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신앙생활2017. 8. 21. 08:57
명성교회 5부 예배 (170820 주일)
오규훈 목사님
출애굽기 1:15~22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자와 부아라 하는 자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조산할 때에 살펴서 남자여든 죽이고 여자여든 그는 살게 두라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 이같이 하여 남자를 살렸느냐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라 백성은 생육이 번성하고 심히 강대하며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 그러므로 바로가 그 모든 신민에게 명하여 가로되 남자가 나거든 너희는 그를 하수에 던지고 여자여든 살리라 하였더라
출애굽기 1:15‭-‬22 KRV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할렐루야! 선교봉사힘쓰는찬양대의 찬양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을 줄 믿습니다. 한 번 더 박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한 두달 전 쯤에 명성교회에서 출애굽기 본문으로 전한 적이
있었는데 기억하십니까? 기억하시든 못 하시든 전에 전했던 말씀
부터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설교 제목은 "믿음의 길을 묻다"
였습니다. 첫번째 질문을 못 들었습니다. 두번째 질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에게 왜 고난을 허락하십니까?" 였습니다.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사람들은 축복을 받고는 타락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축복의 자리로 돌려놓고자 하는 방법은 고난
뿐이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고난은 하나님께서 내리는 처방입니다. 고난을 받아들여서 다시
축복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삶의 몫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몫인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삶의 비결을 뭐라고 하니까 "역설적인
삶"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낮아져야 하고, 섬겨야 하고, 자기
목숨까지도 내어주는 삶을 산다고 했습니다. 너희가 죽어야 살
것이고 나누어 주면 넘치도록 부어주실 것이다는 것이죠.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한복음 15:13 KRV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마가복음 8:35 KRV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누가복음 6:38 KRV

역설의 삶의 최고의 모델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고난과 죽음의
십자가를 통해서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결론의 버킹검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삶입니다.
문제는 십자가는 우리에게 단 일회적인 사건이라면 그냥 눈을 한
번 질끈 감고 번지점프 하는 것처럼 딱 한 번만 하면 되는 것 같죠.
그런데 십자가는 사건이 아니고 우리의 삶, 우리의 인생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태복음 16:24 KRV

날마다 우라에게 필요한 것은 매일 매일 역설의 삶을 살아야 하는
신앙의 그릇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설교 제목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면 17절과 2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
출애굽기 1:17‭, ‬21 KRV

17절과 21절 말씀은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적혀있습니다. 고난이 핍박이 있을 때 역설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을
살 때 고난의 삶을 견뎌 낼 수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설상가상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노예 신분이 됐지만 더
크고 강한 민족이 있었기 때문에 바로 왕은 애들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설상가상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더 어려운
상황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고난을 바로 바로 오는 것입니다.
바로 왕이 바로 오잖아요. 힘든 명령을 보내는 것입니다.

오늘 회사가 부도가 났어요. 그 다음 날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의 진단이 본인이 아주 몹쓸 병에 걸렸다는 거예요. 막막한
마음에 집에 돌아왔는데 마침 전화가 와서 전화를 받아보니 아들놈
선생인 겁니다. 아들이 옆에 있는 친구를 때렸으니 학교에 오라는
겁니다. 서둘러 학교를 가는 중에 교통사고가 났어요. 바로 이런
설상가상의 모습인 것입니다.

여러분 미래는 소망의 메세지가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왕에게 보낼 사람을 히브리 산파를
선택합니다. 하나님의 반전입니다.  핵무기를 가지고 난리를 치는
김정은 같은 놈을 어떻게 하기 위해서 트럼프 같은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에 명성교회 은퇴 권사님 두 분을 보낸다고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볼 때 그런 것이죠. 우리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은 히브리 산파를 선택합니다.
여성으로의 기능도 없고, 게다가 노예 신분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히브리 산파를 선택하셨어요. 바로 왕과 히브리 산파와의
대결 구도를 보시면 하나님의 방법을 눈여겨 볼 수 있어요. 우선
히브리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것입니다. 이 반전을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방법에는 아주 놀라운 것을 볼 수 있어요.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이 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는 것, 그것이 능력이라고 보시고 히브리 산파를
활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하나님이 어떻게
사용하시는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을
대결에서 승리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15살 밖에 안 되는 소년
다윗을 블레셋 골리앗과 붙여서 승리케 하시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전투가 아닙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사무엘상 17:45 KRV

믿음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태복음 5장에 보면 팔복이
나오는데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태복음 5:3 KRV

이것이 무슨 이야기냐면 남들이 중요하게 여기고 대단하게 여기는
힘과 권력 이런 것들을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마음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줄 서지 않습니다.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천국이 자기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는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린도전서 1:18 KRV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린도전서 1:23‭-‬25 KRV

하나님의 관점에 익숙해질 수 있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자꾸 눈이가고 그것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삶으로
살아낼 때 믿음의 삶으로 살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삶을
맡길 수 있는 것이 영적인 삶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산파는
정말 연약하고 아무 쓸데가 없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세상에서 볼 때는 아무 능력이 없어 보일 수 있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를 볼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 여기 나온 모든 성도님들처럼 예수님이 구세주고 메시아라고
믿고 사는 사람들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범한 그리스도인 중에 굉장한 내공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산파들이 그래요. 17절 말씀을 보세요.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
출애굽기 1:17 KRV

내가 어디 가서 꿀릴 것도 없지만 누구에게든지 인사 잘하고,
모든 사람에게 예의 잘 지키고,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를
성실히 잘 지키고, 사람들과 관계에서 즐겁게 할 수 있고, 절대로
분노하지 않고 원만히 잘 지내는 것입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라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아버지면 아버지, 어머니면 어머니,
자식이면 자식, 자기의 역할을 잘할 때 비로소 나라를 통치할 수
있다는 것이죠.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은 평소에 열심히 합니다.
벼락치기 하는 애들은 때로는 시험을 잘 볼 순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를 조금만 응용해서 내면 굉장히 어려워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사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인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1년, 2년 그렇게 살면 그것이 능력이 되고
성경에서 나오는 경건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매일의 삶이 습관이 되고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경건은 뭐냐?
성경에서 말하는 경건을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Godliness 라고
합니다. 경건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게 아닙니다. 성수 주일 하는 거
필요하죠. 1년 52주 빠지지 않는 거 중요하죠. 새벽기도 열심히
하고, 때로는 성경공부도 열심히 해야하고, 교회 학교 교사하는
것도 중요하고, 수련회도 중요하고, 선교지에 가서 정말 복음을
기다리고 있는 많은 영혼들을 통해 도전을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평상시 삶의 모습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경건의 모습은 갖췄지만 진실함이 없는 자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을 싫어하시는 이유가 경건의 모습은 있지만
그 마음에 믿음이 없다는 것이죠. 아무도 안 보는데? 뭘 아무도 안
봅니까? 저기 하나님께서 계속 지켜 보시는데요.

어떤 교회에서 총회장 되시는 분이 4년 동안 100억을 도박을 해서
96억을 잃었는데 또 56억을 땄답니다. 판사가 이런 말을 했대요.
"양심의 법정, 하나님의 법정에서 다시 서십시오." 경건이 종교인의
신분으로만 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내가 교회만 왔다 갔다 한다고
경건이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경건의 모습이 무엇인지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어거스트 투랙은 IT 기업의 CEO인데 놀스케롤라인에 있는 멥킨
수도원에서 2주 한 달을 쉬면서 경험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제가 10년 동안 읽었던 책 중에 가장 추천하는 책입니다.
"수도원에 간 CEO" 라는 책입니다. 멥킨 수도원은 트라피스트
정통의 수도원입니다. 달걀 수확, 버섯 재배, 맥주를 만들고 이런
1500년의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곳입니다. 수도원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세계 최고랍니다. 도대체 경영의 기역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최고의 제품을 만들 수 있냐는 겁니다.

광고를 하지 않고 병에 라벨도 붙이지 않는 벨기에의 성 식스투스
수도원의 맥주는 높은 품질로 세계적인 호평을 받고 있으며
벨기에의 스쿠르몽 수도원의 수사들이 제조하는 트라피스트
맥주는 한 해에 5000만 달러의 수익을 거두고 있답니다.
단순합니다. 품질이 좋기 때문입니다. 달걀이 출하되는 나라에선
제빵회사들이 그쪽 계란을 사기 위해 줄을 선다는 것이죠.
100 핵타르 되는 그 넓은 땅에 수도사 20명 정도 밖에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4시간 밖에 일을 안 해요. 새벽 1시에
일어나 하루에 8번을 기도를 하는데 일하는 시간도 딱 지켜요.
비결이 뭡니까? 경건은 성경공부, 예배, 찬양, 하나님 사랑하고,
하나님만 생각할 때만 있는그런 경건이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에 대해 영적인 의무감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트라피스트 수도사들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일하는 동료 고용해서 일하는 직원,
지역 사회, 환경 등을 모두 하나님을 대하는 똑같은 마음으로
대한다는 것이죠. 버섯 재배, 달걀을 꺼낼  떄도 하나님을 대하듯
똑같이 하는 것입니다. 정말 진실하게, 정말 신실하게 하나님 앞에
있듯 어떤 일을 해도 똑같이 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읽는 듯,
화장실 청소를 하는 거죠. 요즘 많은 경영자들이 경건을 갖고
회사를 운영한다면 알바생, 계약직, 비정규직을 모두 인격적으로
존중해주고, 대접하게 될 것입니다.

수도사들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경건을 추구했습니다.
성공만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경건함을 추구하기 때문에 제품이 잘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멥킨 수도원의 달걀이 잘 팔리니 어떤 달걀
업자가 여러 가지 중상모략을 통해  멥킨 수도원에서 나오는
달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법원에서 멥킨
수도원의 달걀을 팔지 못하게 합니다. 그랬더니 다른 사람들이
법원에 탄원서를 내고 멥킨 수도원의 달걀에는 문제가 없다고
해서 다시 달걀을 팔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멥킨 수도원에서는
더이상 달걀을 생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이유는 "만약에
중상모략을 했던 그 업장에 피해가 돌아간다면, 그 역시도 우리가
바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이상 달걀을 생산하지 않겠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큰 사업을 하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70번 씩 7번을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겉옷을 달라면 속옷을 주는 겁니다.
많은 이들이 늘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유익이 먼저가 아닙니다. 윤리고 도덕이고 중요하지 않다라는 게
이 시대의 문제입니다.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존중했을 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느냐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누가복음 19장 12~26절에 한 므나를 가지고 열 므나를 남긴 자,
한 므나를 가지고 다섯 므나를 남긴자에게 착하고 충성된 자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최선이다.
진정성 있게 최선을 다한 것을 하나님이 어떻게 보고 어떻게
축복하시느냐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고, 정말 경건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대하듯, 하나님께 찬양하듯 여러분의 주변의 이웃에게
때로는 내가 싫어했던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대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바로에게 나간 산파가 왕과
대결한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바로를 단칼에 물리치는 결과를 내진
않았습니다. 바로의 힘을 돌파할 수는 있었지만 바로를 무릎
꿇리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경외하는 모습을 갖고 공동체,
지역사회를 어떻게 해보려 생각을 합니다. 한 아이가 초등학교에
갔더니 엄마에게 물어봤잖아요. 이모가 어제 결혼했는데 왜 애기가
안 나와 물어보는 것과 같아요.

2살 이하의 자녀를 죽여라고 했는데 가보니 애가 나왔습니다.
히브리 여인들이 엄청나게 강한 존재입니다. 2살 미만의 아이를
죽이라는 더 엄청난 일이 저질러 졌다면 좌절할 수 있겠죠.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 되는데 출애굽기 2장엔 모세가
태어나죠. 우리의 경외의 신앙이 역사를 단번에 바꾸지 않지만
모든 통로를 통해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나온다고 단박에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인가? 실망하고 분노하고
화날 수 있지만 그러지 말라는 겁니다. 여러분의 자그마한 선택을
역사를 바꾸는 모멘텀으로 역사하신다는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모세가 태어나는 것처럼 마틴 루터가 수도사로 살다가
자기의 소신을 갖고 살다가 종교 개혁이라는 놀라운 일을 이루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르키메데스는 충분히 지렛대와 충분한 장소만 있다면 지구를
들어 올릴 수 있다고 했어요. 하나님은 산파와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십니다. 그저 하나님을 두려워 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살아서 신실하게 사는 산파와 같은 존재를 필요로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렛대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대로 이래야 한다, 이러지 말아야 한다 여러분의
뜻대로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지극히 작은 자한테 냉수 한 그릇 대접하는 것을 하나님은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셨어요. 히브리 산파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여러분의 삶의 자리를 성실하고 신실하게 지켜나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osted by GaeP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