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신앙생활2014. 10. 21. 17:08

10.21일(화) 새벽예배
• 시편 50:23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할렐루야~!!
요즘 경기가 어렵다고 이야기합니다
좋다고 이야기 한적은 별로 없지만 어디를 가도 어렵다고 이야기합니다
어제 라디오 방송을 들어보니깐 세계 경제도 어렵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 어려운 시기를 지날 때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줄 믿습니다
감사를 드리는 자에게 주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은 예수를 믿고 영원한 천국에 가는게 궁극적인 것이지만 굳이 정의를 내려보면 불완전한 것이 완전하여 지고 하늘 아버지와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감사드리는 사람에게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사람에게 감사드리는 것과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것이 동일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주의 구원을 보여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무엇보다 추수감사절을 준비하면서 이 가을에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회복할 때 구원이 회복할 줄 믿습니다
예수 믿고 경건한 생활을 하는 사람의 특징은 감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도 경건한 삶을 살지 않는 사람은 감사가 없습니다
감사가 쉽게 할 줄 알지만 은혜받은 사람, 경건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감사합니다
여러분 돈이 많다고 형제나 이웃을 도와줍니까?
돈이 없어도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특별히 죄악 가운데 사는 사람은 옆에 있어도 안 도와줍니다
경건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옆에 사람이 보이고 주님이 보이는 것입니다

성경은 데살로니가 5장에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나온 나날들에 대해서 감사하고 현재 펼쳐진 하나님의 손길에 대해서 감사하고 미래에 하나님이 주실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야할 줄 믿습니다
영국의 스펄진 목사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온갖 은혜가 주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촛불 주심을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햇빛 주심을 감사하면 천국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합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감사한 것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부모의 은혜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잊어버리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소홀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잊지 않고 부모님의 은혜와 주의 사람들의 은혜를 잊지 않으면 주님께서 풍성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아마 박순애 전도사님을 잘 아실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 10여년전부터 전국을 돌아다니시면서 간증을 하고 있는데요
인터넷을 통해서 유투브를 보면 영상이 많이 있습니다
그 분이 한 10여년 전부터 책을 쓰면서 부끄러운 자기의 옛날 모습이지만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자기의 자서전을 쓰게 됩니다
방송을 통해서 알려지게 됩니다
그래서 전국에 다니면서 간증을 하러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전에 한번 잠깐 오셨었는데 짧게 하고 가셔서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이 분은 10세 때 구룡포에서 살았는데요
10살 때 어머님이 아버지가 징용을 당해서 안 계시니깐 재혼을 하여 다른 곳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어머님이 보고 싶어서 갈등을 하다가 바다에 몸을 던집니다
죽은 줄 알았는데 바다가 밀어내어서 살아 있게 되었습니다
10살 때 주일학교 선생님이 복음으 전해 주어서 교회를 다니게 되었는데 어머님이 너무 보고 싶어서 13세때, 청송으로 어머님을 찾아옵니다
찾아와서 어머님과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고백을 합니다
10살 때 왜 죽고 싶었겠습니까?
어머님이 나가니깐 이복오빠가 성폭행을 하는 것입니다
10살 때 어머님이 얼마나 보고싶었겠습니까?
어머님에게 가면 다 해결해 주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어머님이 보고 싶은 거예요
이분이 초등학교 중퇴입니다
그런데 얼마전에 보니깐 부부가 큰 학원을 하는 것을 봤는데요
하나님의 은혜이죠
초등학교 중퇴해서 어머님을 만나서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는데 18세 정도 되어서 새마을 운동을 열심히 하니깐 청송에서 회장이 되었나봐요
또 경북의 부회장이 되어서 교회생활도 잘하고 열심히 하니깐 군수님이 청송교도소의 교정위원을 하라고 하셨어요
그 사람들에게 정신교육을 시키라고 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훈련을 받고 강사가 됩니다
이 분의 간증 들어보면 감동이 있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순애가 10살이 되어서 주일 학교 선생님의 전도로 예수를 믿고 다른 곳에서는 자기를 받아주는 곳이 없는데 교회에 오니깐 하나님은 자신을 받아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는 하나님께 드릴 게 없어요
교회에 보니깐 꽃꽂이가 없어요
그래서 들판을 다니면서 진달래, 갈대를 꺾어서 토요일 오후에 강단을 장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릴 게 없어서 진달래와 갈대를 꺾어서 드립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기억하시는 것입니다
나중에 보니깐 학원을 하면서도 이분은 어려우면 오히려 선불로 십일조를 드리는 것입니다
요즘 유투브를 도배하고 있습니다

감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은혜에 감사해서 특별히 택함 받은 사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열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께서 지나간다는 얘기를 듣고 멀리서 부르짖습니다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에게 다가가 제사장에 다가가 네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병 환자인데 믿고 가서 제사장에게 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다가 보니깐 다 나았지 않습니까?
9명은 제갈길로 가고 한명은 예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제사장에게 가기전에 예수님에게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사람도 구원을 받았다고 구원의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9명은 몸만 나았지만 이 사람은 구원함을 받는 은혜를 볼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구원받는 특권이 있습니다
그래서우리는 무엇보다도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은 예배를 말합니다
예배를 드릴 때 감사가 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감사가 우선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감사 드리는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몸을 볼 때 얼마나 감사합니까?
제가 요즘에 손에 흠집이 났는데 물을 수시로 만지니깐 잘 낫지를 않아요
주부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도 하나님께서 사람의 가죽 겉에 코팅을 해주셨기 때문에 이 코팅은 지워지면 또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천연 코팅을 해주셨으니 이 은혜를 생각만 해도 감사할 수 밖에 없어요
제 친구가 지금 감리교 목사님인데요
이 친구가 고등학교 시절에 그 친구집에 가면 어머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새 어머님이 들어오셨어요
그 집에 같이 놀려고 가면 항상 어머님께서 하는 말씀이 항상 그 친구는 잔다고 하는 거예요
가만히 보니깐 자고 일어나면 정신이 맑아지니깐 공부하고 틈나면 다시 자고 일어나서 다시 공부하고 또 자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마음속에 괴로움과 욕심과 욕망 때문에 힘들어 할 때 잠만 잠깐 자도 괜찮아지지 않습니까?

우리가 죄악을 벗어날 길이 없다고 하면 잠이라도 자면 됩니다
속상하고 괴로우면 잠만자도 하나님이 고쳐주시지 않습니까?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사할 일을 많이 주셨습니다
특별히 추수감사절을 주셔서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감사절기를 준비하면서 참 감사할일이 많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 주신 복을 헤아려 보면 참으로 감사할 것이 많습니다
오늘 우리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 그의 행위를 옳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삶 가운데 내가 하나님 앞에 감사할 일이 무엇인지 자꾸 적어봐야 합니다
복을 세어봐야 합니다
세어보면 볼 수록 감사할 일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요즘 안 믿는 사람들도 제사상을 차릴 때 거하게 차립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굿을 할 때 수백, 수천만원을 들여서 굿을 합니다
오늘 우리가 감사를 준비하면서 우리도 준비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도 감사로 제사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고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추수 감사절 절기입니다
우리교회 추수감사절은 참으로 신납니다
안 믿는 사람이 와도 신납니다
특별히 감사할 것이 없으면 전도라도 해서 감사하십시오
국밥을 하니깐 국밥 먹으로 가자고 하면 눈이 휘둥그레 집니다
저희 초등학교때는 운동회 할 때 국밥먹는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마 안 믿는 사람이 초청받아와서 국밥 먹고 가면 명성교회는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감사를 드릴 지 준비할 때 주의 구원이 우리 가운데 펼쳐질 줄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새벽을 깨웁시다^^

 

 

 

Posted by GaePein
etc/신앙생활2014. 10. 20. 16:50

10.19 주일5부예배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눅10:38-42)
오방식 목사님(장신대 교수)


귀한 강단에 서게 하신 하나님과 당회장 목사님께 감사 드립니다. 가난한 시골 마을에 신발 수선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주 가난한 동네여서 마을 사람 대부분이 한 켤레의 신발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낮에는 일을 하다 신발이 떨어지면 꼭 밤에 떨어진 신발을 수선하러 왔습니다. 그럼 이 사람은 그날 밤에 수선해주어야 합니다. 다음 날에는 다시 그 신발을 신고 밭에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매일 밤마다 동네 사람들의 신발을 수선합니다. 거의 매일 밤 늦게까지 일을 하고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아주 경건한 유대인입니다. 토라의 가르침에 의하면 아침 일찍 회당에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밤새 일하기 때문에 아침에 정한 시간에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민이 되었습니다. 회당에 나가자니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수선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하고, 계속 일하자니 회당에 나갈수가 없어서 랍비를 찾아가 조언을 구합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조언을 하겠습니까. 어떻게 행동 하시겠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 마르다와 마리아가 등장합니다. 마르다는 역사적으로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사람을 상징하고, 마리아는 예수님과의 관계에 무게중심을 두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교회사에서는 둘 사이의 관계, 기도와 봉사 사이의 관계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행동인가 말씀과 기도하는 삶일까. 우리도 이런 질문들을 가지고 오늘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들어보려 합니다.


본문의 구조를 살펴봅시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바로 다음에 오늘 본문이 등장합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이웃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선행을 강조하는 본문, 예수님 앞에 말씀 듣는 것을 강조하는 것 같은 오늘 본분이 나란히 위치하고 있습니다. 선행과 기도의 관계가 결코 우열이 아님을 가르치는 것일겁니다. 둘 다 중요하다는 겁니다. 어느 것이 더 좋으냐가 아닙니다. 문제는 우열이 아니라 지금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선택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예배드릴 때는 예배하고 공부해야 할 때는 공부하고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은 예배를 드리지만 내일 아침은 일찍 일어나서 학교로 일터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가르침이 잘 들어맞지 않아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선택이 더 낫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부엌에서 고생하는 마르다보다 마리아의 손을 들어주시는 것 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의도를 잘 이해하기 위해 두 사람의 신앙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르다는 섬기는 일에 언제나 자발적이고 헌신적입니다. 아주 귀한 일꾼입니다. 그리고 마르다는 주님과의 관계도 돈독한 사람입니다.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예수님과 나누고 있습니다. 마르다는 선행도 있고 자기 마음을 주님께 올려드릴 수도 있는 사람이란 겁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마르다는 예수님으로부터 아주 소중한 가르침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자기 삶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말씀을 들은겁니다.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가지 만이라도 족하니라. 다른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을 합니다. 너는 많은 일에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꼭 필요한 것은 한 가지다. 안타깝게도 그것을 놓치고 있구나. 중요한 한 가지를 놓치고 있다는 겁니다. 하나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종종 사용하는 말 중에 2%가 부족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거의 100%에 가깝다. 아주 조금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아주 작은 차이이지만 정 반대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엄청난 차이를 나타내는 말로도 사용됩니다. 타이거 우즈와 최경주 선수의 차이를 어떤 사람은 2%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비슷하다는 말이겠지요. 아주 근소한 차이입니다. 그런데 이 타이거 우즈와 최경주 선수의 2%의 차이는 거의 극복이 안되는 차이입니다. 결정적인 차이를 말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한 가지가 꼭 너에게 필요하다고 하시는데 사실 그 말은 너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한 가지를 놓치고 있다는 겁니다. 이 한 가지는 마르다가 염려하고 근심하는 수 많은 일들 중 하나가 아닙니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하나가 아닙니다. 이 하나는 마르다의 삶을 온전히 채워줄 하나입니다. 결정적으로 채워줄 그 하나를 놓치고 있다는 겁니다.


제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인터넷에 2%를 검색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음료 광고가 뜨더라구요. 전지현씨와 정우성씨가 연인으로 나오는 광고입니다. 전지현씨가 이쪽 빌딩에, 정우성씨가 다른 빌딩에서 점프로 건너가려고 하는데 거뜬히 건너질 못하고 매달리게 되거든요. 힘이 못 미치는 겁니다. 그래서 전지현씨가 와서 잡아서 올라오게 도와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 아무리 그런 멋진 사람이 사랑을 해도 사랑은 목마르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 음료를 주는 거예요. 그것을 마셔야 항상 목마른 것이 해소된다는 겁니다. 전도 광고로 쓰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말씀도 결정적으로 부족한 그 하나를 채워줄 수 있는 것이 마르다에게 부족하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이것 하나만 있으면 내 삶이 완전해질 텐데. 혹시 고민하며 찾는 그 한가지가 있습니까. 그것만 있으면 내 삶이 참 좋을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눈물로 기도하는 것이 있습니까. 마르다도 그 한 가지를 채우려 동분서주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된다. 그 한 가지가 무엇일까요. 본문을 읽어보아도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해주시지 않기 때문에 오래 묵상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고 마르다는 주님을 위해 열심히 요리를 합니다. 두 일 다 아름다운 일입니다. 외적으로는 어느 사람이 낫다고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마리아는 주님 앞에 앉아 주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지금 정말 주님을 향하고 있다는 겁니다. 마음이 오롯이 주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마리아는 지금 주님의 말씀만 듣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 주님을 바라보고 있는 겁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가고 있는 겁니다. 어떤 의도를 갖고 계신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마음을 나누는 자리까지 나아가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교제하며 마음에 새기고 주님이 원하는 삶을 다짐하며 더 가까이 영적으로 주님과 하나되는 자리까지 나아가고 있는 겁니다. 그 가운데 놀라운 일이 마리아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존재가 바뀌고 있는 겁니다. 마리아가 깨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이 자기를 꺠드리도록 열어두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그 중심으로 찾아오고 계신 겁니다. 마리아 안에 주님이 태어나고 있는 겁니다. 주님과 마리아의 관계라는 거룩한 집이 세워지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마리아는 내가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할까. 주님께 자기를 바치기로 다짐합니다. 마리아라는 향유병이 드디어 깨졌습니다. 주님께 드려진 바가 된 것입니다.


마르다도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헌신적인 섬김의 삶을 사는 훌륭한 신앙인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예수님은 어디로 가십니까.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입니다. 사람들은 모르지만 예수님은 올라가시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집을 방문한겁니다. 주님이 참 좋아하는 가정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편안히 머무를 수 있는 가정입니다. 주님이 찾아가고 싶어하는 곳. 그곳이 마르다와 마리아의 가정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앞두시고 방문한 겁니다. 죽음을 앞둔 주님께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누군가 주님과 함께 있어주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누군가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그런 사람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주고 함께 있어주는 것이 필요했을 겁니다. 그런데 마르다는 이것을 이 순간을 놓치고 있는 겁니다. 뜨거운 열정과 열심은 있지만 주님이 왜 우리 집에 오셨는지 어떤 마음 가운데 계신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놓치고 있는겁니다. 주님과의 내적 교제가 전혀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대접할지만 관심을 갖는 겁니다. 우리 주님이 정말 원하는 것이 큰 만찬이었을까요. 주님께 귀를 기울여아 하는데 그리고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는데 그것을 놓쳐버린 겁니다.


우리 기도와 묵상이 무엇입니까. 우리 기도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겁니다. 주님을 보며 나도 닮아가고 예수님이 어떤 길을 가시는 지 보면서 그 길을 가겠다고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 겁니다. 그래서 위로가 되고자 향유를 부어드린 겁니다. 그리고 성경에 보면 얼마나 주님이 좋아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주님의 마음을 놓치고 맙니다. 오직 자기에게 사로잡혀 있는 겁니다. 분주함과 자기 생각에만 빠져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어떻게 나를 온전히 내어드릴 수 있겠습니까. 견고한 나의 자아를 깨뜨릴 수 있겠습니까. 사실 우리 모두 그런 삶을 살고 싶은 것이 소원이잖아요. 어떻게 가능할까요.


여러분 오해 마시길 바랍니다. 마르다는 정말 훌륭한 신앙인입니다. 그런데 마르다를 묵상할 때 여러가지 면에서 어느 면에서나 우리가 다 마르다와 같은 존재들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도 많은 일로 염려하며 마음이 나누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작 필요한 한 가지를 놓치며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다는 또 우리도 마르다 처럼 마르다는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영혼입니다.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영혼들 입니다. 주님을 찾는 영혼들 입니다.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사랑하는 마르다에게 새로운 삶의 길로 초대합니다. 결정적인 말씀을 주신 겁니다.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르다는 그 주님의 말씀을 곱씹으며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아마도 이끌림을 받았을 것입니다. 깨어진 삶을 살아갔을 겁니다. 과거처럼 자기 힘이 아니라 사랑으로 따라가는 행복한 사역자가 되었을 겁니다.


제가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힘으로 깨뜨리지 못하는 나의 모습. 내가 꼭 넘어서야 하는 나의 삶의 두터운 장벽. 하나님의 은혜로 꼭 해결받고 싶은 아마도 나만의 2%를 모두 가지고 있을 겁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여러분으로 바라보길 원하는 그 2%는 무엇입니까. 사랑의 주님이 나의 삶의 중심에 오지 못하게 하는 이슈는 무엇입니까. 어떻게 그것을 꺠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저는 우리들의 문제들의 궁극적인 해결은 내가 어떤 일 하나 그 무엇을 행한다고 그 궁극적인 해결은 없습니다. 하나를 더 보탠다고 해서 문제가 궁극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을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내가 넘지못하는 산을 넘기 위해서는 마르다처럼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래 길게 사랑의 눈으로 주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이 나를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무를 때 우리도 마리아처럼 변화되어지고 또 마리아처럼 사랑으로 주님을 높이면 멋진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 모두 마리아처럼 주님을 바라보고 체험하셔서 나의 향유병이 깨져서 그리스도의 향기로 또 향기를 발하는, 또 나의 향기를 넘어 위대한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길 바랍니다.

 

 

 

Posted by GaePein