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신앙생활2017. 8. 21. 08:57
명성교회 5부 예배 (170820 주일)
오규훈 목사님
출애굽기 1:15~22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자와 부아라 하는 자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조산할 때에 살펴서 남자여든 죽이고 여자여든 그는 살게 두라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 이같이 하여 남자를 살렸느냐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라 백성은 생육이 번성하고 심히 강대하며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 그러므로 바로가 그 모든 신민에게 명하여 가로되 남자가 나거든 너희는 그를 하수에 던지고 여자여든 살리라 하였더라
출애굽기 1:15‭-‬22 KRV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할렐루야! 선교봉사힘쓰는찬양대의 찬양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을 줄 믿습니다. 한 번 더 박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한 두달 전 쯤에 명성교회에서 출애굽기 본문으로 전한 적이
있었는데 기억하십니까? 기억하시든 못 하시든 전에 전했던 말씀
부터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설교 제목은 "믿음의 길을 묻다"
였습니다. 첫번째 질문을 못 들었습니다. 두번째 질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에게 왜 고난을 허락하십니까?" 였습니다.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사람들은 축복을 받고는 타락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축복의 자리로 돌려놓고자 하는 방법은 고난
뿐이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고난은 하나님께서 내리는 처방입니다. 고난을 받아들여서 다시
축복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삶의 몫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몫인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삶의 비결을 뭐라고 하니까 "역설적인
삶"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낮아져야 하고, 섬겨야 하고, 자기
목숨까지도 내어주는 삶을 산다고 했습니다. 너희가 죽어야 살
것이고 나누어 주면 넘치도록 부어주실 것이다는 것이죠.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한복음 15:13 KRV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마가복음 8:35 KRV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누가복음 6:38 KRV

역설의 삶의 최고의 모델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고난과 죽음의
십자가를 통해서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결론의 버킹검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삶입니다.
문제는 십자가는 우리에게 단 일회적인 사건이라면 그냥 눈을 한
번 질끈 감고 번지점프 하는 것처럼 딱 한 번만 하면 되는 것 같죠.
그런데 십자가는 사건이 아니고 우리의 삶, 우리의 인생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태복음 16:24 KRV

날마다 우라에게 필요한 것은 매일 매일 역설의 삶을 살아야 하는
신앙의 그릇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설교 제목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면 17절과 2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
출애굽기 1:17‭, ‬21 KRV

17절과 21절 말씀은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적혀있습니다. 고난이 핍박이 있을 때 역설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을
살 때 고난의 삶을 견뎌 낼 수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설상가상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노예 신분이 됐지만 더
크고 강한 민족이 있었기 때문에 바로 왕은 애들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설상가상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더 어려운
상황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고난을 바로 바로 오는 것입니다.
바로 왕이 바로 오잖아요. 힘든 명령을 보내는 것입니다.

오늘 회사가 부도가 났어요. 그 다음 날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의 진단이 본인이 아주 몹쓸 병에 걸렸다는 거예요. 막막한
마음에 집에 돌아왔는데 마침 전화가 와서 전화를 받아보니 아들놈
선생인 겁니다. 아들이 옆에 있는 친구를 때렸으니 학교에 오라는
겁니다. 서둘러 학교를 가는 중에 교통사고가 났어요. 바로 이런
설상가상의 모습인 것입니다.

여러분 미래는 소망의 메세지가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왕에게 보낼 사람을 히브리 산파를
선택합니다. 하나님의 반전입니다.  핵무기를 가지고 난리를 치는
김정은 같은 놈을 어떻게 하기 위해서 트럼프 같은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에 명성교회 은퇴 권사님 두 분을 보낸다고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볼 때 그런 것이죠. 우리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은 히브리 산파를 선택합니다.
여성으로의 기능도 없고, 게다가 노예 신분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히브리 산파를 선택하셨어요. 바로 왕과 히브리 산파와의
대결 구도를 보시면 하나님의 방법을 눈여겨 볼 수 있어요. 우선
히브리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것입니다. 이 반전을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방법에는 아주 놀라운 것을 볼 수 있어요.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이 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는 것, 그것이 능력이라고 보시고 히브리 산파를
활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하나님이 어떻게
사용하시는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을
대결에서 승리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15살 밖에 안 되는 소년
다윗을 블레셋 골리앗과 붙여서 승리케 하시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전투가 아닙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사무엘상 17:45 KRV

믿음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태복음 5장에 보면 팔복이
나오는데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태복음 5:3 KRV

이것이 무슨 이야기냐면 남들이 중요하게 여기고 대단하게 여기는
힘과 권력 이런 것들을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마음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줄 서지 않습니다.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천국이 자기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는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린도전서 1:18 KRV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린도전서 1:23‭-‬25 KRV

하나님의 관점에 익숙해질 수 있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자꾸 눈이가고 그것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삶으로
살아낼 때 믿음의 삶으로 살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삶을
맡길 수 있는 것이 영적인 삶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산파는
정말 연약하고 아무 쓸데가 없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세상에서 볼 때는 아무 능력이 없어 보일 수 있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를 볼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 여기 나온 모든 성도님들처럼 예수님이 구세주고 메시아라고
믿고 사는 사람들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범한 그리스도인 중에 굉장한 내공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산파들이 그래요. 17절 말씀을 보세요.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
출애굽기 1:17 KRV

내가 어디 가서 꿀릴 것도 없지만 누구에게든지 인사 잘하고,
모든 사람에게 예의 잘 지키고,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를
성실히 잘 지키고, 사람들과 관계에서 즐겁게 할 수 있고, 절대로
분노하지 않고 원만히 잘 지내는 것입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라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아버지면 아버지, 어머니면 어머니,
자식이면 자식, 자기의 역할을 잘할 때 비로소 나라를 통치할 수
있다는 것이죠.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은 평소에 열심히 합니다.
벼락치기 하는 애들은 때로는 시험을 잘 볼 순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를 조금만 응용해서 내면 굉장히 어려워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사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인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1년, 2년 그렇게 살면 그것이 능력이 되고
성경에서 나오는 경건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매일의 삶이 습관이 되고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경건은 뭐냐?
성경에서 말하는 경건을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Godliness 라고
합니다. 경건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게 아닙니다. 성수 주일 하는 거
필요하죠. 1년 52주 빠지지 않는 거 중요하죠. 새벽기도 열심히
하고, 때로는 성경공부도 열심히 해야하고, 교회 학교 교사하는
것도 중요하고, 수련회도 중요하고, 선교지에 가서 정말 복음을
기다리고 있는 많은 영혼들을 통해 도전을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평상시 삶의 모습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경건의 모습은 갖췄지만 진실함이 없는 자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을 싫어하시는 이유가 경건의 모습은 있지만
그 마음에 믿음이 없다는 것이죠. 아무도 안 보는데? 뭘 아무도 안
봅니까? 저기 하나님께서 계속 지켜 보시는데요.

어떤 교회에서 총회장 되시는 분이 4년 동안 100억을 도박을 해서
96억을 잃었는데 또 56억을 땄답니다. 판사가 이런 말을 했대요.
"양심의 법정, 하나님의 법정에서 다시 서십시오." 경건이 종교인의
신분으로만 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내가 교회만 왔다 갔다 한다고
경건이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경건의 모습이 무엇인지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어거스트 투랙은 IT 기업의 CEO인데 놀스케롤라인에 있는 멥킨
수도원에서 2주 한 달을 쉬면서 경험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제가 10년 동안 읽었던 책 중에 가장 추천하는 책입니다.
"수도원에 간 CEO" 라는 책입니다. 멥킨 수도원은 트라피스트
정통의 수도원입니다. 달걀 수확, 버섯 재배, 맥주를 만들고 이런
1500년의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곳입니다. 수도원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세계 최고랍니다. 도대체 경영의 기역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최고의 제품을 만들 수 있냐는 겁니다.

광고를 하지 않고 병에 라벨도 붙이지 않는 벨기에의 성 식스투스
수도원의 맥주는 높은 품질로 세계적인 호평을 받고 있으며
벨기에의 스쿠르몽 수도원의 수사들이 제조하는 트라피스트
맥주는 한 해에 5000만 달러의 수익을 거두고 있답니다.
단순합니다. 품질이 좋기 때문입니다. 달걀이 출하되는 나라에선
제빵회사들이 그쪽 계란을 사기 위해 줄을 선다는 것이죠.
100 핵타르 되는 그 넓은 땅에 수도사 20명 정도 밖에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4시간 밖에 일을 안 해요. 새벽 1시에
일어나 하루에 8번을 기도를 하는데 일하는 시간도 딱 지켜요.
비결이 뭡니까? 경건은 성경공부, 예배, 찬양, 하나님 사랑하고,
하나님만 생각할 때만 있는그런 경건이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에 대해 영적인 의무감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트라피스트 수도사들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일하는 동료 고용해서 일하는 직원,
지역 사회, 환경 등을 모두 하나님을 대하는 똑같은 마음으로
대한다는 것이죠. 버섯 재배, 달걀을 꺼낼  떄도 하나님을 대하듯
똑같이 하는 것입니다. 정말 진실하게, 정말 신실하게 하나님 앞에
있듯 어떤 일을 해도 똑같이 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읽는 듯,
화장실 청소를 하는 거죠. 요즘 많은 경영자들이 경건을 갖고
회사를 운영한다면 알바생, 계약직, 비정규직을 모두 인격적으로
존중해주고, 대접하게 될 것입니다.

수도사들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경건을 추구했습니다.
성공만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경건함을 추구하기 때문에 제품이 잘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멥킨 수도원의 달걀이 잘 팔리니 어떤 달걀
업자가 여러 가지 중상모략을 통해  멥킨 수도원에서 나오는
달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법원에서 멥킨
수도원의 달걀을 팔지 못하게 합니다. 그랬더니 다른 사람들이
법원에 탄원서를 내고 멥킨 수도원의 달걀에는 문제가 없다고
해서 다시 달걀을 팔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멥킨 수도원에서는
더이상 달걀을 생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이유는 "만약에
중상모략을 했던 그 업장에 피해가 돌아간다면, 그 역시도 우리가
바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이상 달걀을 생산하지 않겠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큰 사업을 하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70번 씩 7번을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겉옷을 달라면 속옷을 주는 겁니다.
많은 이들이 늘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유익이 먼저가 아닙니다. 윤리고 도덕이고 중요하지 않다라는 게
이 시대의 문제입니다.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존중했을 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느냐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누가복음 19장 12~26절에 한 므나를 가지고 열 므나를 남긴 자,
한 므나를 가지고 다섯 므나를 남긴자에게 착하고 충성된 자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최선이다.
진정성 있게 최선을 다한 것을 하나님이 어떻게 보고 어떻게
축복하시느냐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고, 정말 경건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대하듯, 하나님께 찬양하듯 여러분의 주변의 이웃에게
때로는 내가 싫어했던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대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바로에게 나간 산파가 왕과
대결한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바로를 단칼에 물리치는 결과를 내진
않았습니다. 바로의 힘을 돌파할 수는 있었지만 바로를 무릎
꿇리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경외하는 모습을 갖고 공동체,
지역사회를 어떻게 해보려 생각을 합니다. 한 아이가 초등학교에
갔더니 엄마에게 물어봤잖아요. 이모가 어제 결혼했는데 왜 애기가
안 나와 물어보는 것과 같아요.

2살 이하의 자녀를 죽여라고 했는데 가보니 애가 나왔습니다.
히브리 여인들이 엄청나게 강한 존재입니다. 2살 미만의 아이를
죽이라는 더 엄청난 일이 저질러 졌다면 좌절할 수 있겠죠.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 되는데 출애굽기 2장엔 모세가
태어나죠. 우리의 경외의 신앙이 역사를 단번에 바꾸지 않지만
모든 통로를 통해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나온다고 단박에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인가? 실망하고 분노하고
화날 수 있지만 그러지 말라는 겁니다. 여러분의 자그마한 선택을
역사를 바꾸는 모멘텀으로 역사하신다는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모세가 태어나는 것처럼 마틴 루터가 수도사로 살다가
자기의 소신을 갖고 살다가 종교 개혁이라는 놀라운 일을 이루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르키메데스는 충분히 지렛대와 충분한 장소만 있다면 지구를
들어 올릴 수 있다고 했어요. 하나님은 산파와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십니다. 그저 하나님을 두려워 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살아서 신실하게 사는 산파와 같은 존재를 필요로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렛대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대로 이래야 한다, 이러지 말아야 한다 여러분의
뜻대로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지극히 작은 자한테 냉수 한 그릇 대접하는 것을 하나님은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셨어요. 히브리 산파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여러분의 삶의 자리를 성실하고 신실하게 지켜나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osted by GaePein
etc/신앙생활2017. 8. 16. 08:06
17.8.16(수)

'계산하지 않는 신앙'

사무엘상17:41-50
41 블레셋 사람이 방패 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윗에게로 점점 가까이 나아가니라
42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43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44 그 블레셋 사람이 또 다윗에게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하는지라
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48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49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에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50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상황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일반적인 상황
2.돌발 상황
3.한계의 상황
일반적인 상황은 일상적인 상황이죠
우리가 생활하는 행동반경에서 특별한 일 없이 늘 되풀이 되는 생활인 것입니다
생활 규칙에 따라 정해진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학생이라면 학교와 집을 왔다 갔다 하며 열심히 공부하고 직장인이라면 직장과 집을 왔다 갔다하며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소에 이렇게 일반적인 규칙을 따라서 이미 짜여진대로 살아갑니다
우리 삶속에서 특별한 일이 많이 일어나고 어려운 일이 많이 일어나서 그 문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해결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죠
그러나 아무 어려움 없이 무난하고 평탄하게 살아간다면 이 것 또한 하나님의 크신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 삶에는 이 세 가지 상황이 항상 겹쳐셔 중첩적으로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과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의존해서 매여살도록 여러 가지 상황을 허락하시는 줄 믿습니다
일상생활에도 돌발상황이 있죠
일상생활과 조금 다른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운전면허에 요즘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돌발!' 하고 빨간 불이 들어오면 브레이크를 밟아야 되죠?
운전하신는 분 중엔 빨간 불이 들어오면 '빨리 가라' 하는 줄 알고 빨리 가는 분도 계세요 ㅎㅎ
돌발상황은 멈추어서서 상황을 판단해보라는 뜻입니다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거나 직장인들이 멀리 출타하거나 하는 이런 돌발상황도 생깁니다
자신이나 가족에게 원하지 않는 일이 생기기도 하고요
이런 비일상적인 우리가 원치 않는 상황들은 돌발상황입니다
이 돌발상황에 잘 대처해야 이 위기를 끌고 나가고 좋은 쪽으로 개선되는 것입니다
가전제품 선전할 때도 '순간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옛날 이야기지만 그런 얘기도 있습니다
요즘 뭐 복권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우리 성도 가운데는 가난한 분을 돕기 위해 심심풀이로 하는 분도 있다고 합니다
이게 당첨 안 되면 일상적인 상황이지만 당첨되면?
이건 돌발적인 상황인 거죠
당첨됐을 때 '하나님이 크신 은혜를 주셨다 선교사업에 쓰고 베풀면 나에게 좋은 거다 수지 맞았다'
그러나 외국이나 우리나라나 큰 금액에 당첨되면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계상황은 돌발상황 가운데서도 극단적인 상황을 말합니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는 "우리 인간은 한계상황에 직면해 있다 인간은 상황에 매여 사는 존재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라는 상황속에서 살아갑니다
인간이 처한 한계의 상황은 '죄와 죽음'의 문제죠
많은 경제학자들이 정치학자들이 윤리학자들이 철학자들이 죄의 문제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해결한 분이 없어요
오직 우리를 만드신 우리 인생의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만이 우리의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 이 새벽에도 우리 모두는 나의 일상적인 생활 습관을 따라 별 큰 문제 없는데 하나님 앞에 나온 분들도 있고 때로는 돌발상황 때문에 때로는 견디기 힘든 해결할 수 없는 한계상황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이 자리에 나온 분도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 삶의 모든 것을 아시오며 다 해결해주시고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시편 139편에 다윗은 '하나님이 나의 앉고 일어나심을 아시며 나의 생각을 통찰하시며 나의 침 삼키는 것도 아신다' 그랬어요
나의 머리털까지 새시는 하나님이 나의 모든 상황을 아시고 도와주시는 전능하시고 좋으신 하나님인 줄 믿습니다
요즘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많은 질병이 있죠?
어떤 분은 암 때문에 또는 신장 투석 때문에 고생해요
처음에 이런 어려운 질병을 만나면
정말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한계의 상황 같이 느껴져요
그러나 하나님이 은혜 주시면 이 한계상황이 돌발상황으로 수준이 떨어집니다
견딜 수 있어요
더 은혜 주시면 이 모든 상황이 내가 이기고 견딜 수 있는 일상적인 상황으로 떨어지게 해주시는 줄 믿습니다
마라톤의 유래는 전설이 있어요
기원전 490년 전 예수님 태어나시기 500년 전 쯤 그리스에서 아테네가 페르시아 하고 치열하게 싸웠어요
아테네 일만명과 페르시아 스파르타 십만명이 싸웠어요
누가 봐도 10:1이니 게임이 안 돼요
그러나 아테네가 열심히 싸워 승리했어요
이 승리의 기쁜 소식을 빨리 전하고 싶잖아요?
승전보를 빨리 전하고 싶어서 페이디피데스라는 병사가 죽어라고 달렸습니다
열심히 달렸습니다
아테네에 가서 "시민 여러분! 우리가 이겼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이 한마디를 하고 너무 지쳐 탁 엎드려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가 달린 거리를 측정해봤어요
'얼마나 쉬지 않고 달렸길래 이렇게 됐는가'
보니까 우리가 잘 알듯이 42.195km였습니다
그래서 이 페이디피데스를 기념하기 위해 지금까지도 올림픽에 하계올림픽 하이라이트로 마라톤 경기를 하는데 이것은 전설이고 또 여러 가지 설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라톤 경기를 하고 손기정 선수가 메달을 따기도 했습니다
우리 인생은 마치 마라톤 경기와 같이 긴 거예요
혼자 뛰면 안 돼요
주님이 같이 뛰어주셔야 돼요
그래서 마라톤에도 삼십키로까지는 페이스 메이커가 있습니다
꾸준히 한결같이 뛰어라는 거예요
안 된다고 낙심하지 말고 잘 된다고 교만하지 말고 우리 목사님처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 같은 신앙으로
하나님은 하늘의 창고를 여시고 복을 주시는데 문이 닫혔다 열렸다 하면 복을 받을 수가 없어요
다니엘이 전에 행한대로 기도한 것처럼 내 실존적인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한결 같이 바라보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크신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삼십키로까지는 나하고 같이 뛰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삼십키로가 지나면 "이제 너 혼자 뛰어라" 이거예요
자녀들이 부모님과 함께 삽니다
스무살 넘어가면 독립심을 가지고 자기 인생을 자기가 뛰어야 돼요
요즘은 서른살까지 도와주죠
우리는 그러한 인생의 지점을 통과하게 됩니다
나 혼자 뛰는 거예요
야곱도 부모님과 함께 살았지만 라반 삼촌의 집으로 갑니다
삼십키로를 지난 거예요
그때부터는 자기 힘으로 독립심으로 살아가고 '너를 도와줄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다'
하나님 의지하고 나아가야 될 줄 믿습니다
마라톤에서는 삼십키로에서 삼십오키로까지가 한계의 상황이라고 합니다
저는 마라톤을 뛰어보지 않았지만 요때가 정말 죽고 싶다고 합니다
많게는 다섯번에서 열번까지 꼴깍꼴깍 포기하고 싶고 그만두고 싶고 그래서 여기서 많은 선수들이 포기하죠
우리 인생에서 이런 한계상황을 만날 때 정말 견디기 힘들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저능하신 하나님이 있습니다
그때야말로 하나님을 찾을 때입니다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만날 만한 때에 그를 찾으라'
때로는 한계속으로 우리를 몰아가세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입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그런 한계상황에 처하지 않으면 하나님 안 찾아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를 찾으라'
그런데 요 구간을 통과하면 뇌에서 호르몬이 뽕뽕뽕 나와서 힘들지 않고 어렵지 않고 즐겁게 뛸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이 어려운 구간만 지나면 살만한 구간 나옵니다
통증을 잊으며 달리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라톤에 중독된 분은 왜 이렇게 힘든데 뛰냐 하면 이걸 맛보기 위해 중독이 된다는 거예요
이것을 '러너스 하이'라고 합니다
요 구간을 통과하면 너무 좋다는 거예요
오늘 말씀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골리앗이라는 한계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사울왕도 모든 이스라엘 백성도 두려워서 벌벌 떱니다
현실만 바라보는 거죠
그동안 하나님이 도와주셨고 함께 한 것은 온데간데 없어져버려요
현실적인 상황 한계상황이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골리앗이 이스라엘과 사울왕과 하나님을 조롱해도 누구 하나 나서지 못합니다
위기상황, 한계상황이죠
우리도 이런 상황에 직면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목사님 말씀대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삶속에 뚫고 들어오시도록 하나님께 기회를 드려야 될 줄 믿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수많은 위기 가운데 기도하고 승리했습니다
모세와 아말렉의 전투 사무엘의 미스바 기도 느헤미야의 기도 엘리야의 갈멜산의 기도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을 때 벽을 향해 통곡하며 "전에 병에 걸리기 전에 하나님께 전심으로 행하던 것을 기억하시고 두번째 기회를 주옵소서 살려주옵소서 온전히 하나님께만 헌신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한계상황을 뚫고나가게 하실 때는 단지 그 어려운 상황만 해결하는데 뜻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붙들려서 남은 생애를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라고 사명을 감당하라고 건강 주시고 물질 주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순종하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이 더 빨리 들어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할지라도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에게는 더이상 그것이 한게상황이 아닙니다
돌발상황으로 그 수준이 떨어지는 거예요
골리앗이 사울왕과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한계상황이었지만 다윗에게는 한계상황이 아니에요
다윗에게는 그저 돌발상황에 불과한 것입니다
어떻게 똑같은 상황인데.. 누구에게는 헤쳐나갈 수 없는 한계상황이고 누구에게는 헤쳐나갈 수 있는 돌발상황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며 묵상하며 적용해 보았습니다
하나님 믿으며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도 두가지 사람이 있구나
두 가지 부류가 있구나
한쪽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속에서 현실이 전부 다인데 내 믿음생활이 부분집합으로 부분적으로 가운데 있는 거예요
이런 사람은 늘 골리앗이 나타나면 사울왕과 이스라엘 백성처럼 꼼짝 못하고 벌벌 떠는 거예요
믿음보다 현실이 더 크게 보이는 거예요
하나님보다 상황이 더 크게 보이는 겁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겁니다
다른 한쪽은 믿음 가운데 현실생활을 하는 거예요
신앙이 전부라면 내 현실 문제들은 작은 거예요
대수롭지 않아요
당회장 목사님 말씀하시는 것 보면서 '목사님 믿음이 참으로 그렇구나'
현실보다 믿음이 큰 신앙생활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옛날에 무술공부를 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고수를 찾아가 "저에게도 무술을 가르쳐주세요"
그런데 안 가르쳐 주는 거예요
그래서 삼년 동안 물긷고 장작패고 밥짓고 빨래합니다
삼년이 지났을 때 스승이 오라고 그래요
저기 삼십미터쯤에 나무가 있는데 거기다 쌀 한톨을 실로 묶어서 매달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걸 열시간 열다섯시간 그것만 바라보라고 합니다
잘 안 보이죠
한달 뒤 물어봅니다
"얼만큼 보이냐"
"콩알만하게 보입니다"
육개월 뒤 또 물어봅니다
"어떻게 보이냐?"
"주먹만하게 보입니다"
한참을 지나 또 물어봤어요
"어떻게 보이냐?"
"수박만큼 보입니다"
"그럼 이제 하산해도 좋아"
이 사람이 하산해서 무술대회를 나가가지고 장원급제해서 잘 먹고 잘 살았다고 합니다 ㅎㅎ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현실보다 크신 하나님이십니까? 작은 하나님이십니까?
아브라함은 이삭을 설령 죽이더라도 하나님은 약속의 유업을 위해 다시 살려주신다는 부활신앙이 믿음이 거기까지 자란 거예요
그래서 드린 거예요
하나님이 어느 순간 갑자기 커지지 않습니다
아브라함도 창세기 12장에 부르심 받아서 22장에 그 어려움을 경험하고 체험하고 실패하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것을 느낀 거예요
실패한다고 좌절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과정속에 시간속에 우리를 키워가시는 하나의 과정인 줄 믿습니다
다윗도 양을 치는 목동으로부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하나님 의지하고 사자나 곰이 오면 물러서지 않고 생명 걸고 지키는 거예요
싸우는 거예요
다윗이 혼자 힘으로 했겠습니까?
다윗의 중심 양떼를 사랑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도와주셔서 다 물리쳐 주신 줄 믿습니다
다윗은 저 밑바닥 삶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 함께 하시는 하나님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거예요
신앙의 잔뼈가 굵은 거죠
그런 연단의 과정속에서 골리앗 앞에 나아간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이 사자의 발톱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이 골리앗의 사나운 발톱에서도 건져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는 거예요
다윗은 세상적으로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계산하면 안 돼요
그러자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다윗처럼 골리아 앞에 서면 죽을까 죽지 않을까 따지지 않고 믿음을 온전히 던질 때에 세상사람들이 사람으로 할 수 없는 그 지점에 내가 직면했을 때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왔을 때 하나님은 개입하셔서 도와주십니다
이게 계산하지 않는 신앙이에요
여기까지 계산하면 곤란하지만요 ㅎㅎ
하나님은 그럴 때 역사하시고 우리 삶의 소망이 끊어질 때 바울과 같이 사형선고 받은 심정으로 고백할 때 우리의 싸움이 하나님께 속해있느냐 속해있지 않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속해있으면 하나님이 건져주시고 책임져주십니다
함께 하십니다
내 삶의 문제 가정의 문제 조국의 문제가 이 싸움이 골리앗 같은 저 북의 위협속에서 우리가 과연 하나님께 속한 싸움을 싸우느냐 그저 그런 싸움을 싸우느냐
우리의 모든 싸움은 하나님께 속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저 골리앗을 무너뜨려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영광만이 나타나는 새벽기도회 시간이 될 줄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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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깨웁시다


모세가 돌판 돌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그 두 돌판을 손에 들고 여호와의 명령대로 시내 산에 올라가니라(출34:4)
Posted by GaeP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