도 다 문제가 있습니다. 곧아보이는 대나무일 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휘어있는 문제있는 대나무인데 우릴 부르셔서 귀한 재목으로 쓰기 위해 단련시키시고 고치시고 오늘 말씀에서는 징계하신다는 표현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화살이 곧지 않으면 멀리 날아가지 못합니다. 금방 떨어집니다. 더 큰 문제는 휘어있는 화살은 가서 과녁을 맞추지 못합니다. 반드시 쏘는 방향과 다르게 날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에 이런 것이 많습니다. 살아가다보면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화살이 곧지 않으면 턱도 없이 전에 떨어지고 과녁을 피하기 쉽상입니다.
얼마 전에 저희 교역자님들과 홍천으로 워크샵을 갔습니다. 첫 날 지나고 다음날 산에 올라갔습니다. 이런 저런 위락시설들이 있습니다. 공룡 모형 꽃 모형이 있고 화살과 과녁이 있습니다. 이거 맞추자 그래서 쏴서 맞추는데 이게 과녁이 바로 앞에 있는데 한 번도 못 맞추는 겁니다. 모두가 전력을 다 해도 한 번을 못 맞췄습니다. 우리 교회 목회자들은 우스개 소리로 스포츠팀이라고 합니다. 운동을 잘 하시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화살이 엉망 진창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방법을 써도 과녁이 맞지 않는 겁니다.
노력해보면 저 정도도 안될까 싶은 게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고침을 받지 않으면 보이는 그 과녁에도 가서 안 맞는 겁니다. 거기까지 날아가지도 못합니다. 왜 우리가 고쳐져야 하느냐.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과녁을 향해 날아가서 맞출 수 있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 인 줄 믿습니다. 곧은 화살이 멀리 날아가는 겁니다. 곧은 길을 만들게 하시는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 만나는 시간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저는 히브리서를 굉장히 사랑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제목입니다. 유대인들을 향한 서신서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주는 굉장히 중요한 서신서 입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표현되었느냐가 중요한데, 먼저는 천사보다 높으신 예수님 모세보다 높으신 대 제사장보다 높으신 예수님을 표현합니다. 그런데 너희가 거기에 얽매이지 말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를 바라보자 입니다. 새로운 예수님에 대한 관점을 알 필요가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신앙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 입니다. 그러면서 11장에 가서 믿음의 조상들을 이야기 합니다.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여자도 나옵니다, 라합. 수많은 선지자들이 나오면서 그들이 믿음의 조상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너희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라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믿는 모든 사람이 항상 겪는 경험,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바로 고통의 문제라는 겁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쫓아가고 있는데 고통이 찾아옵니다. 바로 징계라는 단어로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를 재해석 합니다. 이는 관계의 용어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냥 징계가 내려지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하지만 관계의 용어가 될 때 아름다운 단어가 되는 겁니다. 잠깐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때 이 것이 관계 속에서 표현되어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예를 들면 임자가 있는 여자. 그 자매를 붙잡고 몰래 부른 다음에 내가 널 사랑해.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위험하고 잘못된 거죠. 사랑이라는 것도 관계 속에서 쓰여져야만 아름다운 겁니다. 징계도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용할 때 아름다운 것입니다. 징계를 통해 우리를 고치시고 바꾸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아름다운 단어입니다. 우리가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안다면 정말 귀한 단어입니다.
그런데 신약적인 단어로 사용한다면 징계는 또한 훈련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 그래서 징계를 받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를 자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라고 하십니다. 제자는 훈련을 받는 겁니다. 자녀는 징계를 받고 제자는 훈련을 받습니다. 제가 저의 아들에게 특별한 것을 요구하며 가르친다면 징계이지 훈련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신 것은 훈련입니다. 그래서 징계와 훈련을 잘 알아야 합니다. 징계를 싫어하는 자를 잠언에서는 짐승과 같다고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이 됨을 고백하는 믿음이 있길 간절히 원합니다. 징계는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믿음을 보였다는 말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징계를 받을 수 없습니다. 왜나면 징계인지 영원히 알 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슬프고 힘든 징계여도 후에는 의와 평강의 열매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징계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아들이라면, 사랑하는 아버지라면 당연히 징계를 주는 것입니다.
때로는 힘든 것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제가 오랜 시간 아이가 없었을 때 아이 때문에 힘들어하는 부부를 보면 그게 부러워요. 아이 때문에 피곤해 하면 그게 부러워요. 여러분 남들이 힘들어하는 것 부러워 할때가 있습니다. 저는 특별히 유모차가 그렇게 부러웠어요. 아무리 유모차를 좋아해도 빈 유모차를 몰고 다니면 동네에서 찍힙니다. 저는 특별히 부모님과 아이가 얼굴을 마주보는 유모차가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힘든게 부럽고 좋은것도 부럽고. 여러분 학교를 다니지 않는 사람은 아침에 힘들게 학교 나가는 학생들이 부러운겁니다. 아직 직장을 얻지 못한 사람은 어제 늦게 퇴근하고 오늘 다시 출근하는 사람이 정말 부러운 겁니다. 고아들은 부모님한테 혼나는 친구가 부러운 겁니다. 혼내줄 부모님이 없는 거예요. 문제를 일으켜도 아무도 아무 말 하지 않는 거예요. 성적 떨어지면 성적표 갖다주기 무서워 떠는 친구들이 부러운 거예요. 누군가 혼내주고 고쳐줄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알아야 합니다. 나를 고쳐주실 분이 게시다는 것. 이게 우리의 가장 큰 복이라는 거예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말 함부로 못 합니다. 조금이라도 검소하게 살아야죠. 아무데나 못 갑니다. 우리 삶의 수 많은 것들이 우리를 제약하고 어렵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것이 복된 인생입니다. 그 많은 계명 속에서 사는 우리들이 멀리 날아갈 수 있는 바른 화살이 됩니다. 내가 하고싶은 대로 다 하면 인생이 행복해지는가.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실 수 있는 가장 큰 벌은 가만히 내버려 두시는 겁니다.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라. 여러분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무엇을 하지 못하고 손해 본다면 멀리 날아갈 수 있는 바른 화살이 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 때문에 힘들길 원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조금 더 힘들어지길 원합니다. 그럼 잠깐 행복한 삶이 아니라 멀리 갈 수 있는 주님께서 쓰시는 사람들이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릴 곧게 만드시는 거예요. 높이 올라가는 것에만 너무 관점을 두지 마십시오. 멀리 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흔히 우리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 sky 대학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하늘, 가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가면 우리가 정말 하늘 높이 살아가느냐. 바로 바로 떨어지는 인생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높이 올라가는 것 말고 멀리 가는 것에 많은 초점을 두시길 바랍니다. 한 없이 높이 올라가도 1m도 전진하지 못하고 바로 떨어지는 삶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아이비리그에 대한 반성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정말 가기 힘든 수재들만 가는 학교입니다. 대단한 사람인 걸 금방 알게 됩니다. 제 친구가 하버드를 다녔는데 저를 초청해서 가서 논 적이 있습니다.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나도 마치 그 학생인양.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길 건너에 프린스턴 대학에서 수업을 들었는데 관광객들이 늘 구경하는데 저를 경의로운 눈길로 쳐다봐요. 책을 들고 걷고만 있어도. 이 기사가 이야기 하는 것은 아이비리그 학생들이 의외로 많이 추락한다는 겁니다. 세 가지 책을 소개합니다. 예일대 영문학과 교수님이 쓴 잘못된 미국 엘리트 교육에 대한 책, 또 하나는 논픽션인데 짧고 비극적인 삶, 나머지 하나는 아이비리그 사교모임 청년의 고백입니다. 아주 안 좋은 음주 문화가 바로 어디서 시작되었느냐. 술 마시다 죽은 일이 비일비재한데 아주 명문 아이비리그에서 미국 대학교를 죽이는 음주문화가 시작되었다는 거예요. 두 번째 책을 추천하는데요. 아버지가 마약 밀매상이예요. 이 사람이 떵떵거리며 지역에서 멋있게 살지만 사람을 죽인 죄로 감옥에 들어가서 암으로 죽습니다. 그 아들이 머리가 좋아서 예일을 골라서 갔어요. 가만히 보니 예일대 학생이 마약을 많이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버지의 직업을 따라 예일에서 마약을 팔고 1억원이 넘는 돈을 벌었습니다. 졸업하고 살아보니 별로 돈 벌수 있는 일이 없는거예요. 그래서 결국 다시 마약을 밀매하고 옆에 있는 갱단에 의해 살해당합니다. 이 일로 인해 명문대가 얼마나 마약에 빠져있는지, 또 명문대 나온다고 좋은 인생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소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고침을 얻는 것을 기뻐하고 원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를 고쳐주세요 고백해야 합니다. 사람이 한 사람에게만 좋은 이야기를 들어도 확 바뀔 수 있습니다. 워렌 버펫과 같이 점심 먹기 위해 엄청난 돈을 낸다고 들었습니다. 우리가 대가에게 한 마디 듣는 것이 얼마나 인생을 바꿀 수 있는지. 하물며 하나님께 고침을 받는다면 잠깐 날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과녁을 향해 멋지게 날아가는 인생이 될 줄 믿습니다. 간절히 원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징계는 결코 쉽지 않다는 겁니다. 아무나 다 견디는 징계가 아닙니다. 가슴을 후비고 눈물이 쏙 빠지는 징계가 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11절에 당시에는 슬퍼보이나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징계를 당하면서 그 징계를 쉽게 여기면 더 이상 징계가 아닙니다. 징계의 역할을 할 수가 없습니다. 솜방망이 징계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는 징계를 하지만 징계가 아니예요. 한달 감봉, 세달 휴직. 그러니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거예요. 수많은 잘못된 일들이 솜방망이 처벌이 되니까 당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별게 아니구나 하는 겁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징계가 징계가 되어야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쉬운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내가 가슴을 치고 아파할 때. 그런데 우리는 징계를 만날 때 보통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이건 제가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어요 하고 징계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먼저 울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앞에 이길 수 없는 사람임을 고백할 때 넘어서게 하는 것이지 내 믿음으로 이겨설 수 있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늘 많이 징계를 주시고 고치십니다. 제가 곧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아이라는 테마로 저를 많이 고치세요. 첫째도 늦게 가지며 그런 은혜를 받았는데 둘째도 그런 것 같습니다. 두 달 일찍 나와서 갑자기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몸무게도 1.3KG밖에 안 되는 작은 아이로 나왔어요. 일주일 밖에 안 되었을 때 심장 수술을 했어요. 간절한 마음으로 나아갔습니다. 우리 아이 괜찮아질 줄 믿습니다가 아니라 참회하는 마음으로 나아왔습니다. 인큐베이터에서 나올 때 까지 아직도 하루 한 두끼 씩 금식하며 매달리고 있습니다. 너 이거 가지고 내 앞에서 철저히 아파하고 괴로워해야 이 모든 것이 너에게 연단이 되고 힘이 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하나님 앞에서 힘들어 하는 것은 복된 일입니다. 감당할 수 없음을 알고 철저히 낮아지는 것이 진짜 믿음의 모습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후에 연단을 통해 그것을 의와 평강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내가 당할 때는 고통스럽고 슬프나. 그러나 지난 후에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의와 평강으로 세워주시는 거예요. 우리가 의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꼐서 의의 선물을 주시는 겁니다. 평강. 내가 책 좀 읽고 음악 듣고 마음 수련하면 평안이 영원히 갑니까. 아니오 명확한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야 진짜 평강입니다. 징게 받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의와 평강으로 채워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낮아지고 하나님 앞에 슬퍼하고 고통 가운데 있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고 반드시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곧게 하시느냐. 우리를 목표까지 날아가게 하기 위해, 표적을 맞추시기 위해서 입니다. 두 단어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나는 거룩함 입니다. 10절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은 이 징계를 통해 우리를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거룩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우리를 옮겨주십니다. 거룩함의 반대 말은 죄입니다. 그러나 거룩함과 죄는 명확한 공통된 중심이 있습니다. 죄는 과녁을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다른 것들로 휘어지고 망가져서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는 것이 죄라는 거예요. 거룩함은 우리를 고치셔서 과녁을 향해 날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것인 줄 믿습니다. 어떻게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느냐. 우린 거룩이란 것이 없는 사람들이예요. 목표를 향해 날아가는 것이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인이 마땅히 살아야 할 곧은 화살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시고 고치시고 훈련시키십니다. 어떠한 일을 당하든 그것이 벌이 아님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떠한 일이든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징계임을 고백해야 할 줄 믿습니다.
어제께까지 새노래 명성교회 바자회가 있었어요. 저희가 먹거리 알뜰시장 그릇 등 별의 별 것을 다 팔고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그것 때문에 지금도 얼마나 피곤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람이요. 마지막에 가면 긴장을 약간 풀지 않습니까. 우리가 끝까지 하나님 의지하지 않으면 사탄이 틈타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7시까지 바자회를 열었는데 6시 30분에 청년부 예배를 끝내고 치우기 위해 내려왔습니다. 한참 먹고 있는데 갑자기 방역차 소리가 나더니 바로 옆에 있는 산에서 연기가 자욱하니 내려오는 거예요. 그 소독약 냄새예요. 시간을 보니 토요일 저녁 그 시간에 공무원들이 방역을 하러 다닐 일이 없는 거예요. 이상하다 싶었는데 집사님들이 갑자기 위로 뛰어 올라가요. 알고보니 산 옆에 아주 좋은 집이 있는데 거기서 주인 아저씨가 저희를 향해 방역기를 들고 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한 치 앞을 볼 수 없었어요. 내 앞에 있는 사람 조차 볼 수 없을 정도로. 그래서 국밥 먹고 있는데 그 수 많은 방역 가스가 우리를 완전히 덮었어요. 저는 두려웠던게 저희 바로 옆이 차도라서 사고가 나지 않을까. 기분이 다들. 알고보니 그 아저씨가 술을 한 잔 먹고 기분이 안 좋아서 그런 거예요. 국밥 안 갖다 드렸다고. 너무 당황했어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요. 집안 사람이 다 나왔는데 다 아버지 편만 들지 사과 한 마디 없고요. 10분 15분 지나니 연기가 사라져 잘 정리 했습니다. 마침 설교도 분을 더디 내라는 설교를 했거든요. 한참 생각을 했는데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교회로서 적절히 대처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면서 나중에 가서 사과드리자. 우리가 국밥 못 드려서 죄송하고 폐장하는데 소독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차라리 그게 낫겠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기억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우리 마음에 오셔서 고쳐주시고 곧게 만들어주셔서 멀리 날아가게 할 뿐 아니라 목표 지점에 꽂히는 일이 있을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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