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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신앙생활2014. 9. 19. 22:35

2014.9.19  금요일 새벽예배 2부
말씀 (누가복음 19:1-10)

♪ 찬송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모든 사람들의 큰 갈등과 고민 가운데 하나는 '내가 좀 더 변화됐으면 좋겠다.' '내가 더 성숙한 사람으로 변화됐으면 좋겠다.'는 그런 소망은 다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내가 더 많이 기도했으면, 지금보다 성경을 더 많이 읽었으면, 인격이 좀 더 성숙했으면 좋겠다.'하는 변화의 욕구는 모든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지 않겠나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나 변화가 어렵고 생각처럼 뜻대로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숙제이고 고민이 됩니다.
오랫동안 만들어진 습관 관행 생활습관이 고착이 되어서 잘 변화가 되지 않습니다.
좋지 않은 것일수록 더 습관이, 관행이 되어서 우리 삶과 내 행동을 삐뚤어지게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게임 습관을 바꾸려 하는 것이 잘 안 됩니다.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변화가 되지 않습니다.
아이의 반항하는 습관도, 남편의 과식하는 습관도, 아내의 무계획적인 행동습관도.. 결코 쉽게 빠뀌지 않습니다.
쉽게 바뀐다면 굉장히 성숙하고 값진 사람들이 되어 있을텐데, 성숙한 변화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고민이고 짐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삭개오라는 사람은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분도 우리와 같은 삶을 살아왔을텐데, 어떻게 이렇게 큰 변화가 이루어졌을까..
부자이고, 청년은 아닌 것 같고, 중년기 이상은 된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큰 변화가 일어났을까..
우리 삶의 큰 모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주일 목사님께 예수님을 통한 제 2의 인생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변화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신앙의 숙제입니다.

우리가 아는대로 삭개오는 세리장으로, 당대에 참 부자였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자기 동네 사람들, 이웃 주민들의 세금을 강제로 뺏어서 로마에 바치고 나머지 돈은 자기가 취하는..
따라서 동네 주민에게 욕을 먹고 인간적으로 소외된 사람.
권력이 있고 물질은 풍성했을지 모르겠지만, 늘 욕을 먹고 인기가 없는, 혼자 사는, 대화 상대가 별로 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집니다.
인생의 중반기에 와서 외롭고, 내 인생을 돌아보는 시기. 내가 이렇게 계속 살아가도 될까 하는 고민이 삭개오에게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인생의 중반기가 되면 누구나 삶을 돌아보게 되죠.
내가 올바르게 살고 있는가.. 돌아보면서 자신을 반추하고 정리해보는 기간이 인생의 중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허무하고 외롭고 고독하게 살아가던 삭개오에게  어느 날 예수님의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사람을 고치고, 죽은 사람을 살려내고, 천국을 말씀하고, 회개를 외치시고,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다닌다는 그 예수님이 바로 우리동네 여리고로 들어온다는 소문을 듣게 된 것입니다.
인생의 중반기에 놓인 삭개오에게 새로운 소문. 천국에 대한 소문.
자기가 그동안 늘 매너지리즘에 빠져서 돈 돈 돈, 명예 명예, 인기.. 이런 세속적인 삶을 가지고 고민해왔는데. 이런 삭개오에게 예수님의 소문은 굉장히 신선하고 충격적이고, 예수님을 만나봐야겠다 하는 욕구가 분명히 생겼을것 같습니다.

삭개오는 삶의 변화의 욕구가 있었기에, 예수님의 소문이 아마 큰 충격적인 소문으로 들렸을 것 같습니다.
인생의 변화는 용기와 도전이 있어야지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어른이지만 창피함을 무릎쓰고 돌무화과 나무에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올라간 것입니다.
그런 열정, 열심.
아무도 올라가지 않는 나무에 혼자 창피함을 무릎쓰고 올라갔기에, 예수님의 관심을 끌고 예수님이 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소심한 사람도 용기가 있으면 변화를 할 수 있고, 도전을 감행할 수 있는 것이죠.
사실 사람들이 처음 교회에 나오는 것은 이런 삭개오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내가 과연 교회 나가도 될까..
그러나 주의 보좌에 나오는 것은, 이러한 여러 가지 모든 것을 이기고 담대하게 나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때로는 기도도 안 되고 힘들고 죄를 지었다고 해도, 과감하고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 앞에 나올 때에- 우리는 은혜받고 변화 되고, 하나님께서 새로운 삶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 삶 속에는 언제나 문제가 있습니다.
수 만가지 걱정과 근심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삭개오와 같은 용기와 담대함이 있을 때에, 우리 삶 속에는 변화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인간의 변화에 대해서 많이 연구한 학자들이 말하기로,
인간의 변화에는 제 1변화와 제 2변화가 있다라고 합니다.
약한 변화와 큰 변화입니다.
제 1변화는 내면 속에서 스스로 결단하는 내면적인 소심한 변화라고 이야기 했고.
제 2변화는 아주 큰 변화, 구조와 체계를 바꾸고. 국가로 말하자면 혁명이 일어나는 말한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알콜 중독자에 "술을 먹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병을 숨기는 정도의 제 1변화로는 안 된다는 거에요.
제 2변화는 병원에 가둬버린다던지, 아예 멀리 보낸다던지.. 가족에게서 완전히 이탈을 시켜야지 가족이 살아난다 하는 정도의 변화를 제 2변화라고 표현했습니다.

중세시대의 실화입니다.
어떤 성주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한 성주는 깊은 산 속에 있었고, 또 한 성주는 먼 평지에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적대관계였어요.
어느 날 평지에 있는 성주가 '이 산 속에 있는 성을 다 무너뜨리고 내 것을 삼아야겠다.'는 욕심을 가지고 오랜 기간동안 준비했습니다.
어느 날 많은 백성들을 거느리고 산 속에 있는 성을 완전히 포위했습니다.
한 달, 두 달, 석 달이 지나면 틀림없이 양식이 없어서 항복하고 나올 것이다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성 안에는 정말 양식이 없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소 한 마리와 보리 두 가마니가 전부였습니다.
성 안의 많은 백성들이 동요하며 항복하자고 이야기 할 때, 성주가 마지막 결단을 합니다.
부하에게 명령합니다. "소를 잡아라. 소를 잡고 배를 갈라서 보리를 다 집어넣고 꿰매서 성밖으로 던져버려라."
미친 행동이죠.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이 소를 집어던지고, 마치 성안에 먹을 것이 많이 있는 것처럼 반대로 행동하니까. 이 성밖의 성주가 결국은 포기하고 다 돌아가버린 것입니다.
이런 변화를 제 2변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차원에서 볼 때,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고. 야곱이 이스라엘이 된 것.
근본적인 체계와 목표의 변화가 있을 때에, 영적으로 보아도 제 2의 인생, 제 2의 변화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삭개오의 변화도 제 2의 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그 물질의 절반을 딱 떼어서 어떻게 가난한 사람에게 줄 수 있는가..
그에게는 그동안 물질이 젤 중요하고 전부였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제 2의 인생이 이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자기의 가장 중요한 목표, 가치관을 바꾸는 것.
인생의 방향성, 근본이 바뀌는 것.
이 제 2의 변화는 주님을 만날 때에 가능한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삶도 때로는 이러한 변화를 갈망합니다.
내 인격도 좀 더 성숙했으면, 내 언어생활도 바뀌었으면, 내 삶이 전폭적으로 변화되었으면, 우리 가정도 변화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계신 많은 분들이 예수님을 믿은 지 10년.. 20년.. 30년.. 오랜 기간 신앙생활을 해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내 가치 기준은 세상을 닮아가고, 우리 마음 속에는 주님보다 세상 것들이 더 많이 들어왔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세속화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제 2의 인생을 주님 안에서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또 하나의 고민입니다.
우리에게도 얍복강가의 변화, 수가성 여인이 만났던 주님을 다시 한 번 뜨겁게 만나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예레미야 29: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우리가 주님을 간절히 찾고, 다시 한 번 새롭게 만나는 변화가 날마다 날마다 있어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주님을 새롭게 만나면, 의미있게, 진지하게 만나면 우리의 인생은 반드시 제 2의 인생으로 변화되는 줄로 확신합니다.

우리가 잘 안 만나니까, 소원하니까, 별로 만남을 원하지 않으니까, 변화를 싫어하니까, 세속적인 것을 좋아하니까 변화가 잘 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의 결심으로 이루어진 변화는 순간적이고 오래가지 않습니다.
순간적인 변화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인간적인 결심과 결단은 별 의미가 없는 거죠.

그러나, 주님을 만나서 변화되면 주님 안에서의 변화는- 진정한 변화, 참된 변화, 온전한 변화, 주님이 기뻐하시는 변화, 삶의 가치가 있는 변화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근보적인 변화는 예수님을 진정으로. 참으로. 진지하게 만날 때 변화가 일어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사람은 날마다 만남이 필요한 연약한 존재입니다.
이 만남의 질, 종류, 내용에 따라서 우리 삶의 변화가 일어나고. 그 만남이 어떤 것인가에 따라서 굉장한 차이가 있는 것이죠.
우리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연약할수록 좋은 만남. 의미있는 만남. 좋은 만남의 질을 더 많이 경험해야 합니다.
가족끼리도 만남이 소원질수록 서먹하고 오해가 많아지고 갈등이 많아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도 가끔씩 만나서 대화를 하고 회의도 하고 관계를 맺을 때에,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지고 행복이 이루어지고 온전한 삶이 이루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래서 날마다 주님과의 깊이있는, 진정한, 의미있는, 사실적인, 구체적인 만남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주님과 우리의 만남을 더 깊이있게 가질수록- 관계는 우리 인생은 더 견고해지고 더 값지고, 우리의 정체성은 확고해지고, 우리 삶은 풍성해지고 우리 인생은 더욱 분명하게 서가는 줄로 믿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약해질 때도 있고, 실수할 때도 있습니다.
누구나 넘어질 때가 있고,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베드로처럼 끊임없이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다시 한 번 일어서서 더 깊이있는 만남을 통해서 더 진지한 인생, 제 2의 인생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줄로 믿습니다.
베드로도 주님을 배반하고 실수했지만, 결국은 그가 분명하게 서서 훌륭한 사도로 우뚝 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마가도 청년 때에 많이 실수합니다.
사실 예수님이 성찬식을 마치시고 잡혀가실 때에, 맨 몸으로 도망간 자가 마가입니다.
또 1차 선교여행 때 바울 사도를 따라가다가 힘들다고 도망간 것이 마가입니다.
하지만 후에 바울 성도가 그를 유익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결국엔 훌륭한 선교사로 서는 마가를 보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연약한 믿음으로 흔들릴 때에, 믿음이 약해져서 삶의 중심이 무너질 때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삭개오처럼 주님을 다시 만나고. 진지하게 만나고. 주님 앞에 다시 무릎을 꿇을 때에, 우리 인생은 제 2의 인생으로의 변화가 일어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무의미한 삶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의미를 찾고 싶다면, 오늘도 진지한 주님과의 만남이 필요합니다.
책을 수 만권 읽는다고 진정한 변화가 아닙니다. 운동을 많이 한다고, 돈이 많아진다고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만날 때에-
제 2의 인생은 반드시 주님을 진지하게. 구체적으로. 사실적으로. 뜨겁게 만날 때에- 진정한 변화, 제 2의 인생이 일어나는 것을 확신하고 믿을 때에.
오늘도 주님 안에서, 주의 뜰에서 기도하면서 주님을 진지하게 만남으로 새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 ♡ ♡ ♡ ♡ ♡ ♡ ♡ ♡ ♡ ♡ ♡ ♡ ♡ ♡ ♡ ♡ ♡
온 맘으로 구하면, 찾으면!
만나주시는 주님♥ 변화되는 삶♥

Posted by GaePein
etc/신앙생활2014. 9. 19. 22:34

2014.9.18 목요일 새벽예배 2부
말씀 (마가복음 11:22-24, 갈라디아서 1:15-2:1)

♪ 찬송 254장. 내 주의 보혈은

2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18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20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21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2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23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24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1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할렐루야!
이 아침에도 주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넘치게 부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 당회장목사님께서는 9월 특별집회에 진액을 쏟으시고, 또 주일에 말씀을 증거하시고.
지금은 한적한 곳에서 또 기도하며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고 계신 줄로 압니다.
늘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어떤 티비 자막에 보니까 이런 말이 있어요.
"사람에게 삶의 휴식이 없다는 것은 자동차의 브레이크가 없는 것과 같다."
자동차는 세게 달린다고 좋은 게 아니라, 제동할 때 빨리 멈춰야되는 것입니다.
너무 과열되게 달리다가 사고가 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듯이 우리 삶에는 너무 열심히 한다고 해서 효과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쉬게 하실 때에는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지난 주일 당회장목사님께서 주신 말씀, <주님과 함께 사는 제 2의 인생> 제목만 들어도 저는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기대가 되었고 큰 도전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제 2의 인생이 뭘까? 그렇다면 제 1의 인생은 뭘까?'
그런 묵상을 해보았습니다.

제 2의 인생은 그리스도가 없는 인생.
삶의 목적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이름없이 빛없이 충성하고 섬기고 살아가야 하는데, 그것이 없는 인생인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영광이 되고, 목적이 될 때. 내가 잘 되려고 하고 내가 부자되려고 하고 내가 성공하려고 하는 것. 다 자연적인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인생은 아직은 제 1의 인생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갈라디아서에 보면, 사도 바울에게 주어진 휴식의 시간이 엄청나게 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기 전까지는, 자연인으로써 제 1의 인생으로써, 출세를 위해서 그러게 살아갔습니다.
세상의 권력과 인기가 최고의 가치였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의 사랑으로. 주님께서 인도하는 삶이 돈보다 명예보다 권력보다 인기보다 억 만 배도 더 귀한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그 눈에는 안 띄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핍박하고 그리스도인을 잡아죽이고 살기가 등등하고 해를 끼치고.. 삶의 가치를 모르고 있을 때 주님께서 사도 바울을 불러주신 것입니다.

다메섹에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주님의 부르심은 아버지가, 혹은 어머니가 굉장히 사랑하는 아들을 다정하게 부르는 투같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제 2의 인생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알았을 때.

베드로도 주님을 모른다고 저주하고 부인한 다음에, 예수님과 눈이 마주치는데, 주님이 베드로를 결코 미워하거나 원망하고 저주하거나 그런 눈빛이 아니라. 정말 베드로를 사랑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눈을 마주치면서 엄청난 회개와 통곡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제 2의 인생은 주님의 사랑을 느껴야 하고 믿어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사도 바울의 출세를 향한 욕망이 꺾여지고, 인생의 방향이 180도 전환은 됐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옛사람의 삶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완전히 변화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은 3년, 또 14년.. 최소한 14년에서 17년입니다.
하나님이 쓰시지 않고 왜 그토록 오랫동안 시간 낭비, 허송 세월을 보내게 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도대체 사도 바울은 그 기한에 사막에서는 밤낮으로 기도했지만, 고향에서는 뭘 했을까..
그런 궁금증을 낳게 합니다.

사도 바울의 그 기한은 주님과 만나는 영적 교제의 기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신학과 영성을 직접 사도들에게 배운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직접 받아서 그걸 터득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때로는 고난이 있습니다.
가던 길을 멈추게 되고, 분명히 내가 올바른 길이고 내가 가치있는 길이라고 하지만은 하나님이 태클을 걸어서 사울이 말에서 떨어지듯이 때로는 가던 길이 멈춰지는 적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다시 내가 출발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점검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출세를 향한 야망은 아닌지, 어떤 권력의 힘과 인기때문에 정말 형제를 사랑해야 하는데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무엇이 정말 중요한 가치인지 우리는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제 1의 인생에서 제 2의 인생으로 바뀌어지는 것은 금방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서를 보면 우리의 의로움을 위하여 주님이 생애를 사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육신으로는 할 수 없는 그것을, 주님께서는 우리의 요구를 완벽하게 이루어주신 완전한 삶을 사셧다는 것을 암시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하지 못해도, 주님은 완벽히 거룩한 삶을 살아주셔서 우리의 거룩함이 되어주셨음을 믿습니다.
우리는 추하고 악하고 더럽지만, 주님이 완벽한 의로운 삶을 사시고 우리에게 의로움이 되어주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주님이 의로우시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믿음으로써 의롭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이건 굉장한 진리의 발견인 것입니다.
비록 사막에서, 때로는 고향에서 무명인으로 살았지만, 허송 세월한 것 같지만. 그 기한에 전 로마를 완전히 뒤집어놓을 수 있는 엄청난 십자가의 능력을 발견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삶의 고난의 기한에 우리는 정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을 발견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에서 사도 바울은 엄청난 갈등을 합니다.
생명의 법이, 이미 하나님이 대법원에서, 너는 죄가 없다고. 난 너를 사랑한다고. 십자가에서 보여주시고 죄를 대속해 주셨는데,
그걸 모르고 고민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의로워도 구원받은 게 아니고, 믿기만 하면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하나님이 죄가 없다고 무죄선언을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세상에 무엇도 흔들 수 없는 그 사랑. 절대 구원의 확신을 사도 바울이 발견했을 때, 하나님이 그를 사용한 것이죠.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힘든 고난 속에서도 로마가 두렵지 않았고, 담대하게 이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믿음의 확신 속에 분명히 서야 합니다.
이걸 갈라디아서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표현으로.
이미 십자가의 사건은 이천년 전에 이루어진 사건이고, 그 사건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미 그때 우리도 못박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낸바 되었기에 나의 옛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 못 박으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가질 때, 우리는 내 안에 있는 옛 사람. 내가 내 삶을 주도하려는 그런 잘못된 힘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 다음 로마서에 보면은 하나님께서 모태부터 책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실 분은 하나님께서 미리 예정하시고 선택하셨다는. 절대 은총의 진리.
믿음의 주최는 주님이십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 속에서 계획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의 삶을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이끌어가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조금도 의심할 필요가 없고, 우리의 옛사람이 살아서 내가 구원을 이루고자 하는 그런 모습을 취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기에, 우리가 어느 누구도 함부로 죄인 취급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나를 의롭게 하셨기에, 그 의가 있으면 사는 것입니다.
이 믿음 가지고 모두를 의롭다고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복음적인 삶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직 믿음 안에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믿음은 산도 옮기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회장목사님을 쓰실 때에, 엄청난 세계가 놀라는 복음 역사를 이루시게 된 것입니다.
제가 오래 전에 디아스포라를 할 때, 대추나무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해에 대추나무가 죽었어요.
목사님이 오셔서 대추나무를 타각 치면서 뭐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며칠 후에 서서히 잎이 나더니 나중에는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혀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예정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엄청난 십자가의 능력으로 이제는 육의 사람이 아니라 영의 사람이 되어서 엄청난 일을 하듯이, 우리목사님께서도 그런 일을 하시지 않나 묵상을 해봤습니다.

오늘도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되시고, 주님과 동행하시고, 교회를 위해서 충성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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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귀한 가치 "믿음"안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신뢰하며 나아가는 우리♥

Posted by GaeP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