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10(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히브리서4:14-16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오늘도 이 새벽에 나와 예배하는 모든 성도님들의 삶과 가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바울 어거스틴 루터 모두가 기독교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분들입니다
이분들 때문에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시작부터 바른길을 걸었던 것은 아닙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진리의 길에 들어서려 했었습니다
바울은 이전에 사울이었던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히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힘이 없는 자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쉽게 말해 자신이 당시 완벽한 유대주의자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완벽한'
어느 정도면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해를 돕기 위해 '말하는대로'라는 프로그램에서 지금 방송인 서장훈이 했던 말을 소개하겠습니다
서장훈은 한국 프로농구에서 가장 골을 많이 넣은 선수입니다
한국 국적을 가진 선수들 중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었습니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골을 많이 넣은 선수입니다
기록이 만삼천이백삼십일점
십오년 동안 매일같이 이십점씩을 넣으면 그 점수가 된다고 합니다
선수생활 첫날부터 그만 둔 날까지 매일 압도적으로 점수를 많이 넣었는데 그렇게까지 하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릴적 농구를 선택한 순간부터 서장훈 선수의 인생의 꿈은 오로지 한 가지였다고 합니다
정말 압도적인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선수가 되는 것
그냥 1등이 아닌 누구도 넘을 수 없는 선수가 되고 싶었다고 합니다
가장 많이 노력하고 가장 많이 연습했다고 하진 못하겠지만 다른 사람에겐 없었던 것이 끊임없이 본인 스스로 '아 왜 그것밖에 못했을까'
'왜 그것밖에 못했을까'라고 정말 냉정하게 자신을 평가했다고 합니다
평균 이십점 가까이 넣는다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인데 선수생활 내내 십오년동안 단 한번도 시합이 끝나고 돌아와서 만족해본 적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보통 이십점 정도를 내면 이제 신문기사에 베스트 플레이어로 나오게 되는데 주위에서 칭찬을 해도 늘 가서 엄청나게 후회했다는 것입니다
'아 왜 그것밖에 못했을까'
밤에 경기영상를 돌려보며 늘 반성했다는 것입니다
삼십점 사십점을 넣어도 '이것밖에 못하면 나는 앞으로 선수생활 끝날때까지 이러다 마는 선수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해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는 오늘의 바보같은 짓은 하지 말아야지' 생가했다고 합니다
서장훈 선수는 목디스크가 있었는데 수술하면 경기를 쉬어야 하니까 경기를 쉬면 안 되니까 수술을 안 하고 목 보호대를 하고 뛰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뛰다가 목이 뒤로 꺾여지게 되면 선수생활이 바로 끝나는 거데 서장훈 선수는 절대로 스톱이 없었던 것입니다
방송을 통해 잘 알려졌는데 서장훈 선수는 결벽이 있다고 합니다
이 결벽이 선수 생활에 생겼다고 합니다
잘하고 싶어서 그랬다는 겁니다
마치 전쟁에 나온 장수처럼 경기 전에 방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깨끗하게 씻고 경기를 신성시 했던 행동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것들이 커져서 결벽이 되었다고 합니다
모두가 다 거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습니다
늘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늘 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같은 시간에 화장실을 가고 같은 시간에 씻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신발을 신고 평생을 함께 해온 결벽에 가까운 징크스들, 그렇게 해서 가장 편한 자세로 경기에 임했다고 합니다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경기에서 지는 날 입었던 옷은 버렸다고 합니다
그 유니폼은 다시는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질까 겁났다고 합니다
또 질까 두려웠다고 합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은퇴하던 날 했던 이야기가 "앞으로 평생 정말 평생을 후회하며 살 것 같다"고 했다고 합니다
조금더 몸관리 잘하고 술 덜 먹고 했다면 십삼만점이 아니라 이만점도 할 수 있었을텐데 너무 후회가 밀려온다고 은퇴소감을 했다고 합니다
서장훈 선수가 십오년간 매일같이 이렇게 했는데도 '완벽한'이라고 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바울은 완벽하게 유대교 율법 주의자로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 완벽이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핍박한 자리까지 가게 한 것입니다
율법을 완벽하게 완수해야 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간 것입니다
바울은 혈통으로는 유대교 명문가였고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유대주의자로서는 올라갈 수 있는 최정상에 섰던 완벽한 사람이었습니다
어거스틴 또한 오랜 시간 진리를 찾아 헤맸습니다
철학에 심취했습니다
열일곱살에 한 여성과 동거해서 십사년을 살며 아들도 낳았습니다
그로 인해 그리스도인이었던 어머니 모니카와 절교해습니다
신플라톤 주의자로 살기도 했습니다
루터는 보도여행중 친구가 낙뢰에 맞아 죽게 되자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학업을 중단합니다
어거스틴 수도에 들어가 사제가 되고 그도 흠을 찾을 수 없을만큼 금욕적이고 모범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일례로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면서 그렇게까지 하나님을 만나고자 노력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 어거스틴 루터 모두가 각자 스스로 한계까지 내몰던 노력으로 진리를 찾으려 했습니다
이제 이분들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진리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로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피조물의 구원과 생명은 창조주에게 있습니다
이사야서에 '주는 우리의 토기장이시라' 모든 것이 토기장이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서는 하나님과의 이 관계가 깨어졌다고 합니다
모든 일에 원인과 결과가 있는데 그 원인을 '죄'라고 말씀합니다
이 죄 때문에 인간은 구원과 생명으로부터 분리가 되었습니다
죄의 값
죄의값을 예수님의 비유로 말씀 드리면 일만달란트라고 표현합니다
일만달란트는 한화로 삼조원에 가깝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창조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만달란트라는 것은 이 죄가 인간의 영역에서 해결가능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바울이나 어거스틴이나 루터나 모두 여기서 좌절했다는 것입니다
죄의 해결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제사법을 구체적으로 지시하셔서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게 하셨습니다
대제사장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해서 동물을 잡아서 각을 뜨고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또 동물의 몸을 불에 태우는 방식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속죄를 얻기 위해 이런 제물이 필요했던 겁니다
그러나 이제 더이상 이런 제물과 제사법이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루터는 담대히를 '기쁘게' '결단코'라는 뜻으로 번역을 했다고 합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기쁘게 나아갈 것이니라'
'결단코 나아갈 것이니라'
자,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대답입니다
죄의 해결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하나님께서 온인류의 속죄에 대한 제물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어린양이 그렇게 속죄제물로 드려진 것으로 온인류의 죄의 문제가 단 한번에 해결되었습니다
십자가의 핏값으로 일만달란트가 탕감되었습니다
이후로 우리는 아무리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십자가를 의지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은혜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히브리서는 이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을 해석하기를 예수님을 '큰 대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큰 대제사장이니 승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큰 대제사장
'큰'과 '대'가 중복이 됩니다
그러나 이 예수님이야 말로 대제사장 중에서 가장 큰 대제사장 참된 대제사장인 이 사실을 전하고자 했던 겁니다
대제사장의 역할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성소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큰 대제사장'이란 말은 온인류를 대신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신, 다른 말로 예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 덕분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것을 '은혜의 보좌'라고 표현했습니다
바울 어거스틴 루터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꼬꾸라졌습니다
자신의 방식으로는 절대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십자가로부터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밀려들어온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니 인간의 영역으로는 할 수 없는 그 자리에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의 은혜에 굴복한 바울의 말입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루터도 그리스도의 은혜를 겅험했습니다
그리고 종교개혁 슬로건 '솔라 그라티아' '오직 은혜'를 내세우며 신학의 본질을 돌아보자고 외쳤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십자가 앞에서 그 은혜를 경험했으면 좋겠습니다
나아가서 그 은혜의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 16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자, '긍휼' 그리고 '은혜'가 핵심 단어입니다
긍휼은 다른 말로 '자비'입니다
곧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이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절실하신가요?
아니면 '그것 없어도 사는데? 크게 어려움 없다!' 생각하고 계신가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의 영적 빈곤함을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든 인간은 세상의 것으로 채울 수 없는 영적 빈곤함을, 절대로 채울 수 없는 영적 빈곤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배부른 사람들에게는 근사한 식사가 소용없는 겁니다
부자에겐 돈 몇푼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자신을 배부르다고 부유하다고 잘못 생각하기 때문에 긍휼과 은혜가 필요없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영적 빈곤을 처절하게 깨달은 사람은 이 하나님께 긍휼과 은혜를 구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되는 것입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용기를 내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가까이 나아가면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만나서 필요한 때에 도움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목사님께서 '은혜가 왕이다'라는 말씀으로 귀한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이제 목사님의 말씀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아담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왔습니다
마귀가 왕노릇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한분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와 마귀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은혜가 왕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고 나아갈 때 세상의 모든 문이 열립니다'
은혜의 때를 붙잡는 모든 성도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
새벽을 깨웁시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57:8)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히브리서4:14-16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오늘도 이 새벽에 나와 예배하는 모든 성도님들의 삶과 가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바울 어거스틴 루터 모두가 기독교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분들입니다
이분들 때문에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시작부터 바른길을 걸었던 것은 아닙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진리의 길에 들어서려 했었습니다
바울은 이전에 사울이었던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히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힘이 없는 자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쉽게 말해 자신이 당시 완벽한 유대주의자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완벽한'
어느 정도면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해를 돕기 위해 '말하는대로'라는 프로그램에서 지금 방송인 서장훈이 했던 말을 소개하겠습니다
서장훈은 한국 프로농구에서 가장 골을 많이 넣은 선수입니다
한국 국적을 가진 선수들 중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었습니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골을 많이 넣은 선수입니다
기록이 만삼천이백삼십일점
십오년 동안 매일같이 이십점씩을 넣으면 그 점수가 된다고 합니다
선수생활 첫날부터 그만 둔 날까지 매일 압도적으로 점수를 많이 넣었는데 그렇게까지 하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릴적 농구를 선택한 순간부터 서장훈 선수의 인생의 꿈은 오로지 한 가지였다고 합니다
정말 압도적인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선수가 되는 것
그냥 1등이 아닌 누구도 넘을 수 없는 선수가 되고 싶었다고 합니다
가장 많이 노력하고 가장 많이 연습했다고 하진 못하겠지만 다른 사람에겐 없었던 것이 끊임없이 본인 스스로 '아 왜 그것밖에 못했을까'
'왜 그것밖에 못했을까'라고 정말 냉정하게 자신을 평가했다고 합니다
평균 이십점 가까이 넣는다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인데 선수생활 내내 십오년동안 단 한번도 시합이 끝나고 돌아와서 만족해본 적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보통 이십점 정도를 내면 이제 신문기사에 베스트 플레이어로 나오게 되는데 주위에서 칭찬을 해도 늘 가서 엄청나게 후회했다는 것입니다
'아 왜 그것밖에 못했을까'
밤에 경기영상를 돌려보며 늘 반성했다는 것입니다
삼십점 사십점을 넣어도 '이것밖에 못하면 나는 앞으로 선수생활 끝날때까지 이러다 마는 선수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해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는 오늘의 바보같은 짓은 하지 말아야지' 생가했다고 합니다
서장훈 선수는 목디스크가 있었는데 수술하면 경기를 쉬어야 하니까 경기를 쉬면 안 되니까 수술을 안 하고 목 보호대를 하고 뛰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뛰다가 목이 뒤로 꺾여지게 되면 선수생활이 바로 끝나는 거데 서장훈 선수는 절대로 스톱이 없었던 것입니다
방송을 통해 잘 알려졌는데 서장훈 선수는 결벽이 있다고 합니다
이 결벽이 선수 생활에 생겼다고 합니다
잘하고 싶어서 그랬다는 겁니다
마치 전쟁에 나온 장수처럼 경기 전에 방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깨끗하게 씻고 경기를 신성시 했던 행동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것들이 커져서 결벽이 되었다고 합니다
모두가 다 거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습니다
늘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늘 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같은 시간에 화장실을 가고 같은 시간에 씻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신발을 신고 평생을 함께 해온 결벽에 가까운 징크스들, 그렇게 해서 가장 편한 자세로 경기에 임했다고 합니다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경기에서 지는 날 입었던 옷은 버렸다고 합니다
그 유니폼은 다시는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질까 겁났다고 합니다
또 질까 두려웠다고 합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은퇴하던 날 했던 이야기가 "앞으로 평생 정말 평생을 후회하며 살 것 같다"고 했다고 합니다
조금더 몸관리 잘하고 술 덜 먹고 했다면 십삼만점이 아니라 이만점도 할 수 있었을텐데 너무 후회가 밀려온다고 은퇴소감을 했다고 합니다
서장훈 선수가 십오년간 매일같이 이렇게 했는데도 '완벽한'이라고 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바울은 완벽하게 유대교 율법 주의자로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 완벽이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핍박한 자리까지 가게 한 것입니다
율법을 완벽하게 완수해야 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간 것입니다
바울은 혈통으로는 유대교 명문가였고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유대주의자로서는 올라갈 수 있는 최정상에 섰던 완벽한 사람이었습니다
어거스틴 또한 오랜 시간 진리를 찾아 헤맸습니다
철학에 심취했습니다
열일곱살에 한 여성과 동거해서 십사년을 살며 아들도 낳았습니다
그로 인해 그리스도인이었던 어머니 모니카와 절교해습니다
신플라톤 주의자로 살기도 했습니다
루터는 보도여행중 친구가 낙뢰에 맞아 죽게 되자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학업을 중단합니다
어거스틴 수도에 들어가 사제가 되고 그도 흠을 찾을 수 없을만큼 금욕적이고 모범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일례로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면서 그렇게까지 하나님을 만나고자 노력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 어거스틴 루터 모두가 각자 스스로 한계까지 내몰던 노력으로 진리를 찾으려 했습니다
이제 이분들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진리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로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피조물의 구원과 생명은 창조주에게 있습니다
이사야서에 '주는 우리의 토기장이시라' 모든 것이 토기장이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서는 하나님과의 이 관계가 깨어졌다고 합니다
모든 일에 원인과 결과가 있는데 그 원인을 '죄'라고 말씀합니다
이 죄 때문에 인간은 구원과 생명으로부터 분리가 되었습니다
죄의 값
죄의값을 예수님의 비유로 말씀 드리면 일만달란트라고 표현합니다
일만달란트는 한화로 삼조원에 가깝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창조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만달란트라는 것은 이 죄가 인간의 영역에서 해결가능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바울이나 어거스틴이나 루터나 모두 여기서 좌절했다는 것입니다
죄의 해결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제사법을 구체적으로 지시하셔서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게 하셨습니다
대제사장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해서 동물을 잡아서 각을 뜨고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또 동물의 몸을 불에 태우는 방식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속죄를 얻기 위해 이런 제물이 필요했던 겁니다
그러나 이제 더이상 이런 제물과 제사법이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루터는 담대히를 '기쁘게' '결단코'라는 뜻으로 번역을 했다고 합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기쁘게 나아갈 것이니라'
'결단코 나아갈 것이니라'
자,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대답입니다
죄의 해결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하나님께서 온인류의 속죄에 대한 제물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어린양이 그렇게 속죄제물로 드려진 것으로 온인류의 죄의 문제가 단 한번에 해결되었습니다
십자가의 핏값으로 일만달란트가 탕감되었습니다
이후로 우리는 아무리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십자가를 의지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은혜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히브리서는 이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을 해석하기를 예수님을 '큰 대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큰 대제사장이니 승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큰 대제사장
'큰'과 '대'가 중복이 됩니다
그러나 이 예수님이야 말로 대제사장 중에서 가장 큰 대제사장 참된 대제사장인 이 사실을 전하고자 했던 겁니다
대제사장의 역할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성소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큰 대제사장'이란 말은 온인류를 대신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신, 다른 말로 예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 덕분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것을 '은혜의 보좌'라고 표현했습니다
바울 어거스틴 루터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꼬꾸라졌습니다
자신의 방식으로는 절대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십자가로부터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밀려들어온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니 인간의 영역으로는 할 수 없는 그 자리에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의 은혜에 굴복한 바울의 말입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루터도 그리스도의 은혜를 겅험했습니다
그리고 종교개혁 슬로건 '솔라 그라티아' '오직 은혜'를 내세우며 신학의 본질을 돌아보자고 외쳤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십자가 앞에서 그 은혜를 경험했으면 좋겠습니다
나아가서 그 은혜의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 16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자, '긍휼' 그리고 '은혜'가 핵심 단어입니다
긍휼은 다른 말로 '자비'입니다
곧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이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절실하신가요?
아니면 '그것 없어도 사는데? 크게 어려움 없다!' 생각하고 계신가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의 영적 빈곤함을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든 인간은 세상의 것으로 채울 수 없는 영적 빈곤함을, 절대로 채울 수 없는 영적 빈곤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배부른 사람들에게는 근사한 식사가 소용없는 겁니다
부자에겐 돈 몇푼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자신을 배부르다고 부유하다고 잘못 생각하기 때문에 긍휼과 은혜가 필요없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영적 빈곤을 처절하게 깨달은 사람은 이 하나님께 긍휼과 은혜를 구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되는 것입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용기를 내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가까이 나아가면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만나서 필요한 때에 도움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목사님께서 '은혜가 왕이다'라는 말씀으로 귀한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이제 목사님의 말씀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아담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왔습니다
마귀가 왕노릇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한분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와 마귀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은혜가 왕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고 나아갈 때 세상의 모든 문이 열립니다'
은혜의 때를 붙잡는 모든 성도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
새벽을 깨웁시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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