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신앙생활2014. 11. 14. 10:47

2014.11.13 목요일 새벽예배 2부

말씀 (마태복음 26:6-13)


♪ 찬송 315장.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6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8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9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10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이 마리아의 이야기는 4복음서에 나올만큼 예수님께서 가장 귀하게 보시고, 또 신앙의 행위로서 참 모범이 되는 칭찬 듣는 믿음으로. 우리들에게 감동을 주는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을 칭찬하는 내용이 몇 군데 나오지만, 아마 마리아의 신앙의 아름다운 행위는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킬만큼 굉장히 중요한 신앙의 행동이고, 신앙의 사건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께 칭찬들을만한 믿음이 있다면, 이 사회 가정 국가도 다 변화시킬 수 있는 큰 감동적인 사건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본문에 있는대로 마리아는 자기 인생동안, 자기 삶 동안 평생 모았던 가장 소중한 향유 옥합을 예수님에게 한 순간에 다 부어드렸습니다.

우리가 아는대로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 하루의 품삯이라고 한다면, 십 만원이라고 잡으면 삼천만원이 됩니다.

그것을 일순간에 부어드리는 것은 굉장한 결단. 사랑. 소중한 신앙의 결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믿음생활을 쭉 해오다가, 결정적인 순간. 정말 중요한 순간에는 마리아와 같이 자기의 모든 것을 드릴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항상 그럴 수는 없겠지만 우리 인생에서 정말 결정적으로 결단해야 할 순간에는,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주님 앞에 바쳐드릴 때에. 

이처럼 영원히 빛나는. 칭찬 듣는. 역사 속에 기록될 믿음. 하나님 나라에 영구하게 남을 그런 칭찬 듣는 믿음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마리아의 귀한 믿음이 도대체 어디서 난 것일까요?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성경에 많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들 모두가 다 칭찬 들은 것은, 모두가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었는데 마리아에게 어떻게 이러한 믿음이 생겼을까요?

다른 복음서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0: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가 있는 것을 잘 압니다.

마리아는 언니하고 다르게 주의 발 아래 앉아서 주님의 말씀을 간절히 들었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가까이에서 열심히 들었습니다.

말씀을 듣다 보니 믿음이 생긴 것이고,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그의 믿음의 기초는 말씀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철저히 말씀에 기초해야 하고, 말씀을 열심히 듣고 기본에 충실할 때에 우리 믿음이 건강해지고 강건한 믿음으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간증이 될만한 좋은 믿음의 사람은 말씀을 사모하고 암송하고 기초하고 좋아하고, 말씀이 기본이 되어서 믿음이 잘 자라나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떠나서 믿음이 자라나는 법은 절대로 없습니다.

말씀에 기초해야지 건강하고 능력있는 믿음이 되고, 우리가 확고한 믿음 위에 서는 줄로 확신합니다.


마리아는 주님 가장 가까이에서, 바로 발 아래에서 말씀을 사모하면서 들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겸손하게 말씀을 듣는 마리아의 모습을 봅니다.

주님 제일 가까이.

우리도 교회 가까이.

우리 교회에 그런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교회에는 금자리, 은자리, 동자리가 있다.

금자리에, 하나님 가까이에 있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말씀에 기초한 좋은 믿음의 사람이 되는 줄로 확신합니다.

우리는 당회장목사님 말씀을 듣고 건강한 믿음으로 자라나는 줄로 믿습니다.


다른 곳에 좋은 것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마음 자세를 갖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죠.

이단들은 항상 '다른 곳에 좋은 것이 있다. 다른 곳에 능력있는 사람이 있다.'

이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다른 곳을 탐내는 그 자체가 이미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죠.

본교회에서 가르치는 말씀만 가지고도 차고도 넘치는데, 다른 곳에 무엇이 있다고 하는 것 자체가 문제를 많이 갖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느 성도들은 우리 본교회에서 가르치는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차고 넘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 가까이, 말씀 가까이 할 때에 우리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고 강건해질 줄로 확신합니다.

우리 하나님 말씀에 굳게 설 때에, 마리아처럼 좋은 믿음이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말씀이 약해지고 희미해지면 분명히 우리 인생 전부가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왕들 중에 말씀을 떠난 왕들은 100% 다 망했습니다.

말씀이 없는 구약의 시대에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섬기다가 다 100% 망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어린 사무엘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지만, 엘리제사장은 권위와 힘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말씀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말씀이 없으면 절대로 우리의 믿음은 자라지 않고, 우리 삶 전체가 흔들리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마리아의 좋은 믿음은 예수님 발 아래에서 사모하며 열심히 경청하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믿음이 영원히 빛나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여종이 된 줄로 믿습니다.

언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서 분주했습니다.

일이 많으면 분주하잖아요. 집중하지 못하잖아요.

기도도 잘 못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말씀을 잘 듣는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히 칭찬들을만한, 간증이 될만한 믿음이 생겨난 것입니다.

주님 곁에 있었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되고 주님이 칭찬하시는 좋은 믿음의 딸이 된 줄로 믿습니다.

우리도 간증이 될만한 좋은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늘 말씀을 사모하고, 주님 가까이 교회 가까이에서 말씀을 사모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로 간증이 될만한 마리아의 믿음이 무엇인가를 보면, 마리아는 예수님의 사랑을 누구보다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2절 말씀을 보면.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모든 인류를 위해서 화목제물로 고난당하실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 몸에 향유를 누구보다도 빨리 준비해서 가장 소중한 것을 드렸습니다. 


마리아는 열두 제자들과 좀 달랐습니다.

사실 열두 제자들은 3년동안 예수님을 열심히 따라다녔지만 마리아만큼 믿음이 자라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친히 고난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들었습니다.

분명하게 마리아보다 더 자세하게 들었지만, 제자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명예심에 사로잡혀 있었고, 서로 싸웠고, 시기심이 있었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했고, 인간적인 욕심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성령받기 전에,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이 열두 제자들은 실제로 인간적인 마음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진리를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이 많아, 영적인 생각을 갖지 못한 것이 바로 제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발 앞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말씀을 받았기 때문에, 주님의 사랑을 이미 깨달아서 그렇게 놀라운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날마다 잊지 않고 살아가는, 뜨거운 사랑의 사람이 돼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사랑을 깨닫는 것. 많이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러분들도 잘 아실 것입니다.

마리아의 비밀은 예수님 가까이에서 누구보다도 사랑을 많이 받았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도 보면,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그의 오빠 나사로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들을 찾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사랑을 더 많이 받잖아요?

자식들도 멀리 떠나있으면 사랑을 받기 힘듭니다.

사랑을 많이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심리적인 정신적인 문제가 결국 알고 보면, 어머님의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한 사랑의 결핍때문이라는 거에요.


우리가 더 좋은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사랑을 더 많이 체험하고 경험하고 더 많은 사랑을 받을 때에, 

우리의 인생이 바뀌고, 믿음이 성숙하고, 더 헌신하게 되고, 더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몸소 체험하며 삶의 실천과 봉사로 이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어린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법은, 엄마의 젖을 많이 먹고 엄마의 사랑을 많이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자랄 수 있는 요소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주니의 사랑을 체험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기가 엄마의 사랑의 양분을 먹고 자라듯이,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는만큼 믿음이 자라고 놀라운 믿음의 간증이 있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을수록 우리의 믿음이 튼튼해지고 견고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름다운, 충성할 수 있는, 감사하고 감격하는 믿음이 됩니다.

주님의 사랑을 많이 경험한 사람만이 더 많이 헌신하고 고난에 참여할 수 있고, 참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사랑을 많이 깨달으면 교만도 사라지고 게으름도 안일도 사라집니다.

주님의 사랑이 다시 한 번 일어날 때, 우리는 인생이 다시 한 번 깨어지고 일어나 더욱 더 헌신적으로 바뀌어지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세상과 가까이 있던 내 마음이 주님 가까이로 갈 때에, 간증할 수 있는 놀라운 믿음의 사람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과 만나서 내 안의 모든 이야기가 주님의 이야기로 바뀌는 것이 바로 간증이 되는 것이고, 믿음의 사람으로 온전히 살아가는 체험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시 한 번 일어서게 되는 것이죠.


우리가 아는대로 프란체스코는 젊을 때에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알고 묵상하다가 어느 날 자기 몸에 예수님의 사랑의 흔적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는 굉장히 부잣집 아들이었지만 모든 부자의 사치와 특권을 다 깨뜨려버리고 자신의 인생 전부를 주님을 위하여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나의 소중한 옥합을 깨뜨리는 결단. 그것이 있을 때에 우리 믿음이 크게 성장하고 발전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나의 옥합이 무엇입니까?

나의 깨어지지 않는 자아, 고집, 성공, 행복, 주장, 자존심, 나의 가진 작은 물질.. 이런 것이 내 인생의 옥합일지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순간에 나의 옥합을 깨뜨릴 때에, 우리의 믿음도 인정받고 칭찬 듣고 영원히 남는 아름다운 간증으로 남겨질지 모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베드로가 다시 한 번 예수님의 사랑을. 구원하신 사랑을 깊이 알았을 때에, 그는 십자가의 그 큰 사랑에 감격해서 그의 인생을 온전히 살아간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마리아처럼 더 가까이 주님께 다가와서 주님의 사랑을 더 많이 체험하게 된다면, 

나의 믿음도 기억할만한 믿음, 간증할만한 믿음, 소중하고 아름다운 믿음으로 성장하며 결단하는 인생으로 나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마리아는 말씀에 기초한 좋은 믿음의 사람, 주님의 사랑을 많이 체험한 아름다운 여인으로 말씀 속에 길이길이 기억되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 모두가 함께 아름다운 마리아의 믿음처럼, 간증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 ♡ ♡ ♡ ♡ ♡ ♡ ♡ ♡ ♡ ♡ ♡ ♡ ♡ ♡ ♡ ♡ 

아버지께 더 가까이 나아가,

아버지 말씀에 더욱 귀기울이며,

더 많이 사랑받는 자녀되길 원해요♥


 

 


Posted by GaePein
etc/신앙생활2014. 11. 14. 10:46

11.12일(수) 새벽예배

• 누가복음 15:1~7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오늘도 주의 전을 찾은 모든 성도님들께 하나님께서 큰 은혜로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지금도 교회 뿐만 아니라 교단을 위해서 수고하시는 당회장 목사님을 위해서 늘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복음이라고 합니다

왜 기쁜 소식이라고 하냐하면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알 수도 없었고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새로운 메세지를 전해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복음, 기쁜소식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 오시기 전에 사람들이 신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또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 하나님에 대한 메세지를 전해 주셨는지 생각해보면서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다시한번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사람들이 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느냐 하면 그  당시에는 그리스인들의 철학을 이해를 하면 보다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인들은 어떻게 신에 대해 생각했느냐 하면 가장 보편적인 생각은 신들은 질투하는 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과 인간 사이에는 항상 적대시했기 의심하는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 중에 잘난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신은 그 사람을 멸망시키는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역사가는 가장 높은 나무가 가장 벼락을 맞기 쉽다고 표현하면서 신과 인간이 대립되는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잘난 것을 신이 질투하는 것이죠

그래서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형적인 것이 프로메퇴우스를 징벌하는 거예요

신과 인간은 잘 지낼 수 없는 거예요


두번째로 그리스의 신들은 알려져 있지도 않고 알 수도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플라톤이라는 철학자는 신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안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나는 누구에게  기도하고 머리를 숙이고 희생 재물을 받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리스 사람들은 신에 대해서 답답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신이라는 존재는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세계의 신들이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그리스인들의 신들에 대한 개념은 철학으로 이어지는데요

그 당시의 두가지 철학이 있었는데 인생을 즐기자는 쾌락주의와 금욕주의가 있었습니다

쾌락주의는 아무런 걱정이 없이 살아야 한다는 것인데 문제는 신들만 이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들은 철저히 이러한 세계와는 철저히 배제된 사람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금욕주의는 완전한 고요함을 넘는 것이 삶의 목적이예요

이 상태는 아무런 감정이 없어야 하고 모든 것에 무관심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신이라고 하는 것은 철저하게 감각도 없고 무관심한 존재라는 것이죠

사랑이나 자비는 전혀 없는 신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이 생각한 신은 사람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존재였고 인간에게는 전혀 위로를 줄 수 없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는데 예수님이 태어나시고 유대교에서는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에 대한 관념 중 대표적인 것은 거룩하시다는 것입니다

그런 개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세가지를 갖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절대로 사람이 가까이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죠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면 죽음을 감수해야 하고 이름을 부르는 것도 굉장히 두려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사기 6:22절을 보면 기드온이 여호와의 사자임을 알면서 두려워서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할 때 하나님께서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두려운 하나님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두번째로 유대교의 하나님은 예측하기 어렵고 절대적인 권력을 갖고 계시는 두려운 하나님이었어요

이러한 생각이 잘 나타나는 본문은 예레미야서 18장을 보면 토기장이의 비유가 나옵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깨뜨리는 것처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니고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시는 두려운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번째는 하나님은 죄인들은 철저하게 징벌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실 정통파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목적이 죄인을 멸망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죄인을 징벌하시는 하나님...

이사야 13:9절, 아모스 9:10절에 이런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죄를 죽이시는 하나님, 죄를 징벌하시는 무서운 하나님에 대해서 유대인들은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용서, 사랑이라는 개념이 없었어요

무조건 죄는 멸망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오히려 이런 죄인들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서 율법학자와 바리새인이 수근거리며 분노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에 대한 개념으로 꽉 차 있을 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그 사람이 생각하지도 못한 전혀 새로운 하나님에 대한 메세지를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전해주신 하나님은 첫째, 인간을 초청하시는 하나님, 인간을 가까이 오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가장 특징적인 말씀이 오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28절에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생각은 그 당시에 누구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신이 우리를 가까이 오라고 하십니다

생각할 수도 없었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은 우리를 오라고 부르시는 분으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예수님이 가르치는 하나님은 오라고 하지만 의인뿐만 아니라 죄인도 부르고 그 죄인을 용서해 주시는 분입니다

마태복음 9:13절에 보면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온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인들이나 정통파 유대인들은 죄인을 보면 피하고 욕하고 정죄할 수 밖에 없었는데 예수님이 갖고 오신 하나님에 대한 메세지는 하나님은 죄인까지도 미워하지 아니하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바른길로 나아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새롭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복음이 되고 기쁜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예수님 가르쳐 주신 말씀은 이렇게 용서해주시고 부르시는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직접 찾아가시는 하나님임을 말씀하십니다

소극적으로 오기를 기다리지 아니하시고 직접 찾아가셔서 그들을 만나주시고 위로해주시고 새롭게 해주시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말씀하신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예수님이 직접 찾아가서 만나 주시고 대화하시고 아픈 부분을 치료해 주신 것입니다

야곱도 자기가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서 찾아다니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네번째는 하나님은 찾아가시는 하나님이라는 개념은 반드시 하나님은 개인 한사람 한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양 한마리를 잃어버리면 목자는 99마리로 만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를 사랑해주시는 것입니다

또 뒤에 나오는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의 간절한 마음처럼 한 사람도 하나님은 소홀하지 않으시고 사랑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를 마치 한 사람을 사랑하시듯 사랑하신다"


지난주에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시면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시고 불러주시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간증이라고 하는 것은 나를 불러주시고 나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에 대한 간증이 가장 좋은 간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을 보시면 항상 맨 앞에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나 바울이라고 소개합니다

바울은 나를 자녀 삼아 주시고 사도로 세워주심을 놓치지 않는 거예요

나중에 사도바울이 뭐라고 고백합니까?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를 불러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불러주심에 대한 감격을 잃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일평생 사도의 직분을 잘 감당했고 또다른 간증이 있음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주신 것이 큰 은혜이고 우리는 다시한번 새롭게 새기면서 불러주신 하나님에 대해서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고 그러한 간증을 통해 여러분의 생활속에 또다른 간증이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새벽을 깨웁시다^^


 

 


Posted by GaeP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