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9 주일5부예배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눅10:38-42)
오방식 목사님(장신대 교수)
귀한 강단에 서게 하신 하나님과 당회장 목사님께 감사 드립니다. 가난한 시골 마을에 신발 수선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주 가난한 동네여서 마을 사람 대부분이 한 켤레의 신발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낮에는 일을 하다 신발이 떨어지면 꼭 밤에 떨어진 신발을 수선하러 왔습니다. 그럼 이 사람은 그날 밤에 수선해주어야 합니다. 다음 날에는 다시 그 신발을 신고 밭에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매일 밤마다 동네 사람들의 신발을 수선합니다. 거의 매일 밤 늦게까지 일을 하고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아주 경건한 유대인입니다. 토라의 가르침에 의하면 아침 일찍 회당에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밤새 일하기 때문에 아침에 정한 시간에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민이 되었습니다. 회당에 나가자니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수선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하고, 계속 일하자니 회당에 나갈수가 없어서 랍비를 찾아가 조언을 구합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조언을 하겠습니까. 어떻게 행동 하시겠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 마르다와 마리아가 등장합니다. 마르다는 역사적으로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사람을 상징하고, 마리아는 예수님과의 관계에 무게중심을 두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교회사에서는 둘 사이의 관계, 기도와 봉사 사이의 관계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행동인가 말씀과 기도하는 삶일까. 우리도 이런 질문들을 가지고 오늘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들어보려 합니다.
본문의 구조를 살펴봅시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바로 다음에 오늘 본문이 등장합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이웃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선행을 강조하는 본문, 예수님 앞에 말씀 듣는 것을 강조하는 것 같은 오늘 본분이 나란히 위치하고 있습니다. 선행과 기도의 관계가 결코 우열이 아님을 가르치는 것일겁니다. 둘 다 중요하다는 겁니다. 어느 것이 더 좋으냐가 아닙니다. 문제는 우열이 아니라 지금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선택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예배드릴 때는 예배하고 공부해야 할 때는 공부하고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은 예배를 드리지만 내일 아침은 일찍 일어나서 학교로 일터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가르침이 잘 들어맞지 않아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선택이 더 낫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부엌에서 고생하는 마르다보다 마리아의 손을 들어주시는 것 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의도를 잘 이해하기 위해 두 사람의 신앙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르다는 섬기는 일에 언제나 자발적이고 헌신적입니다. 아주 귀한 일꾼입니다. 그리고 마르다는 주님과의 관계도 돈독한 사람입니다.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예수님과 나누고 있습니다. 마르다는 선행도 있고 자기 마음을 주님께 올려드릴 수도 있는 사람이란 겁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마르다는 예수님으로부터 아주 소중한 가르침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자기 삶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말씀을 들은겁니다.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가지 만이라도 족하니라. 다른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을 합니다. 너는 많은 일에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꼭 필요한 것은 한 가지다. 안타깝게도 그것을 놓치고 있구나. 중요한 한 가지를 놓치고 있다는 겁니다. 하나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종종 사용하는 말 중에 2%가 부족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거의 100%에 가깝다. 아주 조금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아주 작은 차이이지만 정 반대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엄청난 차이를 나타내는 말로도 사용됩니다. 타이거 우즈와 최경주 선수의 차이를 어떤 사람은 2%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비슷하다는 말이겠지요. 아주 근소한 차이입니다. 그런데 이 타이거 우즈와 최경주 선수의 2%의 차이는 거의 극복이 안되는 차이입니다. 결정적인 차이를 말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한 가지가 꼭 너에게 필요하다고 하시는데 사실 그 말은 너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한 가지를 놓치고 있다는 겁니다. 이 한 가지는 마르다가 염려하고 근심하는 수 많은 일들 중 하나가 아닙니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하나가 아닙니다. 이 하나는 마르다의 삶을 온전히 채워줄 하나입니다. 결정적으로 채워줄 그 하나를 놓치고 있다는 겁니다.
제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인터넷에 2%를 검색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음료 광고가 뜨더라구요. 전지현씨와 정우성씨가 연인으로 나오는 광고입니다. 전지현씨가 이쪽 빌딩에, 정우성씨가 다른 빌딩에서 점프로 건너가려고 하는데 거뜬히 건너질 못하고 매달리게 되거든요. 힘이 못 미치는 겁니다. 그래서 전지현씨가 와서 잡아서 올라오게 도와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 아무리 그런 멋진 사람이 사랑을 해도 사랑은 목마르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 음료를 주는 거예요. 그것을 마셔야 항상 목마른 것이 해소된다는 겁니다. 전도 광고로 쓰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말씀도 결정적으로 부족한 그 하나를 채워줄 수 있는 것이 마르다에게 부족하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이것 하나만 있으면 내 삶이 완전해질 텐데. 혹시 고민하며 찾는 그 한가지가 있습니까. 그것만 있으면 내 삶이 참 좋을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눈물로 기도하는 것이 있습니까. 마르다도 그 한 가지를 채우려 동분서주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된다. 그 한 가지가 무엇일까요. 본문을 읽어보아도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해주시지 않기 때문에 오래 묵상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고 마르다는 주님을 위해 열심히 요리를 합니다. 두 일 다 아름다운 일입니다. 외적으로는 어느 사람이 낫다고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마리아는 주님 앞에 앉아 주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지금 정말 주님을 향하고 있다는 겁니다. 마음이 오롯이 주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마리아는 지금 주님의 말씀만 듣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 주님을 바라보고 있는 겁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가고 있는 겁니다. 어떤 의도를 갖고 계신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마음을 나누는 자리까지 나아가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교제하며 마음에 새기고 주님이 원하는 삶을 다짐하며 더 가까이 영적으로 주님과 하나되는 자리까지 나아가고 있는 겁니다. 그 가운데 놀라운 일이 마리아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존재가 바뀌고 있는 겁니다. 마리아가 깨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이 자기를 꺠드리도록 열어두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그 중심으로 찾아오고 계신 겁니다. 마리아 안에 주님이 태어나고 있는 겁니다. 주님과 마리아의 관계라는 거룩한 집이 세워지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마리아는 내가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할까. 주님께 자기를 바치기로 다짐합니다. 마리아라는 향유병이 드디어 깨졌습니다. 주님께 드려진 바가 된 것입니다.
마르다도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헌신적인 섬김의 삶을 사는 훌륭한 신앙인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예수님은 어디로 가십니까.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입니다. 사람들은 모르지만 예수님은 올라가시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집을 방문한겁니다. 주님이 참 좋아하는 가정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편안히 머무를 수 있는 가정입니다. 주님이 찾아가고 싶어하는 곳. 그곳이 마르다와 마리아의 가정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앞두시고 방문한 겁니다. 죽음을 앞둔 주님께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누군가 주님과 함께 있어주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누군가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그런 사람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주고 함께 있어주는 것이 필요했을 겁니다. 그런데 마르다는 이것을 이 순간을 놓치고 있는 겁니다. 뜨거운 열정과 열심은 있지만 주님이 왜 우리 집에 오셨는지 어떤 마음 가운데 계신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놓치고 있는겁니다. 주님과의 내적 교제가 전혀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대접할지만 관심을 갖는 겁니다. 우리 주님이 정말 원하는 것이 큰 만찬이었을까요. 주님께 귀를 기울여아 하는데 그리고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는데 그것을 놓쳐버린 겁니다.
우리 기도와 묵상이 무엇입니까. 우리 기도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겁니다. 주님을 보며 나도 닮아가고 예수님이 어떤 길을 가시는 지 보면서 그 길을 가겠다고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 겁니다. 그래서 위로가 되고자 향유를 부어드린 겁니다. 그리고 성경에 보면 얼마나 주님이 좋아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주님의 마음을 놓치고 맙니다. 오직 자기에게 사로잡혀 있는 겁니다. 분주함과 자기 생각에만 빠져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어떻게 나를 온전히 내어드릴 수 있겠습니까. 견고한 나의 자아를 깨뜨릴 수 있겠습니까. 사실 우리 모두 그런 삶을 살고 싶은 것이 소원이잖아요. 어떻게 가능할까요.
여러분 오해 마시길 바랍니다. 마르다는 정말 훌륭한 신앙인입니다. 그런데 마르다를 묵상할 때 여러가지 면에서 어느 면에서나 우리가 다 마르다와 같은 존재들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도 많은 일로 염려하며 마음이 나누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작 필요한 한 가지를 놓치며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다는 또 우리도 마르다 처럼 마르다는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영혼입니다.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영혼들 입니다. 주님을 찾는 영혼들 입니다.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사랑하는 마르다에게 새로운 삶의 길로 초대합니다. 결정적인 말씀을 주신 겁니다.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르다는 그 주님의 말씀을 곱씹으며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아마도 이끌림을 받았을 것입니다. 깨어진 삶을 살아갔을 겁니다. 과거처럼 자기 힘이 아니라 사랑으로 따라가는 행복한 사역자가 되었을 겁니다.
제가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힘으로 깨뜨리지 못하는 나의 모습. 내가 꼭 넘어서야 하는 나의 삶의 두터운 장벽. 하나님의 은혜로 꼭 해결받고 싶은 아마도 나만의 2%를 모두 가지고 있을 겁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여러분으로 바라보길 원하는 그 2%는 무엇입니까. 사랑의 주님이 나의 삶의 중심에 오지 못하게 하는 이슈는 무엇입니까. 어떻게 그것을 꺠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저는 우리들의 문제들의 궁극적인 해결은 내가 어떤 일 하나 그 무엇을 행한다고 그 궁극적인 해결은 없습니다. 하나를 더 보탠다고 해서 문제가 궁극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을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내가 넘지못하는 산을 넘기 위해서는 마르다처럼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래 길게 사랑의 눈으로 주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이 나를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무를 때 우리도 마리아처럼 변화되어지고 또 마리아처럼 사랑으로 주님을 높이면 멋진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 모두 마리아처럼 주님을 바라보고 체험하셔서 나의 향유병이 깨져서 그리스도의 향기로 또 향기를 발하는, 또 나의 향기를 넘어 위대한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길 바랍니다.
'etc > 신앙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10.22(수요일) 명성교회 새벽예배 설교말씀 (0) | 2014.10.24 |
---|---|
2014.10.21(화요일) 명성교회 새벽예배 설교말씀 (0) | 2014.10.21 |
2014.10.18(토요일) 명성교회 청년부(뉴송) 설교말씀 (0) | 2014.10.20 |
2014.10.16(목요일) 명성교회 새벽예배 설교말씀 (0) | 2014.10.16 |
2014.10.15(수요일) 명성교회 새벽예배 설교말씀 (0) | 2014.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