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신앙생활2017. 5. 29. 10:55
17.5.29(월,정구일목사님)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느니라'

누가복음19:5-10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따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할레루야 ~ 오늘도 이 새벽에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나온 모든 사랑하는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주님의 위로와 힘주심이 이 시간 함께 하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 오늘 함께 받들어 읽은 말씀은 삭개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삭개오는 특별히 우리에게도 많이 사랑 받는 인물 가운데 한명이고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참 친숙한 이야기죠
또 특별히 우리 교회는 당회장 목사님께서 지으신 시로 인해 더욱더 우리에게 가깝게 느껴지지 않나 생각합니다
키작은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고 싶었지만 키가 굉장히 작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보기 위해 뽕나무로 올라갔다는 것은 지금은 돌감람나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바로 이전 성경에는 뽕나무라고 되어 있었죠
'올라갔다'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참 동화적인 환타지를 주는 것 같습니다
성경 가운데 찾아보기 드물게 동화적인 이야기이고 우리도 생각할 때 저도 삭개오가 참 좋은 것이 저도 굉장히 키가 작거든요
우리도 삭개오처럼 뭔가 결핍들을 가지고 있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삭개오의 모습이 주님 앞에 나아가는 나의 모습처럼 생각되어지기도 한다는 것이죠
예수님께 가까이 가고 싶지만 무언가 쑥쓰럽고 또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괜히 꺼려지고 또 무언가 결핍이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부끄러움이 있는 그런 모습들 바로 저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삭개오라는 인물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성경은 특별히 재물 돈과 관련하여서 삭개오에게 나타나는 극적인 변화를 알려주는데 삭개오는 성경에 기록되어있기를 '세리의 장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리의 장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유대인들 입장에서 보면 민족의 반역자 오늘날로 이야기 하면 일제치하에서 식민지 시절을 우리가 역사적으로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일제치하에서 앞잡이 정도가 아니라 종로 경찰저 서장급 되는 그런 정말 앞장이가 아니라 괴수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무엇 때문에 이 나라를 배신하고 민족도 버리고 친구도 버리고 평판도 버리고 모든 것을 버렸는가 생각해 보면 그는 사실 돈이 전부였던 사람이었다는 거죠
그가 재물 때문에 돈 때문에 이러한 것들을 또 나의 자존감을 세우고자 이러한 일을 저질렀는데 그런데 이 십구장 말미에 보면 그가 재물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님, 내가 내 재산의 반을 내어놓아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으며 또 이전에 누군가의 것을 더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배나 갚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그가 그의 재산의 반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내어놓고 또 반은 그가 저지른 잘못들을 갚아나가기 위해 쓰겠다고 한 것이죠
결국 재산의 전부를 쓰겠다고 한 것입니다
저는 이전에 삭개오가 반만 내놓은 줄 알았는데 반은 괴롭힌 사람들에게 주겠다는 거예요
이 변화가 놀랍지 않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기대하는 변화이고 바라는 변화이기도 하고 또 굉장히 두려워하는 변화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내 남편 아내 자녀들이 이러한 변화들을 경험할까봐
갑자기 집에 들어와 '내가 재산을 주님 앞에 내어놓겠다 헌신하겠다' 할까봐 두려워하지만 또 나의 삶 가운데 기대하는 변화의 일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삭개오를 살펴볼 때 특별히 누가복음의 누가는 이 삭개오의 이야기 앞에 18장에 보면 한 부자청년이 예수님 앞에 나아오는 장면이 나옵니다
삭개오의 이야기를 부자청년의 이야기와 대조시키는데요 부자청년의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에 청년이 찾아오죠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왜 나를 선하다 이야기 하는가? 선하신 분은 오직 한분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밖에 없다"
그러면서 성경의 계명들에 대해 "간음하지 말고 살인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고 거짓증언 하지 말고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들을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바리새인이기 때문에 다 지켰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말씀하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나서 나를 따르라"
그러자 이 사람이 누가가 기록하기를 '그가 큰 부자였기 때문에 근심하며 돌아갔더라'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 청년은 흠이 없는 청년이었어요
또 다른 복음서에 보면 '관리였다' 기록되어있는데 이 청년은 어려서부터 계명을 어긴적이 없고 말씀을 지키며 살았으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라" 하였을 때 슬픈 기색으로 근심하며 돌아갔다는 거예요
그런데 19장에 나오는 삭개오의 이야기를 보면 삭개오는 의인이 아니었어요
율법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럼에도 주님을 만나게 되고 주님 앞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내어놓게 되었다는 것이죠
주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하고 기뻐하며 "주님, 내가 나의 전재산을 어려운 사람들과 또 빼앗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겠습니다"
참으로 18장과 19장을 보면 누가가 일부러 대조시킨 것 같습니다
선한 삶을 살았음에도 내어놓지 못하는 사람과 악한 삶을 살았음에도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삭개오의 삶
우리 모두 삭개오와 같은 변화가 이 아침 임하게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 삭개오의 이야기를 살펴보길 원하는데 우리는 사실 삭개오의 이야기를 살펴볼 때 삭개오가 나무에 올라갔다는 것에 주목하게 되죠
예수님을 보고 싶어서 예수님에 대한 열망으로 나무에 올라갔다라는 것이 그런데 제가 오늘 말씀 오절부터 받들어 읽었는데 사실 삭개오의 변화는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생각해볼 때 그가 나무에서 내려오는 데서 삭개오의 변화가 시작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너의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그가 급히 내려와 주님을 영접했을 때 그 안에 놀라운 변화가 나타나게 된 줄 믿습니다
그가 나무에서 내려오지 않았을 때 나무 위에 있을 때 그는 그저 한 구경꾼에 지나지 않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 한번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삭개오의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나무 위에 있으면 어떻습니까?
나는 잎사귀와 가지들에 가려져서 나는 잘 보이지 않아요
그러나 나는 예수님을 잘 바라볼 수 있죠
그러니까 삭개오가 나무에 올라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여리고성에 오실 때 많은 소문이 퍼져있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삭개오도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아마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삭개오가 선택한 곳은 무엇이냐 하면 그가 인파들 가운데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그는 나무 위에 올라가 예수님을 '구경하는 것'을 선택했다는 거예요
나무 위에 있으면 나는 예수님을 볼 수 있지만 그 많은 수많은 무리들 또 예수님은 나를 발견하기 어렵잖아요?
저 멀리 나무에 누군가 올라가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어요?
거기에서 인파들과 거리를 두고 그가 키가 작아 불편하였는지 아니면 세리의 장이었고 권력이 있었지만 많은 사람에게 미움 받고 멸시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인파들과 거리를 두려 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러나 삭개오가 어쨌든 선택한 것은 나무 위에 올라가 바라보는 것이었다는 거죠
그러나 예수님께서 찾아가주셔서 바라보고 말씀하시길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너라 내가 오늘 너의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우리는 삭개오가 저희도 유치학교에서 설교할 때 "삭개오가 예수님을 자기 집에 영접했어요"라고 설교하는데 사실 삭개오가 영접한 게 아니죠?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강권하시길 "내가 오늘 너의 집에 들어가 유하여야 하겠다"라고 말씀하셨다는 거죠
이 말씀은 계시록 3장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를 더불어 먹고 그는 나를 더불어 먹으리라' 하신 말씀이에요
그 문을 여는 역사가 바로 삭개오의 역사가 나무에서 내려오는 데서 시작됐다는 거예요
나무에 올라가는 것은 문을 연 것이 아니라 거리를 두는 것이었어요
멀리서 그저 예수님을 보려고 했던 거예요
그러나 나무에서 내려왔을 때 문이 열리고 주님 영접하게 되고 주님께서 오늘 주시는 놀라운 변화가 삭개오의 삶 가운데 나타나게 된 줄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 모인 모든 성도님들에게 또 부족한 저에게도 이러한 나무에서 내려오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교회 나와 예배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서 내려와 나의 마음 가운데 주님을 영접하고 모인 수많은 무리 가운데 섞여 들어가고 주님의 말씀을 가까이서 들으며 봉사와 섬김 직분 가운데 더 가까이 나아가는 은혜가 더 깊은 자리로 나아가는 은혜가 믿음의 지경이 더 넓어지는 은혜가 바로 나무에서 내려오길 원하는 저와 성도님들 가운데 임하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주님을 모시고 위대한 결단을 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삭개오가 한 것이 아니라 바로 주님께서 삭개오에게 베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10절 가운데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러 온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잃어버린 자가 주님께서 찾아 구원하려고 하였던 자가 바로 삭개오였다는 것이죠
오늘 삭개오의 이야기 가운데 앞에 제가 18장 말씀 잠깐 대조하였어요
이 18장 부자관리 이야기 이 부자관리와 삭개오가 극명하게 대비되는데 이 부자관리의 이야기 가운데 제가 아까 말씀 못 드린 것이 있었어요
부자관리가 근심하며 예수님 앞에서 낙심하며 돌아갑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모습을 바라보시며 안타까워하시며 제자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하면 오늘날 우리에게도 참 어려운 말씀이죠
"재물이 있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그러자 듣는 제자들이 깜짝 놀라면서 반문합니다
"예수님 그러면 누가 과연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느니라"
오늘 이 예수님의 말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느니라' 이 말씀이 바로 뒤에 나오는 삭개오의 이야기를 통해 이루어지게 된 줄 믿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십니다
부자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바로 19장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삭개오의 이야기지 않습니까?
바로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느니라'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방법이며 우리가 바로 다음 주 성령강림주일을 사모함으로 기도하는 줄 압니다
당회장 목사님께서도 오십일동안 함께 금식하시며 성령충만함을 위하여 성령강림을 위해 기도하시는 모습을 우리 모두 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할 때 내 힘으로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의 변화를 어떻게 내 힘으로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성령님께서는 할 수 있으시다는 겁니다
우리가 무엇을 구하여야 하겠습니까?
오직 성령을 구하여 나아갈 때 내가 내어놓을 수 없는 것 내가 할 수 없는 것 내가 기도할 수 없는 것 내가 직분의 자리로 나아갈 수 없었던 것을 성령님께서는 하실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성령충만의 은혜가 나를 변화시키고 주님께 더 가까이 인도하시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켜주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저와 여러분의 삶에 임하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말씀하세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오늘 구원이 있는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구원이라고 이야기 할 때 구원이 어떤 것일까요?
나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을 때 그때 받게 되는 구원 먼 미래의 구원을 사실 많이 이야기 하지 않습니까?
내가 나중에 누리게 될 생명과 하나님의 나라 그것을 구원이다라고 말하는 것이죠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구원이 임할 것이다'가 아니라 "오늘 구원이 임하였다" 하신 거예요
오늘 삭개오의 삶 가운데 나타나는 놀라운 변화이지 않습니까?
그러한 변화가 나의 결단이 주님을 향한 새로운 도전들이 바로 오늘의 구원이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나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오직 하나님께서 이 일을 우리에게 하십니다
오늘도 이러한 주님을 우리가 의지함으로 성령님을 의지함으로 나아가는 귀하고 복된 명성교회 성도님들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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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깨웁시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창22:3)
Posted by GaeP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