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신앙생활2014. 9. 19. 22:34

2014.9.18 목요일 새벽예배 2부
말씀 (마가복음 11:22-24, 갈라디아서 1:15-2:1)

♪ 찬송 254장. 내 주의 보혈은

2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18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20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21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2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23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24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1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할렐루야!
이 아침에도 주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넘치게 부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 당회장목사님께서는 9월 특별집회에 진액을 쏟으시고, 또 주일에 말씀을 증거하시고.
지금은 한적한 곳에서 또 기도하며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고 계신 줄로 압니다.
늘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어떤 티비 자막에 보니까 이런 말이 있어요.
"사람에게 삶의 휴식이 없다는 것은 자동차의 브레이크가 없는 것과 같다."
자동차는 세게 달린다고 좋은 게 아니라, 제동할 때 빨리 멈춰야되는 것입니다.
너무 과열되게 달리다가 사고가 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듯이 우리 삶에는 너무 열심히 한다고 해서 효과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쉬게 하실 때에는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지난 주일 당회장목사님께서 주신 말씀, <주님과 함께 사는 제 2의 인생> 제목만 들어도 저는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기대가 되었고 큰 도전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제 2의 인생이 뭘까? 그렇다면 제 1의 인생은 뭘까?'
그런 묵상을 해보았습니다.

제 2의 인생은 그리스도가 없는 인생.
삶의 목적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이름없이 빛없이 충성하고 섬기고 살아가야 하는데, 그것이 없는 인생인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영광이 되고, 목적이 될 때. 내가 잘 되려고 하고 내가 부자되려고 하고 내가 성공하려고 하는 것. 다 자연적인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인생은 아직은 제 1의 인생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갈라디아서에 보면, 사도 바울에게 주어진 휴식의 시간이 엄청나게 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기 전까지는, 자연인으로써 제 1의 인생으로써, 출세를 위해서 그러게 살아갔습니다.
세상의 권력과 인기가 최고의 가치였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의 사랑으로. 주님께서 인도하는 삶이 돈보다 명예보다 권력보다 인기보다 억 만 배도 더 귀한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그 눈에는 안 띄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핍박하고 그리스도인을 잡아죽이고 살기가 등등하고 해를 끼치고.. 삶의 가치를 모르고 있을 때 주님께서 사도 바울을 불러주신 것입니다.

다메섹에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주님의 부르심은 아버지가, 혹은 어머니가 굉장히 사랑하는 아들을 다정하게 부르는 투같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제 2의 인생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알았을 때.

베드로도 주님을 모른다고 저주하고 부인한 다음에, 예수님과 눈이 마주치는데, 주님이 베드로를 결코 미워하거나 원망하고 저주하거나 그런 눈빛이 아니라. 정말 베드로를 사랑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눈을 마주치면서 엄청난 회개와 통곡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제 2의 인생은 주님의 사랑을 느껴야 하고 믿어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사도 바울의 출세를 향한 욕망이 꺾여지고, 인생의 방향이 180도 전환은 됐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옛사람의 삶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완전히 변화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은 3년, 또 14년.. 최소한 14년에서 17년입니다.
하나님이 쓰시지 않고 왜 그토록 오랫동안 시간 낭비, 허송 세월을 보내게 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도대체 사도 바울은 그 기한에 사막에서는 밤낮으로 기도했지만, 고향에서는 뭘 했을까..
그런 궁금증을 낳게 합니다.

사도 바울의 그 기한은 주님과 만나는 영적 교제의 기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신학과 영성을 직접 사도들에게 배운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직접 받아서 그걸 터득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때로는 고난이 있습니다.
가던 길을 멈추게 되고, 분명히 내가 올바른 길이고 내가 가치있는 길이라고 하지만은 하나님이 태클을 걸어서 사울이 말에서 떨어지듯이 때로는 가던 길이 멈춰지는 적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다시 내가 출발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점검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출세를 향한 야망은 아닌지, 어떤 권력의 힘과 인기때문에 정말 형제를 사랑해야 하는데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무엇이 정말 중요한 가치인지 우리는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제 1의 인생에서 제 2의 인생으로 바뀌어지는 것은 금방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서를 보면 우리의 의로움을 위하여 주님이 생애를 사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육신으로는 할 수 없는 그것을, 주님께서는 우리의 요구를 완벽하게 이루어주신 완전한 삶을 사셧다는 것을 암시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하지 못해도, 주님은 완벽히 거룩한 삶을 살아주셔서 우리의 거룩함이 되어주셨음을 믿습니다.
우리는 추하고 악하고 더럽지만, 주님이 완벽한 의로운 삶을 사시고 우리에게 의로움이 되어주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주님이 의로우시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믿음으로써 의롭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이건 굉장한 진리의 발견인 것입니다.
비록 사막에서, 때로는 고향에서 무명인으로 살았지만, 허송 세월한 것 같지만. 그 기한에 전 로마를 완전히 뒤집어놓을 수 있는 엄청난 십자가의 능력을 발견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삶의 고난의 기한에 우리는 정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을 발견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에서 사도 바울은 엄청난 갈등을 합니다.
생명의 법이, 이미 하나님이 대법원에서, 너는 죄가 없다고. 난 너를 사랑한다고. 십자가에서 보여주시고 죄를 대속해 주셨는데,
그걸 모르고 고민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의로워도 구원받은 게 아니고, 믿기만 하면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하나님이 죄가 없다고 무죄선언을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세상에 무엇도 흔들 수 없는 그 사랑. 절대 구원의 확신을 사도 바울이 발견했을 때, 하나님이 그를 사용한 것이죠.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힘든 고난 속에서도 로마가 두렵지 않았고, 담대하게 이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믿음의 확신 속에 분명히 서야 합니다.
이걸 갈라디아서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표현으로.
이미 십자가의 사건은 이천년 전에 이루어진 사건이고, 그 사건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미 그때 우리도 못박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낸바 되었기에 나의 옛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 못 박으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가질 때, 우리는 내 안에 있는 옛 사람. 내가 내 삶을 주도하려는 그런 잘못된 힘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 다음 로마서에 보면은 하나님께서 모태부터 책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실 분은 하나님께서 미리 예정하시고 선택하셨다는. 절대 은총의 진리.
믿음의 주최는 주님이십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 속에서 계획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의 삶을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이끌어가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조금도 의심할 필요가 없고, 우리의 옛사람이 살아서 내가 구원을 이루고자 하는 그런 모습을 취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기에, 우리가 어느 누구도 함부로 죄인 취급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나를 의롭게 하셨기에, 그 의가 있으면 사는 것입니다.
이 믿음 가지고 모두를 의롭다고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복음적인 삶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직 믿음 안에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믿음은 산도 옮기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회장목사님을 쓰실 때에, 엄청난 세계가 놀라는 복음 역사를 이루시게 된 것입니다.
제가 오래 전에 디아스포라를 할 때, 대추나무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해에 대추나무가 죽었어요.
목사님이 오셔서 대추나무를 타각 치면서 뭐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며칠 후에 서서히 잎이 나더니 나중에는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혀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예정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엄청난 십자가의 능력으로 이제는 육의 사람이 아니라 영의 사람이 되어서 엄청난 일을 하듯이, 우리목사님께서도 그런 일을 하시지 않나 묵상을 해봤습니다.

오늘도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되시고, 주님과 동행하시고, 교회를 위해서 충성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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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귀한 가치 "믿음"안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신뢰하며 나아가는 우리♥

Posted by GaeP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