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2일(수) 새벽예배
• 누가복음 15:1~7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오늘도 주의 전을 찾은 모든 성도님들께 하나님께서 큰 은혜로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지금도 교회 뿐만 아니라 교단을 위해서 수고하시는 당회장 목사님을 위해서 늘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복음이라고 합니다
왜 기쁜 소식이라고 하냐하면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알 수도 없었고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새로운 메세지를 전해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복음, 기쁜소식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 오시기 전에 사람들이 신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또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 하나님에 대한 메세지를 전해 주셨는지 생각해보면서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다시한번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사람들이 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느냐 하면 그 당시에는 그리스인들의 철학을 이해를 하면 보다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인들은 어떻게 신에 대해 생각했느냐 하면 가장 보편적인 생각은 신들은 질투하는 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과 인간 사이에는 항상 적대시했기 의심하는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 중에 잘난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신은 그 사람을 멸망시키는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역사가는 가장 높은 나무가 가장 벼락을 맞기 쉽다고 표현하면서 신과 인간이 대립되는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잘난 것을 신이 질투하는 것이죠
그래서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형적인 것이 프로메퇴우스를 징벌하는 거예요
신과 인간은 잘 지낼 수 없는 거예요
두번째로 그리스의 신들은 알려져 있지도 않고 알 수도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플라톤이라는 철학자는 신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안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나는 누구에게 기도하고 머리를 숙이고 희생 재물을 받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리스 사람들은 신에 대해서 답답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신이라는 존재는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세계의 신들이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그리스인들의 신들에 대한 개념은 철학으로 이어지는데요
그 당시의 두가지 철학이 있었는데 인생을 즐기자는 쾌락주의와 금욕주의가 있었습니다
쾌락주의는 아무런 걱정이 없이 살아야 한다는 것인데 문제는 신들만 이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들은 철저히 이러한 세계와는 철저히 배제된 사람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금욕주의는 완전한 고요함을 넘는 것이 삶의 목적이예요
이 상태는 아무런 감정이 없어야 하고 모든 것에 무관심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신이라고 하는 것은 철저하게 감각도 없고 무관심한 존재라는 것이죠
사랑이나 자비는 전혀 없는 신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이 생각한 신은 사람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존재였고 인간에게는 전혀 위로를 줄 수 없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는데 예수님이 태어나시고 유대교에서는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에 대한 관념 중 대표적인 것은 거룩하시다는 것입니다
그런 개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세가지를 갖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절대로 사람이 가까이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죠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면 죽음을 감수해야 하고 이름을 부르는 것도 굉장히 두려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사기 6:22절을 보면 기드온이 여호와의 사자임을 알면서 두려워서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할 때 하나님께서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두려운 하나님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두번째로 유대교의 하나님은 예측하기 어렵고 절대적인 권력을 갖고 계시는 두려운 하나님이었어요
이러한 생각이 잘 나타나는 본문은 예레미야서 18장을 보면 토기장이의 비유가 나옵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깨뜨리는 것처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니고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시는 두려운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번째는 하나님은 죄인들은 철저하게 징벌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실 정통파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목적이 죄인을 멸망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죄인을 징벌하시는 하나님...
이사야 13:9절, 아모스 9:10절에 이런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죄를 죽이시는 하나님, 죄를 징벌하시는 무서운 하나님에 대해서 유대인들은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용서, 사랑이라는 개념이 없었어요
무조건 죄는 멸망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오히려 이런 죄인들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서 율법학자와 바리새인이 수근거리며 분노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에 대한 개념으로 꽉 차 있을 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그 사람이 생각하지도 못한 전혀 새로운 하나님에 대한 메세지를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전해주신 하나님은 첫째, 인간을 초청하시는 하나님, 인간을 가까이 오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가장 특징적인 말씀이 오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28절에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생각은 그 당시에 누구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신이 우리를 가까이 오라고 하십니다
생각할 수도 없었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은 우리를 오라고 부르시는 분으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예수님이 가르치는 하나님은 오라고 하지만 의인뿐만 아니라 죄인도 부르고 그 죄인을 용서해 주시는 분입니다
마태복음 9:13절에 보면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온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인들이나 정통파 유대인들은 죄인을 보면 피하고 욕하고 정죄할 수 밖에 없었는데 예수님이 갖고 오신 하나님에 대한 메세지는 하나님은 죄인까지도 미워하지 아니하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바른길로 나아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새롭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복음이 되고 기쁜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예수님 가르쳐 주신 말씀은 이렇게 용서해주시고 부르시는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직접 찾아가시는 하나님임을 말씀하십니다
소극적으로 오기를 기다리지 아니하시고 직접 찾아가셔서 그들을 만나주시고 위로해주시고 새롭게 해주시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말씀하신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예수님이 직접 찾아가서 만나 주시고 대화하시고 아픈 부분을 치료해 주신 것입니다
야곱도 자기가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서 찾아다니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네번째는 하나님은 찾아가시는 하나님이라는 개념은 반드시 하나님은 개인 한사람 한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양 한마리를 잃어버리면 목자는 99마리로 만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를 사랑해주시는 것입니다
또 뒤에 나오는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의 간절한 마음처럼 한 사람도 하나님은 소홀하지 않으시고 사랑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를 마치 한 사람을 사랑하시듯 사랑하신다"
지난주에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시면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시고 불러주시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간증이라고 하는 것은 나를 불러주시고 나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에 대한 간증이 가장 좋은 간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을 보시면 항상 맨 앞에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나 바울이라고 소개합니다
바울은 나를 자녀 삼아 주시고 사도로 세워주심을 놓치지 않는 거예요
나중에 사도바울이 뭐라고 고백합니까?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를 불러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불러주심에 대한 감격을 잃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일평생 사도의 직분을 잘 감당했고 또다른 간증이 있음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주신 것이 큰 은혜이고 우리는 다시한번 새롭게 새기면서 불러주신 하나님에 대해서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고 그러한 간증을 통해 여러분의 생활속에 또다른 간증이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새벽을 깨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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