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신앙생활2014. 12. 9. 08:23
12.7 주일저녁예배
은혜적 삶(눅 5:1~11)
정영택 목사님(경주제일교회)

교육을 걱정하는 사람이 조금 극단적 표현이기는 하지만 교육의 부재에 대해 "국어,수학,영어는 있는데 교육은 없다"라고 말해요. 조금 단적으로 얘기하면 한국 교회 성도들은 "은혜는 있는데 은혜적 삶은 없다". 은혜를 받은 다음에 삶에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기도하려고 무릎을 꿇었을 때와 기도 마치고 나갈 때가 다르단 거예요. 예배 마치고 은혜 받고 주차장에서 싸우는 게 은혜 받은 건가요.

김목사님께 많은 사람들이 교회 성장의 비결이 무엇인지 물으면 목사님은 씩 웃으시면서 하나님의 은혜라고 대답합니다. 성경이 가르쳐주는 가장 핵심적인 교훈이 무엇인가요. 어떻게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거예요. 성경은 좋은 말씀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다른 것과 다른 것은 어떻게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면 어떻게 은혜 받은 사람이 은혜적 삶을 살 수 있는 가 하는 것입니다.

은혜는 거저 받은 것입니다. 돈 주고 받은 게 아니에요. 더 깊은 은혜는 우리가 자격이 없는 데도 받았던 거예요. 그리고 그것을 갚을 수가 없다는 것이죠. 이 은혜에 대한 깨달음과 은혜를 가지고 사는 삶이 무엇인가요. 예수님이 베드로를 만나셨어요. 그리고 베드로에게 최고의 은혜를 주셨어요. 바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신 거예요. 은혜를 받은 자의 삶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성경 본문의 내용에 대한 말씀은 드리지 않겠어요. 철저하게 베드로의 입장에서 은혜받은 자의 삶을 살 수 있었을까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이만한 은혜의 삶을 누가 살까요. 베드로에게 주어진 마지막 은혜적 삶은 내 양을 먹이라 하는 말씀을 받은 겁니다.

성경을 보세요. 5장을 볼게요. 첫째는 그물을 씻으라고 말씀합니다. 그물은 뭐죠?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해 실패하고 상처난 그물이에요. 이 그물을 씻어야 해요. 누구의 그물인가요? 내 그물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아무리 하나님을 잘 믿고 은혜를 충만히 받았어도 거부할 수 없는 한 가지는 반드시 인간은 누구에겐가 상처를 준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동시에 인간은 상처를 받게 된다는 것이죠. 상처 한 번도 안받으신 분이 있나요? 남편이 상처를 주고 아내가 상처를 줍니다. 다윗은 장인 사울에게 상처를 받고 아들 압살롬에게 상처를 받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여러가지 삶의 근원 속에서 내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상처를 받아요.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하더라도 이 때 그물을 씻지 않았다면 조금 뒤에 주님이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할 때 던지지 못했을 거에요.

그물을 씻는 행위는 내 마음의 감정을 씻는 행위에요. 은혜를 준비하는 거예요. 이 한 가지 주제만 가지고도 오늘 몇 시간 얘기할 수 있지만 간단히 넘어가겠습니다. 이걸 안 씻으면 이게 나중에 암덩이가 되는 거에요. 남들은 내 그물이 더럽고 상처 났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자기 그물은 씻지 않아요. 그물을 씻는 행위는 내 자신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겁니다. 많은 이들은 내 문제가 아닌 다른 사람의 문제만을 지적합니다. "너 때문이야"라고요. 너 때문이야 하고 손가락질 할 때 나머지 세 손가락은 나를 가리키고 있어요. 은혜 받는 것 같아도 그물을 씻지 않으면 은혜의 삶의 현장에서 삐걱댑니다. 하나님의 일을 힘들어서 못하나요, 기분 나빠서 못하나요. 저도 목회를 하다보면 힘들어서 못한 적은 없지만 기분 나빠서 못한 적은 있는 것 같아요. 중요한 건 이걸 빨리빨리 씻어야 한단 거예요. 그래야 은혜의 삶을 살 수 있어요.

그 다음 3절 볼게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와서 배를 띄우라고 합니다. 은혜 받은 생활을 하려면 부탁을 잘 듣고 청을 잘 들어야 합니다. 어떤 교회의 주보에 보면 교인들끼리 돈 거래 하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빌려줄 수 있나요? 우리는 목숨 바치면서 까지 사랑한다고 하고 돈 못 빌려주잖아요. 어느 정도까지 빌려주고 어느 정도까지 남의 청을 들어줄 수 있나요. 우리가 새신자의 청을 안들어준다면 새신자가 시험에 들거에요. 저도 남의 보증을 서다가 집 까지 날려먹은 사람이에요. 보증 서달라고 하는데 목사가 어떻게 거절을 하나요. 그러니까 어떤 장로님이 "성경대로 안해서 그렇잖아요"라고 말해요. 잠언에 보증서지 말라고 나와 있잖아요. 어쨌든 정말 힘들었어요. 우리 김 목사님 좋은 일 많이 하지시만 달라고 하는 사람도 많을 거에요. 그런데 9번 줘도 1번 안주면 욕먹잖아요. 은혜적 삶은 잘 주어야 해요.

세번째, 4절부터 읽을게요. 드디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합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우리가 밤 새도록 수고 했다"라고 말합니다. 은혜 생활 하려면 수고해야 해요. 끈질기게 수고하고 엎드려 기도해야 해요. 낙타무릎이 되도록 기도해야 해요. 저는 아무래도 우리 장로님들만 못한 것 같아요. "여기 있는 분들과 여기 없는 분들 모두 동일한 은혜 주소서" 모두 아멘하지만 저는 노멘합니다. 여기 예배 드리는 분들과 집에 계신 분들이 똑같은 은혜 받는다면 좀 그렇지 않나요. 은혜 받으려면 수고 해야해요. 물론 수고가 우리의 공로가 되진 않아요. 그러나 밤 새도록 끈질겨야 해요. 소리를 크게 지른다고 꼭 응답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은혜 생활 하려면 새벽에 나와야 해요. 여러분 너무 교회 자주 나오진 마세요. 일주일에 딱 10번만 나오세요. 월화수목금토요새벽 주일낮 주일저녁 수요저녁 금요교육.

5절 보세요. 정말 은혜의 삶을 살려면 제대로 은혜적 생활을 하려면 결국은 말씀에 의지해야 해요. 말씀이 기준이에요. 내 믿음의 생활의 기준이 어딨나요. 컨텐츠가 어딨나요. 정말 말씀에 있나요? 적어도 저와 여러분들의 삶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어야 하지 않나요. 어떤 성도가 그래요. "목사님 TV에서 그러는데요.." 여러분의 기준이 어디 있나요? 말씀하셨으니 말씀을 의지하겠습니다. 이게 믿음이에요. 이 말씀으로 사는 것 때문에 어떤 오해와 비난을 받을 수도 있어요. 여러분 합리적인 것이나 이성적인 것이나 논리적인 것이 믿음이 아니란 거예요. 홍해 바다 앞으로 나가라 할 때 나가는 것이 믿음이에요. 정말인가요? 저도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이지만 여러분과 제가 정말 눈물 흘리며 기도할 것은 이 말씀이 우리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시골의 한 조그만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는데 교인이 그래요. "목사님 여긴 전도가 안돼요. 전도하면 너희끼리 싸우지나 말아라 그래요" 부활을 믿지 않으면 소망이 없어요. 영생을 믿지 않으면 희망이 없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어떻게 말하고 있나요? 이런 고민이 우리에게 있나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니 그물이 찢어질 것 처럼 많이 잡힙니다. 7절 읽어보세요. 그리고 말씀에 의지했더니 그물이 가득하고 두 배에 가득 채워졌어요. 정말 은혜 받았다면 나누는 거예요. 나누니까 모자른 게 아니라 두 배에 가득 채워진 거예요.

베드로는 이렇게 은혜를 받았어요. 이 결과 앞에서 베드로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베드로는 어부에요. 레저를 즐기기 위해 낚시를 하는 게 아니에요. 돈을 벌어야 하는 어부에요. 그런데 예수님을 보고 두 발 아래 엎드리는 거예요. 그리고 고백합니다.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이게 무슨 고백인가요? 이상적인 말은 뭔가요? "주여 나랑 동업합시다" 그럼 수상협동조합도 만들도 매운탕집도 만들고 돈 팍팍 벌텐데요. 얼마나 비전이 있나요. 그러나 베드로는 고기를 보고 주님을 보고 자기를 보고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고백했어요. 비록 지금까지 고기를 잡고 돈을 벌었지만 고기를 보지 않고 돈을 보지 않고 주님을 보겠다는 거에요. 세상을 보지 않고 천국을 보고 죽음을 보지 않고 영생을 보겠다는 거예요. 이 고백은 주님의 은혜 없이 나는 존재할 수 없다는 거예요. 죄인은 은혜로만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평생 은혜의 생활을 하기 위한 알파와 오메가는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이에요. 주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어요. 내가 죄인이기에 십자가가 은혜가 되고 사명이 은혜가 되는 거예요. 사울은 큰 자였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 작은 자 바울이 되었어요. 바울은 옥중서신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자보다 자신은 더 작은 자라고 했어요. 마지막 디모데에게 편지를 쓸 때 그는 성자와 같이 되었어요. 그리고 고백합니다. "나는 죄인 중의 괴수다" 이런 고백 안해도 되지 않나요? 더구나 믿음의 아들 디모데인데요. 이건 뭘 말하죠? 나는 오직 은혜로 살았다는 거예요. 여러분과 제가 은혜적 삶을 살 수 있는 마지막 보루는 내가 죄인이라는 마지막 신앙의 고백이에요. 은혜의 삶을 살기 위해 우린 나름대로 애쓸 수 있어야 해요. 내 감정 잘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말씀을 의지하고 내가 죄인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여기에 겸손과 은혜와 그리스도인의 승리가 있습니다. 이 밤에 그 은혜가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GaeP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