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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7.08.21 [2017.8.20]명성교회 주일 5부 예배 설교말씀
etc/신앙생활2017. 8. 22. 08:52
17.8.22(화,김우종목사님)

'하나님의 시간표'

누가복음3:1-14
1.디베료 황제가 통치한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 의 분봉왕 으로
2.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은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3.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4.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5.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6.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7.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그러므로 회개 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0.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11.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벌 있는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12.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14.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할렐루야 ~
올해 초에 미국 경제 전문 잡지인 포츈지에서 세계를 이끌어가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 오십인을 선정했습니다
이번 선정 기준은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희망을 주는 능력과 지지자들을 결속시키는 능력 그리고 반대의 논리를 포용하는 능력이 선정 기준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어느 시대든 사람들에게 주목 받는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디베료 황제나 본디오 빌라도 분봉왕 헤롯 그의 동생 빌립 루사니아와 같은 정치자 또 안나스와 가야바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 그랬습니다
세상의 관심은 항상 이러한 리더나 권력자들에게 있습니다
그들의 스팩이나 그들이 거하는 궁전 또는 웅장한 성전이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들의 말 한마디 정책 하나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렇게 대단한 사회적 리더들이 세상을 이끌어가고 또 역사를 선도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상 시대와 역사의 주관자는 이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이시죠
전능하신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 2절에 하나님의 말씀이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합니다
3장 2절 함께 읽겠습니다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은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아멘
오늘 본문 1절에서는 많은 지도자들 정치지도자들 또 종교지도자들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나서 누구를 언급하냐 하면 바로 세례요한입니다
세례요한인데 특별히 빈들에 있는 세례요한을 언급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권력자들에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화려한 왕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빈들에 있는 무명한 선지자요 메뚜기와 석청을 먹는 허름한 복장을 한 참으로 거친 외향을 하고 있는 선지자 세례요한 그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집니다
사람은 누구나 신분에 따라 있어야 될 자리가 있습니다
학생이라면 학교나 교실 정치인이라면 국회가 그 자리가 될것이고 학교 선생님이라면 강단일 것이고 각각 자기의 자리가 있습니다
이처럼 신약시대에도 예언자들이 있어야 할 자리가 있었는데 예언자가 있어야 할 마땅한 자리는 어디냐 하면 광야, 빈들입니다
그래서 신약시대에 어떤 예언자가 광야에 있다고 하면 '아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빈들에 나가 있구나 이 예언자야 말로 진짜 예언자다 이 사람이 있는 광야에 나가 그를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
오늘 세례요한도 광야에 나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광야로 모였습니다
그는 외쳤습니다
회개하라고 외치자 많은 살람들이 세례를 받고 회개를 합니다
왜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에게 가지 않고 광야의 요한에게로 나갔습니까?
것은 그에게서 진짜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루살렘 신학교가 아니라 광야에서 진짜 하나님의 음성을 체험하고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광야로 나갔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례요한이 진짜 예언자라고 믿고 그를 신뢰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광야 나간 것을 보고 그를 신뢰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장이 누릴 수 있는 존귀와 영광을 다 버리고 낮은 모습으로 광야에 나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진짜 예언자로 본 것이죠
그럼 다시 묻습니다
예언자들이 광야로 나간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이 광야로 나간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언자들을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광야로 간 것입니다
광야, 빈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좋은 장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장소가 바로 광야, 빈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장소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장은 꽤 긴 장인데 80장에 이런 말씀이 있죠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세례요한은 분명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이를 때까지 빈 들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고 마침내 그는 자신의 임무를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 2절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드디어 시작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기 전까지 세레요한은 어떻게 했습니까?
기다린 것이죠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을 때 주저하지 않습니다
빈 들에서 머물며 기다렸던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자 세상무대로 나선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철저하게 누구의 시간표에 따라 움직였습니까?
자신의 시간표가 아닌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내 시간표가 아닌 하나님의 시간표에 맞추었던 것입니다
이런 찬양도 있죠
♬주님 말씀 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라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라♬
오늘 세례요한이 그랬습니다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맞추었습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도 그랬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 따라 그들은 가고 서고 반복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기다려야 될 때가 있고 또 나아가야 될 때가 있습니다
전도서 3장에도 때에 대해 말씀합니다만 그래서 믿는 사람들도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고스돕을 잘해야 된다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는 고습돕은 세상의 고스돕과 다르겠죠?
하나님의 뜻 안에서 고스돕을 잘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그 출발을 을리는 총성은 누가 들려주십니까?
출발을 알리는 총성은 하나님께서 알려주십니다
그 총성이 들릴 때까지 우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세례요한처럼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총성이 울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저하지 말고 요한처럼 무대에 나서야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럼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빈 들에서 잠잠히 머물 수 있습니까?
머무를 수 있으십니까?
여러분에게 묻는 겁니다 ㅎㅎ
또한 총성이 들릴 때 목숨 바쳐 주님을 위해 나갈 수 있습니까?
나의 뜻 나의 시간표가 아닌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표에 순종할 수 있는냐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에 순종하는 여러분 되기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의 현장에 서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세례요한이 전파한 죄사함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는 듣는 사람들에게 막강한 부담감을 주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마치 목숨을 내놓은 사람처럼 세례 받으러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아랑곳하지 않고 외치죠
"독사의 자식들아!"
이렇게 외칩니다
심판의 긴박성을 강조하고 유대인들의 교만함을 정면으로 지적하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외칩니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말씀이죠
진정한 회개 없이 종교적 혈통만을 주장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회개하라고 말씀하시죠
좋은 열매를 맺지 않으면 도끼에 찍혀 불에 던져지는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고의 목적은 그냥 겁 주고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시기 위한 것입니다
구원에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주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모두가 듣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듣지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모두가 듣기를 바란다는 주님의 깊으신 사랑의 마음이 포함된 말씀인 것입니다
모두가 듣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마음인 것이죠
누가복음 2장 34절 35절 보면 시므온이 예수님이 태어날 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34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폐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이렇게 시므온의 말처럼 예수님의 양과 염소의 말씀과 같은 것이죠
세례요한의 외침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그 외침이 듣기 싫어 세례요한을 죽인 귀가 닫힌 자들이 있는가 하면 그들의 마음이 풀려 인생의 방향을 정한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인생길이 달라집니다
우리에게 여러분에게 나에게 들을 귀가 있습니까?
말씀 듣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세례요한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가 오래전에 예언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전부터 계획하셨고 또 요한은 그 사명에 충실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그분의 구원계획에 동참합니다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고 회개에 합당한 삶을 살라고 선포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사명을 아는 사람은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비록 사명의 길이 좁고 힘들고 어려운 길이지만 인생을 허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간 길은 험하고 좁은 길이며 생명을 내어 놓아야 하는 길이었고 그리고 그런 인생을 살았습니다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이었죠
그러나 그는 사명의 길을 감당하며 후회없이 살았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여러분의 인생이 나의 인생도 이러하길 바랍니다
향방없이 달리지 말고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빈 들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자신만의 빈 들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만나시는 고독한 장소에서 침묵의 시간을 가질 때 세미한 음성을 들려주실 줄 믿습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믿습니다
빈 들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요한은 그 말씀 그대로 선포합니다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나 고급정보를 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전한 것입니다
그가 전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메세지를 품은 사람은 담대합니다
우리 목사님의 말씀과 선포를 봐도 알 수 있듯이 담대합니다
어디 눌림이 없는 것이죠
오늘 우리가 단순한 정보전달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지길 바랍니다
요한은 요단강 근처에서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
3절이죠?
3.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그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요한의 중심은 무엇이었습니까?
확실하고 단어한 어조로 참된 열매를 맺는 비결에 대해 선포했습니다
진노를 피하는 방법에 대해 전했습니다
무엇입니까?
회개입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다는 것은 심판이 임박했다는 뜻입니다
또한 줄기가 아닌 뿌리입니다
뿌리는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중심을 하나님은 아신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심판 받을만한 제목이 무엇인지 이유는 무엇인지 아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땅 한반도에 전쟁의 기운이 있다고 세계는 불안해하고 염려하고 걱정합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믿음이 너무 좋아서인지 편안하게 지난 밤도 자고 오늘 아침 또 나왔습니다
아멘입니까? ㅎㅎ
좋은 믿음일 수 있지만.. 이러한 작금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사인을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메세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때 나 자신을 돌아보고 교회를 돌아보고 이나라를 돌아봐야 될 줄 믿습니다
나의 중심이 어떠한지 나의 믿음의 중심이 어떠한지 지금 나는 어떤 소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맺어야 할 회개의 합당한 열매는 무엇인지 혹시 심판의 도끼가 내 중심을 향해 겨누고 있지는 않는지
여러분이 깨달으면 피할 줄 믿습니다
회개하면 진노를 면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음성 그 자체가 은혜인 것입니다
그 내용이 어떠한 것이든지 심판을 포함하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나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메세지에 귀를 기울이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 맺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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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깨웁시다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가더라(눅21:38)
Posted by GaePein
etc/신앙생활2017. 8. 21. 08:57
명성교회 5부 예배 (170820 주일)
오규훈 목사님
출애굽기 1:15~22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자와 부아라 하는 자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조산할 때에 살펴서 남자여든 죽이고 여자여든 그는 살게 두라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 이같이 하여 남자를 살렸느냐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라 백성은 생육이 번성하고 심히 강대하며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 그러므로 바로가 그 모든 신민에게 명하여 가로되 남자가 나거든 너희는 그를 하수에 던지고 여자여든 살리라 하였더라
출애굽기 1:15‭-‬22 KRV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할렐루야! 선교봉사힘쓰는찬양대의 찬양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을 줄 믿습니다. 한 번 더 박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한 두달 전 쯤에 명성교회에서 출애굽기 본문으로 전한 적이
있었는데 기억하십니까? 기억하시든 못 하시든 전에 전했던 말씀
부터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설교 제목은 "믿음의 길을 묻다"
였습니다. 첫번째 질문을 못 들었습니다. 두번째 질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에게 왜 고난을 허락하십니까?" 였습니다.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사람들은 축복을 받고는 타락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축복의 자리로 돌려놓고자 하는 방법은 고난
뿐이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고난은 하나님께서 내리는 처방입니다. 고난을 받아들여서 다시
축복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삶의 몫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몫인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삶의 비결을 뭐라고 하니까 "역설적인
삶"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낮아져야 하고, 섬겨야 하고, 자기
목숨까지도 내어주는 삶을 산다고 했습니다. 너희가 죽어야 살
것이고 나누어 주면 넘치도록 부어주실 것이다는 것이죠.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한복음 15:13 KRV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마가복음 8:35 KRV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누가복음 6:38 KRV

역설의 삶의 최고의 모델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고난과 죽음의
십자가를 통해서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결론의 버킹검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삶입니다.
문제는 십자가는 우리에게 단 일회적인 사건이라면 그냥 눈을 한
번 질끈 감고 번지점프 하는 것처럼 딱 한 번만 하면 되는 것 같죠.
그런데 십자가는 사건이 아니고 우리의 삶, 우리의 인생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태복음 16:24 KRV

날마다 우라에게 필요한 것은 매일 매일 역설의 삶을 살아야 하는
신앙의 그릇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설교 제목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면 17절과 2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
출애굽기 1:17‭, ‬21 KRV

17절과 21절 말씀은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적혀있습니다. 고난이 핍박이 있을 때 역설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을
살 때 고난의 삶을 견뎌 낼 수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설상가상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노예 신분이 됐지만 더
크고 강한 민족이 있었기 때문에 바로 왕은 애들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설상가상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더 어려운
상황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고난을 바로 바로 오는 것입니다.
바로 왕이 바로 오잖아요. 힘든 명령을 보내는 것입니다.

오늘 회사가 부도가 났어요. 그 다음 날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의 진단이 본인이 아주 몹쓸 병에 걸렸다는 거예요. 막막한
마음에 집에 돌아왔는데 마침 전화가 와서 전화를 받아보니 아들놈
선생인 겁니다. 아들이 옆에 있는 친구를 때렸으니 학교에 오라는
겁니다. 서둘러 학교를 가는 중에 교통사고가 났어요. 바로 이런
설상가상의 모습인 것입니다.

여러분 미래는 소망의 메세지가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왕에게 보낼 사람을 히브리 산파를
선택합니다. 하나님의 반전입니다.  핵무기를 가지고 난리를 치는
김정은 같은 놈을 어떻게 하기 위해서 트럼프 같은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에 명성교회 은퇴 권사님 두 분을 보낸다고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볼 때 그런 것이죠. 우리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은 히브리 산파를 선택합니다.
여성으로의 기능도 없고, 게다가 노예 신분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히브리 산파를 선택하셨어요. 바로 왕과 히브리 산파와의
대결 구도를 보시면 하나님의 방법을 눈여겨 볼 수 있어요. 우선
히브리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것입니다. 이 반전을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방법에는 아주 놀라운 것을 볼 수 있어요.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이 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는 것, 그것이 능력이라고 보시고 히브리 산파를
활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하나님이 어떻게
사용하시는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을
대결에서 승리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15살 밖에 안 되는 소년
다윗을 블레셋 골리앗과 붙여서 승리케 하시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전투가 아닙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사무엘상 17:45 KRV

믿음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태복음 5장에 보면 팔복이
나오는데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태복음 5:3 KRV

이것이 무슨 이야기냐면 남들이 중요하게 여기고 대단하게 여기는
힘과 권력 이런 것들을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마음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줄 서지 않습니다.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천국이 자기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는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린도전서 1:18 KRV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린도전서 1:23‭-‬25 KRV

하나님의 관점에 익숙해질 수 있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자꾸 눈이가고 그것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삶으로
살아낼 때 믿음의 삶으로 살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삶을
맡길 수 있는 것이 영적인 삶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산파는
정말 연약하고 아무 쓸데가 없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세상에서 볼 때는 아무 능력이 없어 보일 수 있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를 볼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 여기 나온 모든 성도님들처럼 예수님이 구세주고 메시아라고
믿고 사는 사람들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범한 그리스도인 중에 굉장한 내공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산파들이 그래요. 17절 말씀을 보세요.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
출애굽기 1:17 KRV

내가 어디 가서 꿀릴 것도 없지만 누구에게든지 인사 잘하고,
모든 사람에게 예의 잘 지키고,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를
성실히 잘 지키고, 사람들과 관계에서 즐겁게 할 수 있고, 절대로
분노하지 않고 원만히 잘 지내는 것입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라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아버지면 아버지, 어머니면 어머니,
자식이면 자식, 자기의 역할을 잘할 때 비로소 나라를 통치할 수
있다는 것이죠.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은 평소에 열심히 합니다.
벼락치기 하는 애들은 때로는 시험을 잘 볼 순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를 조금만 응용해서 내면 굉장히 어려워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사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인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1년, 2년 그렇게 살면 그것이 능력이 되고
성경에서 나오는 경건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매일의 삶이 습관이 되고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경건은 뭐냐?
성경에서 말하는 경건을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Godliness 라고
합니다. 경건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게 아닙니다. 성수 주일 하는 거
필요하죠. 1년 52주 빠지지 않는 거 중요하죠. 새벽기도 열심히
하고, 때로는 성경공부도 열심히 해야하고, 교회 학교 교사하는
것도 중요하고, 수련회도 중요하고, 선교지에 가서 정말 복음을
기다리고 있는 많은 영혼들을 통해 도전을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평상시 삶의 모습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경건의 모습은 갖췄지만 진실함이 없는 자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을 싫어하시는 이유가 경건의 모습은 있지만
그 마음에 믿음이 없다는 것이죠. 아무도 안 보는데? 뭘 아무도 안
봅니까? 저기 하나님께서 계속 지켜 보시는데요.

어떤 교회에서 총회장 되시는 분이 4년 동안 100억을 도박을 해서
96억을 잃었는데 또 56억을 땄답니다. 판사가 이런 말을 했대요.
"양심의 법정, 하나님의 법정에서 다시 서십시오." 경건이 종교인의
신분으로만 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내가 교회만 왔다 갔다 한다고
경건이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경건의 모습이 무엇인지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어거스트 투랙은 IT 기업의 CEO인데 놀스케롤라인에 있는 멥킨
수도원에서 2주 한 달을 쉬면서 경험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제가 10년 동안 읽었던 책 중에 가장 추천하는 책입니다.
"수도원에 간 CEO" 라는 책입니다. 멥킨 수도원은 트라피스트
정통의 수도원입니다. 달걀 수확, 버섯 재배, 맥주를 만들고 이런
1500년의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곳입니다. 수도원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세계 최고랍니다. 도대체 경영의 기역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최고의 제품을 만들 수 있냐는 겁니다.

광고를 하지 않고 병에 라벨도 붙이지 않는 벨기에의 성 식스투스
수도원의 맥주는 높은 품질로 세계적인 호평을 받고 있으며
벨기에의 스쿠르몽 수도원의 수사들이 제조하는 트라피스트
맥주는 한 해에 5000만 달러의 수익을 거두고 있답니다.
단순합니다. 품질이 좋기 때문입니다. 달걀이 출하되는 나라에선
제빵회사들이 그쪽 계란을 사기 위해 줄을 선다는 것이죠.
100 핵타르 되는 그 넓은 땅에 수도사 20명 정도 밖에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4시간 밖에 일을 안 해요. 새벽 1시에
일어나 하루에 8번을 기도를 하는데 일하는 시간도 딱 지켜요.
비결이 뭡니까? 경건은 성경공부, 예배, 찬양, 하나님 사랑하고,
하나님만 생각할 때만 있는그런 경건이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에 대해 영적인 의무감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트라피스트 수도사들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일하는 동료 고용해서 일하는 직원,
지역 사회, 환경 등을 모두 하나님을 대하는 똑같은 마음으로
대한다는 것이죠. 버섯 재배, 달걀을 꺼낼  떄도 하나님을 대하듯
똑같이 하는 것입니다. 정말 진실하게, 정말 신실하게 하나님 앞에
있듯 어떤 일을 해도 똑같이 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읽는 듯,
화장실 청소를 하는 거죠. 요즘 많은 경영자들이 경건을 갖고
회사를 운영한다면 알바생, 계약직, 비정규직을 모두 인격적으로
존중해주고, 대접하게 될 것입니다.

수도사들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경건을 추구했습니다.
성공만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경건함을 추구하기 때문에 제품이 잘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멥킨 수도원의 달걀이 잘 팔리니 어떤 달걀
업자가 여러 가지 중상모략을 통해  멥킨 수도원에서 나오는
달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법원에서 멥킨
수도원의 달걀을 팔지 못하게 합니다. 그랬더니 다른 사람들이
법원에 탄원서를 내고 멥킨 수도원의 달걀에는 문제가 없다고
해서 다시 달걀을 팔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멥킨 수도원에서는
더이상 달걀을 생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이유는 "만약에
중상모략을 했던 그 업장에 피해가 돌아간다면, 그 역시도 우리가
바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이상 달걀을 생산하지 않겠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큰 사업을 하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70번 씩 7번을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겉옷을 달라면 속옷을 주는 겁니다.
많은 이들이 늘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유익이 먼저가 아닙니다. 윤리고 도덕이고 중요하지 않다라는 게
이 시대의 문제입니다.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존중했을 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느냐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누가복음 19장 12~26절에 한 므나를 가지고 열 므나를 남긴 자,
한 므나를 가지고 다섯 므나를 남긴자에게 착하고 충성된 자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최선이다.
진정성 있게 최선을 다한 것을 하나님이 어떻게 보고 어떻게
축복하시느냐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고, 정말 경건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대하듯, 하나님께 찬양하듯 여러분의 주변의 이웃에게
때로는 내가 싫어했던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대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바로에게 나간 산파가 왕과
대결한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바로를 단칼에 물리치는 결과를 내진
않았습니다. 바로의 힘을 돌파할 수는 있었지만 바로를 무릎
꿇리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경외하는 모습을 갖고 공동체,
지역사회를 어떻게 해보려 생각을 합니다. 한 아이가 초등학교에
갔더니 엄마에게 물어봤잖아요. 이모가 어제 결혼했는데 왜 애기가
안 나와 물어보는 것과 같아요.

2살 이하의 자녀를 죽여라고 했는데 가보니 애가 나왔습니다.
히브리 여인들이 엄청나게 강한 존재입니다. 2살 미만의 아이를
죽이라는 더 엄청난 일이 저질러 졌다면 좌절할 수 있겠죠.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 되는데 출애굽기 2장엔 모세가
태어나죠. 우리의 경외의 신앙이 역사를 단번에 바꾸지 않지만
모든 통로를 통해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나온다고 단박에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인가? 실망하고 분노하고
화날 수 있지만 그러지 말라는 겁니다. 여러분의 자그마한 선택을
역사를 바꾸는 모멘텀으로 역사하신다는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모세가 태어나는 것처럼 마틴 루터가 수도사로 살다가
자기의 소신을 갖고 살다가 종교 개혁이라는 놀라운 일을 이루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르키메데스는 충분히 지렛대와 충분한 장소만 있다면 지구를
들어 올릴 수 있다고 했어요. 하나님은 산파와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십니다. 그저 하나님을 두려워 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살아서 신실하게 사는 산파와 같은 존재를 필요로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렛대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대로 이래야 한다, 이러지 말아야 한다 여러분의
뜻대로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지극히 작은 자한테 냉수 한 그릇 대접하는 것을 하나님은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셨어요. 히브리 산파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여러분의 삶의 자리를 성실하고 신실하게 지켜나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osted by GaeP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