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신앙생활2014. 12. 9. 08:25
12.6 newsong7
끝까지 당당한 삶(행20:17-27)
황대석 전도사님


샬롬. 벌써 12월 입니다. 아직 3번의 뉴송 예배가 남아있지만 지금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지난 11개월을 돌아보고 남은 한 달도 그 후도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길 바라며 찬양하겠습니다.


(찬양 : 어느새 지금 여기 서 있네)


이 찬양 가사 좋지 않습니까. 가사대로 여기까지 오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길 바랍니다. 내년을 기대하시는 분이 참 많습니다. 내년은 더 잘 되겠죠? 그렇게 기대하는 것이 나쁜게 아닙니다. 그런데 아직 올해가 끝나지 않았잖아요. 막연한 기대감이 아직 한 달이나 남은 올해를 내려놓게 하는건 아닌지. 찬양 가사처럼 2014년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승리자로 2015년 맞으시길 바랍니다. 아직 3주 조금 남았는데요, 화이팅.


혹시 유서 써본 적 있으십니까. 정말 열심히 살아야 하는 청년의 때에 진짜 포기하는 심령으로 쓰는것이 아니라 숙연하게 돌아보는 마음으로. 저는 중고등부 수련회 때 했는데요 주로 밤에 씁니다. 불 끄고 촛불 켜고 쓰라고 합니다. 다 쓰고 나면 밖에 나오라고 해서 산에 올라가는데 무덤이 있고 관이 있습니다. 유서 읽으라고 하고 관에 들어가라고 하고 뚜껑을 닫고 못을 박더라구요. 쾅쾅 삽으로 흙 뿌리고. 진짜 무서웠습니다. 저는 그런 교육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유서를 쓰는 것 자체가 무서웠습니다. 내가 너무 못 산 거예요. 잘한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후회된다. 미안하다. 특히 가족들에게. 특히 여동생이 있는데 1년동안 열심히 저금통 채운거 없어져서 미안해 이런거.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유언을 하거나 유서를 쓴다고 생각해봅시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으십니까. 예수님이 십자가 달리셨을 때처럼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본문은 에베소 교회를 향한 마지막 설교, 어찌보면 유언입니다. 25절 말씀 함께 보겠습니다. 이제 에베소 교회를 떠나면 다시는 그들의 얼굴을 보지 못 할 것을 바울이 잘 알고 있습니다. 22, 23절도 함께 읽겠습니다. 바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환난과 고난과 결박이고 결국 죽게될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 제목이 바울의 고별설교라고 되어있는데 유서, 유언이라고 봐도 되겠습니다. 그런데 후회를 하지 않고 있어요. 우린 직장을 그만둬도 사장님 정말 좋은 직원 잃으신겁니다 하기 쉽지 않잖아요. 연인과 헤어져도 더 잘 해줄걸 후회합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무언가 마무리 할 때 내가 잘못한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렇지 않습니다. 당당하고 후회가 없습니다. 얼마나 떳떳한지 19절 보겠습니다. 겸손과 눈물로 주님을 섬겼다고 하고 있습니다. 다 이겨내고 주님을 섬겼다고 합니다. 20절도 보겠습니다. 유익한 것을 누구에게나 거리낌없이 가르쳤다는데, 그가 전한 유익한 것이 복음이잖아요. 하나님을 증거할 때 거리낌이 없었다는 겁니다.


이번 비전집회 때 교역자들도 전도하자고 다짐했고 저도 노력했습니다. 군대 동기, 예전 알던 분들, 교회 안 다니는 분 중 청년인 분들 다 교회 나오라고 해봤습니다. 예수님 믿으라고 말도 못하고 교회 한 번 와라. 그것도 쉽지 않더라구요. 5년만에 연락해서 말하는게. 거리낌 없이 전하기 쉽지 않습니다. 바울은 과거가 어땠습니까. 예수님 믿는 사람을 색출해서 다 죽였던 사람입니다. 그랬던 그가 이제 잘 믿지만 그런 과거가 있는데 예수님 전한다 한들 얼마나 효과가 있었겠습니까.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거리낌없이 전했다고 당당히 말하고 있습니다. 21절 보겠습니다. 유대인과 헬라인을 똑같이 대했다는 말입니다. 이방인이라고 무시한 것이 아니라 똑같이 대했다는 겁니다. 과거 어느 부분도 후회하지 않게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당당하다고 떳떳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6, 27절 보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자긴 열심히 했으니 그 사람 책임이라는 겁니다.


어떻게 이렇게 당당할 수 있습니까. 대단해 보입니까 이상해 보입니까. 여러분 중 리더분들이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전도사님 저는 이 팀을 맡으면서 정말 당당합니다. 걔가 교회 안 나온건 제 책임이 아니라 걔가 교만해서 그런거예요. 새가족이 한 3주 나오고 안 나왔지만 전 최선을 다했고 걔가 잘못한 거에요. 이게 정상적입니까. 팀장 보고를 매주 하면 제일 많이 듣는 말이 죄송합니다 입니다. 출석률 떨어져서 죄송해요, 그룹장들하고 잘 못 지내서 죄송해요, 늦게 와서 죄송해요. 우린 당당할 수 없습니다. 그룹원으로 지낸 분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12월 되니 그런 이야기 많이 합니다. 내년에는 리더를 잘 섬기는 A급 그룹원이 되겠습니다. 작년 그렇게 말씀하신 분들 대부분 연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셔서 그룹원이 되신 분들 정말 A급 그룹원으로 당당하십니까. 저도 당당하지 못합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겠죠. 그러나 모든 억울한 상황을 다 참았던 건 아닌 것 같고 그렇습니다.


어떤 음식점이 가격을 올린다는데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써있습니다. 당당하지 못합니다. 국가대표도 축구 져서 죄송하다고 합니다. 대통령도 연말되면 죄송하다고 합니다. 어떤 드라마는 주인공이 너무 멋있어서 혹은 너무 욕하고 싶어서 혹은 내용이 너무 재미있어서 보게되는데요. 응답하라 1994 기억하시나요. 그 드라마는 나오는 상황들이 그 때의 나와 너무 공감이 되어 인기를 끌었던 것 같습니다. 거기 나오는 패션, 노래 그런게 나의 그 때와 너무 닮아있어서. 요즘에도 시청자의 공감을 얻으며 인기를 얻는 드라마가 미생입니다. 지금 가장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저는 웹툰으로 먼저 봤습니다. 전에 김하나 목사님이 최고의 웹툰이라고 하셨어요. 저는 당시 청년부에서 지지기반이 굉장히 약해서 긴장하며 듣고 있었습니다. 저의 별명이 황그래씨 입니다. 그래서 뒤에서 듣고 있다가 미생 처음 들어봤는데 하니까 김병규 목사님이 귓속말로 정말 최고라고 꼭보라고 하셨습니다. 목사님의 추종자로 명령을 받들어 며칠 밤 동안 봤습니다. 아 장그래씨와 나의 처지가 별반 다르지 않구나. 그 땐 제가 진짜 서툴었거든요. 이렇게 서툰 장그래씨가 성장하는 것처럼 나도 성장할 수 있을까. 그래도 조금 성장했다고 자부합니다. 여러분도 더 알게 되었고 찬양도 더 알게 되었고 나름 중요한 업무도 맡겨지면서. 그리고 드라마로 나온 미생을 보며 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도 나의 처지가 장그래씨와 별반 다르지 않구나. 지금도 헤매고 있구나. 장그래씨는 그나마 성장하고 있는데 나는 언제쯤 괜찮은 교역자가 될 수 있을까 생각 많이 했습니다.


미생에는 각 직책에 맡는 캐릭터가 많이 등장합니다. 장그래씨같은 신입사원 동기, 대리, 차장, 전무 등 역할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신기한 점은 그 누구도 당당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각자 최선을 다하지만 나름대로 약점이 있는 것입니다. 장그래씨는 정말 착하고 열심히 일하지만 직장에서 요구하는 능력이 떨어져서 늘 사고 치거나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정말 능력이 뛰어나지만 사회성이 별로입니다. 어떤 사람은 일을 정말 잘하지만 여성이라는 점이 책 잡합니다. 어떤 이는 여성이지만 승승장구 했지만 늘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삽니다. 어떤 사람은 승승장구 하지만 부하의 공을 종종 자기 것으로. 어떤 사람은 백이 없어서 이리 저리 치입니다.


이게 우리 모습 아닙니까. 정말 열심히 직분 감당하시는 분이 있지만 집에 잘 못가서 부모님께 죄송하다고 합니다. 직장에서 계속 교회일 했다고 합니다. 어떤 상황 가운데 있더라도 당당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사도바울은 어떻게 이렇게 당당할 수 있습니까. 그도 우리와 같은 사람인데 어떻게 이렇게 자신있게 삶을 정리할 수 있습니까.


첫째는 그가 성령에 매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22절 다시 보겠습니다. 그도 우리처럼 한계를 지닌 사람인데 그렇게 후회없이 당당할 수 있다면 자신의 능력과 행위 때문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의 매임을 받은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사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적 관점에서는 사도바울도 그렇게 떳떳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과거가 있는 사람이 떳떳하면 얼마나 떳떳하겠습니까. 예수님 믿은 후에도 그는 완전한 신앙인이라고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이 싸우고 있다고, 죄인 중의 괴수라고까지 낮춥니다. 그러나 그는 성령에 매인 자였습니다. 비록 자신은 당당할 수 없으나 그런 과거가 있으나 성령 하나님이 매고 있기 때문에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실수에 매이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 매여있을 때 당당한 삶을 살 줄 믿습니다.


두 번째는 그가 신앙인의 원칙을 철저히 지켰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유대인과 헬라인에 차별없이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이런 떳떳함은 24절에서 절정을 이룹니다.사실 바울의 이 고백은 은혜가 되지만 즉각 아멘으로 화답하기 부담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한다는 말. 나도 어떻게 그렇게 살겠습니까. 바울은 뒤늦게 예수님을 만나고 사명을 받았습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입니다. 그 사명을 철저히 지키고 목숨도 아깝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많은 고난을 당하고 목숨을 잃을 뻔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도 원칙을 철저히 지켜서 당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사명을 지키는 데 세상과 타협한 부분이 있었다면 이렇게 당당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일을 신앙인 답게, 모든 삶을 신앙인 답게 살았습니다. 신앙인이라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원칙,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신앙인으로 여러분은 어느 정도까지 당당할 수 있겠습니까. 죽음 앞에서 까지 당당할 수 있는 당당함입니까. 우리에게 많은 부와 권력이 있어 존경을 받아도 바울처럼 떳떳하고 당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령에 매인 자가 될 떄 떳떳할 줄 믿습니다. 신앙인의 원칙을 지킬 때 당당할 줄 믿습니다.


우린 당당하지 못한 것이 마치 겸손한 것으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은 그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죄인중의 괴수라고 하면서도 신앙인으로 당당하다고 한 사도바울처럼 자신을 아무것도 아닙니다, 개똥입니다, 머슴입니다 하시면서도 신앙인으로 나는 최선을 다했다. 늘 새벽종을 깨웠다 하는 목사님처럼. 우리도 겸손함과 당당함을 동시에 갖춘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도 마지막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사도바울 정도, 예수님처럼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당당할 수 있어야 겠습니다. 올해 많이 힘들도 실수도 좌절도 많이 하셨을 겁니다. 이미 그런 잘못이 많이 있더라도 너무 연연하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과거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다 죽인 과거가 있는 바울도 당당하게 살지 않습니까. 남은 한 해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담대히 도우심 바라며 끝까지 걷길 소망합니다. 


마지막에 승리하면 승리자가 되는 겁니다. 농구 경기를 보면 마지막에 슛 들어가는 걸 뭐라 합니까. 버져비터라고 하죠. 계속 지더라도 마지막 0.0초 남기고 딱 들어가면 그 팀이 이기는 겁니다. 거의 모든 스포츠가 다 그렇습니다. 쇼트트랙도 지고 있다가 마지막 발 뻗으면 이기는 겁니다. 권투도 계속 맞다가 한 방에 상대방이 뻗으면 이기는 겁니다. 야구도 9회말 투아웃이란 말이 있습니다. 단 한번의 승패가 승리를 좌우하는 스포츠와 다르게 신앙인은 다릅니다. 보통 한 번 넘어지면 못 이기니까 방해 되지 않게 경기장을 나가지요. 그런데 신앙인은 한 번 두 번 실패해도 끝이 아닙니다. 바울이 그랬던 것 처럼, 야곱이 하나님 만나서 새 사람 되었던 것처럼, 실수만 일삼은 우리도 예수님이 도와주시면 승리할 줄 믿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말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 도우실 줄 믿습니다.


우린 지금부터 마지막 날을 준비해야 겠습니다. 바울처럼 당당하고 떳떳할 수 있도록. 과거의 실수에 매여 포기하지 말고 성령에 매여 승리하길 바랍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 답게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승리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럴 때 얼마 남지 않은 한 해가 주님 도우심 가운데 승리하는 한 해가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 우리도 마지막 날 사도 바울처럼 후회 없는 당당함으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해 살고 죽나니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 합니다. 이 말 속에는 오직 주님만을 향한 사랑과 믿음이 있습니다. 함께 그가 추구했듯이 우리 주님만 바라보며 당당히 나아가길 원합니다.
Posted by GaeP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