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신앙생활2014. 10. 13. 09:29

10.13일(월) 새벽예배
• 로마서 6:16~18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월요일 아침이 참 일어나기 힘들고 여러가지 마음이 분주하게 되는데 일찍이 주의 전에 나온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갑절로 더하기 바랍니다
제가 어제 원래 준비한 찬송이 주와같이 길 가는 것이었는데 아침에 기도하고 일어났는데 지난주에 한장로님이 소천하셨는데 가장 좋아하셨던 찬송이 249장이었어요
저도 유학시절부터 늘 즐겨부르던 찬송이었는데 그 찬송을 드려봤어요
지난 주일에는 한국교회가 존경하는 방지일 목사님께서 소천하시고 또한 한장로님도 소천하셨는데 두분의 소천을 바라보면서 정말 나도 우리 방지일 목사님처럼 귀한 길로 가는 믿음의 삶을 잘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시편 15편, 24편 등을 보면 누가 과연 주의 성산에 설 수 있을 것인가하는 내용을 담은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우리가 늘 하나님의 전에 나오고 있지만 장차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설 수 있으려면 이 땅에서의 삶을 정말 잘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전을 얼마나 귀히 여기는지 얼마나 주의 말씀을 갈급했는지 대한 삶의 모습이 있어야지만 하나님 앞에 기쁨과 감사함으로 설 수 있을 것입니다

두분이 소천하시는 것을 보면서 제 마음에 떠오르는 그림이 두개 있었어요
이탈리아에 가면 스크로베니 성당이라는 소성전이 있는데요
왜냐하면 그 성전을 지은 사람이 스크로베니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소성전에는 벽 양쪽으로 성화가 그려져있어요
벽 전면에는 최후의 심판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굉장히 아름다운 그림인데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심판의 보좌에 앉으셔서 심판하는 모습을 보이고 그 보좌 밑에는 지옥에서 심판받는 사람들의 모습도 있어요
보좌 바로 밑에는 성모 마리아가  어느 한 사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성당을 지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한 손에다가는 소성당의 문고리를 잡고서 받치고 있고 한손은 성모 마리아에게 내어놓고 있는 그림입니다
이 아름다운 성당을 지어 이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당신께 받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그림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사람은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느냐?
이 사람의 아버지는 고리대부업자예요
많은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 부를 축적한 사람인데요
고리대금업자는 갖고 있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너무나도 무자비하게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않고 눈물을 흘리게 한 사람이었어요
아버지뿐만 아니라 이사람도 고리대금업자로 부를 축적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이 사람이 과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소성당을 지으면서 나를 받아달라고 그린 그림입니다

받아주셨는지 안 받아주셨는지는 몰라요
사실 삭개오와 같은 고백이 있어야 하는데 돈으로 천국을 살 수는 없잖아요
믿음으로 성전을 짓고 믿음으로 거룩한 삶을 살 때 천국에 가는 것인데 돈으로는 갈 수 없는 것이죠
이 땅 가운데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제 우리 김하나 목사님이 곧은 화살이라는 제목으로 귀한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곧은 화살은 쏘는 사람이 정확히 쏘면 과녁을 향해 맞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곧은 방향으로 날아가서 꽂혀야 하는 곳이 어디입니까?
천국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천국에 가서 하나님 품에 안기는 귀한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면 헛된것이고 거짓된 것입니다
우리가 늘 곧은 화살을 타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또 한점의 그림은 어떤 그림이냐 하면 제가 미국에 있으면서도 가보지를 못했어요
처음에 학교에서 구경시켜준 것을 제외하고는 못 갔는데요
워싱턴에는 국립미술박물관이 있습니다
그 곳에는 죽음과 구두쇠라는 그림이 걸려있습니다
이 그림 중앙에는 해골의 모습을 한 죽음이 방문을 열고 어떤 사람의 방문에 들어옵니다
이 사람은 병상에 누워있어요
의인화된 죽음이 화살을 겨누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이 임박한 것이죠
이 그림 바로 밑에보면 녹색옷을 입은 사람이 돈을 돈궤에 넣고 있어요
그 밑에는 마귀가 그 돈을 받고 있습니다
또 그 밑에는 검, 총, 투구와 옷 등이 놓여져 있어요
이 그림이 무슨 그림일까?
1450년~1470년 경에 가장 원시적인 총이 발견됩니다
그래서 이 무렵이 어떤 시기가 되었느냐면 기사 계급의 몰락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이 그림이 그려진 1490년경에는 이미 기사 계급이 몰락해서 자신의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는 투구와 옷 등을 맡기고 돈을 빌리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상류층이었던 기사 계급이 몰락하고 새로운 부유층이 생기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재밌는 것은 이 사람은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중간에 그려져 있는 모습은 이 사람의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인데요
이 사람도 고리대금업자로 돈을 번 사람입니다
투구, 갑옷 등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고 돈을 벌었습니다
이 사람은 돈을 너무 사랑하고 돈만 사랑했던 사람인데 그럼에도 이 사람의 허리에는 묵주가 있어요
십자가가 걸려 있고 믿음으로 살아간다고 입으로는 고백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돈을 사랑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수호천사가 "너 이제 죽음이 가까워져있다"라고 알려주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자기의 수호천사가 가리키는 것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이 사람도 자기가 이제 죽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창가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절대로 창가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구원이 들어오는 하늘 나라를 바라보지 아니하고 자기 병상 밑으로 마귀가 올려놓은 돈 주머니를 향하여 손이 나아가고 있습니다
천사는 하늘나라를 바라보라고 하고 있지만 구원의 빛을 보내주고 있는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하지만 눈은 죽음의 사신이 가져온 화살을 가져온 것을 보면서 돈을 향해서 손을 내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알고보면 너무나도 끔찍한 그림입니다

사람은 자기 삶의 패턴을 한 순간에 바꿀 수 없습니다
항상 믿음의 훈련, 경건의 훈련이 없으면 죽음이 목전에 와도 항상 자기가 행하던 것을 하기 마련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거룩한 삶을 살면서 의의 종이 되어서 항상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마지막 도착지점을 바라보는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에도 사도바울이 말합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둘 중 하나가 된다고 합니다
죄의 종이 되거나 의의 종이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에 다닐 때 유행한 책이 있었는데 루터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에 바울이 그런 얘기를 하지만 양 옆에 하나님이 있고 마귀가 있어서 양쪽에서 우리를 잡아당기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히 얘기하면 마귀를 등에 지고 가면 마귀를 쫓게 되어 죽음에 이르고 성령을 등에 지고 가면 성령의 사람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지난 수요일에 당회장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제가 큰 깨달음을 얻었는데요
우리가 왜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
믿음의 삶을 살지 않고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마귀의 종이 되면 모든 것이 마귀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것이 나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마음을 곤고케 하고 염려케 하고 나를 파멸에 몰아넣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또 이단을 연구하는 소장님이 오셔서 무슨 말씀을 주셨느냐 하면 자녀를 잘 키웠어요
좋은 대학을 나오고 직장을 다녀서 이제는 이 자녀로 인해 기쁨을 누리고 영광을 받을 것만 기대했는데 한 순간에 이 자녀가 이단에 빠져서 아버지 어머니를 당신이라고 부르면서 글을 남기고 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면 우리가 기쁘게 여기던 모든 것이 우리에게 상처와 아픔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을 가장 좋아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그 선물만을 가장 기뻐하고 소망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면 그것이 우리를 기뻐하게 하고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우리에게 죽음보다 더 큰 아픔을 가져다주고 재물이 우리에게 근심을 가져다주고 가정을 분란으로 몰아넣게 되는 안타까운 소식을 우리의 삶에서 많이 듣게 됩니다
우리가 의의 종이 되어서 순종하는 삶을 살면 이 땅에서도 귀하게 살고 하나님의 나라에 임할 줄 믿습니다

신앙생활, 가정 생활에 있어서 순종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 하는데요
순종이 무엇입니까?
듣기 싫은 말,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집에서도 부모님이 항상 사랑으로 전하시는 훈계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면 이 땅에서 귀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말할 때마다 토를 달고 문제가 있을 때마다 의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기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이런 학생을 어떤 선생님이 키워 주겠습니까?
듣기 싫은 말, 하고 싶지 않은 것도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하는 것이 능력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도 귀한 삶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처럼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성전을 통하여 주시는 수많은 복을 작은 것이라도 감사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자녀를 기르실 때도 옳고 그른 것을 떠나서 일단 "네 아버지, 어머니"라고 대답하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항상 집에서도 부모님 말씀을 순종하고 가장에게 남편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면 자녀들도 그 뒤를 쫓아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고 귀한 사람으로 여기고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순종의 삶을 살고 의의 삶을 살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곧은 삶을 살아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가는 귀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새벽을 깨웁시다^^

 

 

성화 < 최후의 심판 > 

 

 

성화 < 죽음과 구두쇠>

 

 

 

 

Posted by GaePein
etc/신앙생활2014. 10. 13. 09:28

10.12 주일5부예배
곧은 화살(히12:7-13)
김하나 목사님(새노래명성교회)


오늘 곧은 화살이란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잠깐 TV를 봤는데요 화살을 만드는 장인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길이의 대나무들이 꽂혀있었는데 가만히 보더니 그걸로 화살을 만듭니다. 바람을 맞고 자란 단단한 대나무 입니다. 그것을 가져다 작업실 같은 곳에서 불에 넣어서 단련시켜서 곧게 만듭니다. 그 분이 말씀하시길 60년 동안 화살을 만들었는데 단 한번도 곧은 대나무를 본 적이 없다는 겁니다. 아무리 곧아보여도 사실은 화살로 쓰긴 부족한 겁니다. 그래서 그 대나무를 가져다가 단련하고 곧게 펴서 화살로 만듭니다.
아무리 사람이 곧아보여도 다 문제가 있습니다. 곧아보이는 대나무일 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휘어있는 문제있는 대나무인데 우릴 부르셔서 귀한 재목으로 쓰기 위해 단련시키시고 고치시고 오늘 말씀에서는 징계하신다는 표현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화살이 곧지 않으면 멀리 날아가지 못합니다. 금방 떨어집니다. 더 큰 문제는 휘어있는 화살은 가서 과녁을 맞추지 못합니다. 반드시 쏘는 방향과 다르게 날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에 이런 것이 많습니다. 살아가다보면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화살이 곧지 않으면 턱도 없이 전에 떨어지고 과녁을 피하기 쉽상입니다.


얼마 전에 저희 교역자님들과 홍천으로 워크샵을 갔습니다. 첫 날 지나고 다음날 산에 올라갔습니다. 이런 저런 위락시설들이 있습니다. 공룡 모형 꽃 모형이 있고 화살과 과녁이 있습니다. 이거 맞추자 그래서 쏴서 맞추는데 이게 과녁이 바로 앞에 있는데 한 번도 못 맞추는 겁니다. 모두가 전력을 다 해도 한 번을 못 맞췄습니다. 우리 교회 목회자들은 우스개 소리로 스포츠팀이라고 합니다. 운동을 잘 하시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화살이 엉망 진창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방법을 써도 과녁이 맞지 않는 겁니다.


노력해보면 저 정도도 안될까 싶은 게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고침을 받지 않으면 보이는 그 과녁에도 가서 안 맞는 겁니다. 거기까지 날아가지도 못합니다. 왜 우리가 고쳐져야 하느냐.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과녁을 향해 날아가서 맞출 수 있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 인 줄 믿습니다. 곧은 화살이 멀리 날아가는 겁니다. 곧은 길을 만들게 하시는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 만나는 시간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저는 히브리서를 굉장히 사랑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제목입니다. 유대인들을 향한 서신서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주는 굉장히 중요한 서신서 입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표현되었느냐가 중요한데, 먼저는 천사보다 높으신 예수님 모세보다 높으신 대 제사장보다 높으신 예수님을 표현합니다. 그런데 너희가 거기에 얽매이지 말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를 바라보자 입니다. 새로운 예수님에 대한 관점을 알 필요가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신앙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 입니다. 그러면서 11장에 가서 믿음의 조상들을 이야기 합니다.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여자도 나옵니다, 라합. 수많은 선지자들이 나오면서 그들이 믿음의 조상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너희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라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믿는 모든 사람이 항상 겪는 경험,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바로 고통의 문제라는 겁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쫓아가고 있는데 고통이 찾아옵니다. 바로 징계라는 단어로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를 재해석 합니다. 이는 관계의 용어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냥 징계가 내려지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하지만 관계의 용어가 될 때 아름다운 단어가 되는 겁니다. 잠깐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때 이 것이 관계 속에서 표현되어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예를 들면 임자가 있는 여자. 그 자매를 붙잡고 몰래 부른 다음에 내가 널 사랑해.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위험하고 잘못된 거죠. 사랑이라는 것도 관계 속에서 쓰여져야만 아름다운 겁니다. 징계도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용할 때 아름다운 것입니다. 징계를 통해 우리를 고치시고 바꾸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아름다운 단어입니다. 우리가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안다면 정말 귀한 단어입니다.


그런데 신약적인 단어로 사용한다면 징계는 또한 훈련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 그래서 징계를 받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를 자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라고 하십니다. 제자는 훈련을 받는 겁니다. 자녀는 징계를 받고 제자는 훈련을 받습니다. 제가 저의 아들에게 특별한 것을 요구하며 가르친다면 징계이지 훈련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신 것은 훈련입니다. 그래서 징계와 훈련을 잘 알아야 합니다. 징계를 싫어하는 자를 잠언에서는 짐승과 같다고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이 됨을 고백하는 믿음이 있길 간절히 원합니다. 징계는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믿음을 보였다는 말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징계를 받을 수 없습니다. 왜나면 징계인지 영원히 알 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슬프고 힘든 징계여도 후에는 의와 평강의 열매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징계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아들이라면, 사랑하는 아버지라면 당연히 징계를 주는 것입니다.


때로는 힘든 것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제가 오랜 시간 아이가 없었을 때 아이 때문에 힘들어하는 부부를 보면 그게 부러워요. 아이 때문에 피곤해 하면 그게 부러워요. 여러분 남들이 힘들어하는 것 부러워 할때가 있습니다. 저는 특별히 유모차가 그렇게 부러웠어요. 아무리 유모차를 좋아해도 빈 유모차를 몰고 다니면 동네에서 찍힙니다. 저는 특별히 부모님과 아이가 얼굴을 마주보는 유모차가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힘든게 부럽고 좋은것도 부럽고. 여러분 학교를 다니지 않는 사람은 아침에 힘들게 학교 나가는 학생들이 부러운겁니다. 아직 직장을 얻지 못한 사람은 어제 늦게 퇴근하고 오늘 다시 출근하는 사람이 정말 부러운 겁니다. 고아들은 부모님한테 혼나는 친구가 부러운 겁니다. 혼내줄 부모님이 없는 거예요. 문제를 일으켜도 아무도 아무 말 하지 않는 거예요. 성적 떨어지면 성적표 갖다주기 무서워 떠는 친구들이 부러운 거예요. 누군가 혼내주고 고쳐줄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알아야 합니다. 나를 고쳐주실 분이 게시다는 것. 이게 우리의 가장 큰 복이라는 거예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말 함부로 못 합니다. 조금이라도 검소하게 살아야죠. 아무데나 못 갑니다. 우리 삶의 수 많은 것들이 우리를 제약하고 어렵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것이 복된 인생입니다. 그 많은 계명 속에서 사는 우리들이 멀리 날아갈 수 있는 바른 화살이 됩니다. 내가 하고싶은 대로 다 하면 인생이 행복해지는가.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실 수 있는 가장 큰 벌은 가만히 내버려 두시는 겁니다.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라. 여러분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무엇을 하지 못하고 손해 본다면 멀리 날아갈 수 있는 바른 화살이 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 때문에 힘들길 원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조금 더 힘들어지길 원합니다. 그럼 잠깐 행복한 삶이 아니라 멀리 갈 수 있는 주님께서 쓰시는 사람들이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릴 곧게 만드시는 거예요. 높이 올라가는 것에만 너무 관점을 두지 마십시오. 멀리 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흔히 우리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 sky 대학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하늘, 가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가면 우리가 정말 하늘 높이 살아가느냐. 바로 바로 떨어지는 인생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높이 올라가는 것 말고 멀리 가는 것에 많은 초점을 두시길 바랍니다. 한 없이 높이 올라가도 1m도 전진하지 못하고 바로 떨어지는 삶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아이비리그에 대한 반성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정말 가기 힘든 수재들만 가는 학교입니다. 대단한 사람인 걸 금방 알게 됩니다. 제 친구가 하버드를 다녔는데 저를 초청해서 가서 논 적이 있습니다.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나도 마치 그 학생인양.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길 건너에 프린스턴 대학에서 수업을 들었는데 관광객들이 늘 구경하는데 저를 경의로운 눈길로 쳐다봐요. 책을 들고 걷고만 있어도. 이 기사가 이야기 하는 것은 아이비리그 학생들이 의외로 많이 추락한다는 겁니다. 세 가지 책을 소개합니다. 예일대 영문학과 교수님이 쓴 잘못된 미국 엘리트 교육에 대한 책, 또 하나는 논픽션인데 짧고 비극적인 삶, 나머지 하나는 아이비리그 사교모임 청년의 고백입니다. 아주 안 좋은 음주 문화가 바로 어디서 시작되었느냐. 술 마시다 죽은 일이 비일비재한데 아주 명문 아이비리그에서 미국 대학교를 죽이는 음주문화가 시작되었다는 거예요. 두 번째 책을 추천하는데요. 아버지가 마약 밀매상이예요. 이 사람이 떵떵거리며 지역에서 멋있게 살지만 사람을 죽인 죄로 감옥에 들어가서 암으로 죽습니다. 그 아들이 머리가 좋아서 예일을 골라서 갔어요. 가만히 보니 예일대 학생이 마약을 많이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버지의 직업을 따라 예일에서 마약을 팔고 1억원이 넘는 돈을 벌었습니다. 졸업하고 살아보니 별로 돈 벌수 있는 일이 없는거예요. 그래서 결국 다시 마약을 밀매하고 옆에 있는 갱단에 의해 살해당합니다. 이 일로 인해 명문대가 얼마나 마약에 빠져있는지, 또 명문대 나온다고 좋은 인생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소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고침을 얻는 것을 기뻐하고 원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를 고쳐주세요 고백해야 합니다. 사람이 한 사람에게만 좋은 이야기를 들어도 확 바뀔 수 있습니다. 워렌 버펫과 같이 점심 먹기 위해 엄청난 돈을 낸다고 들었습니다. 우리가 대가에게 한 마디 듣는 것이 얼마나 인생을 바꿀 수 있는지. 하물며 하나님께 고침을 받는다면 잠깐 날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과녁을 향해 멋지게 날아가는 인생이 될 줄 믿습니다. 간절히 원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징계는 결코 쉽지 않다는 겁니다. 아무나 다 견디는 징계가 아닙니다. 가슴을 후비고 눈물이 쏙 빠지는 징계가 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11절에 당시에는 슬퍼보이나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징계를 당하면서 그 징계를 쉽게 여기면 더 이상 징계가 아닙니다. 징계의 역할을 할 수가 없습니다. 솜방망이 징계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는 징계를 하지만 징계가 아니예요. 한달 감봉, 세달 휴직. 그러니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거예요. 수많은 잘못된 일들이 솜방망이 처벌이 되니까 당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별게 아니구나 하는 겁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징계가 징계가 되어야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쉬운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내가 가슴을 치고 아파할 때. 그런데 우리는 징계를 만날 때 보통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이건 제가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어요 하고 징계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먼저 울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앞에 이길 수 없는 사람임을 고백할 때 넘어서게 하는 것이지 내 믿음으로 이겨설 수 있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늘 많이 징계를 주시고 고치십니다. 제가 곧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아이라는 테마로 저를 많이 고치세요. 첫째도 늦게 가지며 그런 은혜를 받았는데 둘째도 그런 것 같습니다. 두 달 일찍 나와서 갑자기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몸무게도 1.3KG밖에 안 되는 작은 아이로 나왔어요. 일주일 밖에 안 되었을 때 심장 수술을 했어요. 간절한 마음으로 나아갔습니다. 우리 아이 괜찮아질 줄 믿습니다가 아니라 참회하는 마음으로 나아왔습니다. 인큐베이터에서 나올 때 까지 아직도 하루 한 두끼 씩 금식하며 매달리고 있습니다. 너 이거 가지고 내 앞에서 철저히 아파하고 괴로워해야 이 모든 것이 너에게 연단이 되고 힘이 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하나님 앞에서 힘들어 하는 것은 복된 일입니다. 감당할 수 없음을 알고 철저히 낮아지는 것이 진짜 믿음의 모습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후에 연단을 통해 그것을 의와 평강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내가 당할 때는 고통스럽고 슬프나. 그러나 지난 후에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의와 평강으로 세워주시는 거예요. 우리가 의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꼐서 의의 선물을 주시는 겁니다. 평강. 내가 책 좀 읽고 음악 듣고 마음 수련하면 평안이 영원히 갑니까. 아니오 명확한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야 진짜 평강입니다. 징게 받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의와 평강으로 채워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낮아지고 하나님 앞에 슬퍼하고 고통 가운데 있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고 반드시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곧게 하시느냐. 우리를 목표까지 날아가게 하기 위해, 표적을 맞추시기 위해서 입니다. 두 단어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나는 거룩함 입니다. 10절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은 이 징계를 통해 우리를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거룩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우리를 옮겨주십니다. 거룩함의 반대 말은 죄입니다. 그러나 거룩함과 죄는 명확한 공통된 중심이 있습니다. 죄는 과녁을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다른 것들로 휘어지고 망가져서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는 것이 죄라는 거예요. 거룩함은 우리를 고치셔서 과녁을 향해 날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것인 줄 믿습니다. 어떻게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느냐. 우린 거룩이란 것이 없는 사람들이예요. 목표를 향해 날아가는 것이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인이 마땅히 살아야 할 곧은 화살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시고 고치시고 훈련시키십니다. 어떠한 일을 당하든 그것이 벌이 아님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떠한 일이든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징계임을 고백해야 할 줄 믿습니다.


어제께까지 새노래 명성교회 바자회가 있었어요. 저희가 먹거리 알뜰시장 그릇 등 별의 별 것을 다 팔고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그것 때문에 지금도 얼마나 피곤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람이요. 마지막에 가면 긴장을 약간 풀지 않습니까. 우리가 끝까지 하나님 의지하지 않으면 사탄이 틈타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7시까지 바자회를 열었는데 6시 30분에 청년부 예배를 끝내고 치우기 위해 내려왔습니다. 한참 먹고 있는데 갑자기 방역차 소리가 나더니 바로 옆에 있는 산에서 연기가 자욱하니 내려오는 거예요. 그 소독약 냄새예요. 시간을 보니 토요일 저녁 그 시간에 공무원들이 방역을 하러 다닐 일이 없는 거예요. 이상하다 싶었는데 집사님들이 갑자기 위로 뛰어 올라가요. 알고보니 산 옆에 아주 좋은 집이 있는데 거기서 주인 아저씨가 저희를 향해 방역기를 들고 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한 치 앞을 볼 수 없었어요. 내 앞에 있는 사람 조차 볼 수 없을 정도로. 그래서 국밥 먹고 있는데 그 수 많은 방역 가스가 우리를 완전히 덮었어요. 저는 두려웠던게 저희 바로 옆이 차도라서 사고가 나지 않을까. 기분이 다들. 알고보니 그 아저씨가 술을 한 잔 먹고 기분이 안 좋아서 그런 거예요. 국밥 안 갖다 드렸다고. 너무 당황했어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요. 집안 사람이 다 나왔는데 다 아버지 편만 들지 사과 한 마디 없고요. 10분 15분 지나니 연기가 사라져 잘 정리 했습니다. 마침 설교도 분을 더디 내라는 설교를 했거든요. 한참 생각을 했는데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교회로서 적절히 대처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면서 나중에 가서 사과드리자. 우리가 국밥 못 드려서 죄송하고 폐장하는데 소독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차라리 그게 낫겠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기억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우리 마음에 오셔서 고쳐주시고 곧게 만들어주셔서 멀리 날아가게 할 뿐 아니라 목표 지점에 꽂히는 일이 있을 줄 믿습니다.

 

 

Posted by GaeP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